칼럼 > 음악 > 주목, 이주의 앨범
산만하다 싶을 정도로 갖가지로 퍼지는 트랙 리스트의 형태는 어쩌면 흠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이렇다 할 큰 맥락 없이 각양의 모양을 자랑하는 여덟 곡은 집중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인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는 윌 버틀러의 너른 작곡 감각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수록곡들은 아티스트의 컬러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 이전 단계서부터 매력 있는 사운드로 수요를 능히 충족시킨다. 장점이 단점으로도, 단점이 장점으로도 작용하는 모양새가 재밌다.
윌 버틀러의 역량은 빈틈을 감싸 안고 자신의 첫 솔로 앨범 < Policy >를 수작의 지점으로 끌어올린다. 무엇보다 잘 잡힌 사운드에서의 콘셉트에 큰 비중을 실을 필요가 있다. 원년서부터 계속해온 아케이드 파이어에서의 시각도 어느 정도 보인다. 신경질적으로 치고 나가는 보컬, 은근하게 긴장감을 흘려보내는 사운드, 옅은 모양새라 할지라도 소리의 층위를 확실히 주조하는 곳곳에서의 터치를 밴드 활동에서 묻어난 흔적으로 내세울만하다. 동시에, 아티스트만의 위치를 마련하는 독립된 영역 또한 제 존재를 알린다. 음반의 러닝 타임 내내 함께하는 로 파이의 거친 질감과 이를 한층 강조하는 효과를 지닌 미니멀한 사운드 구성이 가장 큰 성분으로서 그간의 이력과는 다른 결과를 이끌어낸다. 양측이 이루는 조합이 앨범의 색을 결정한다.
작곡에서의 재능 또한 어렵지 않게 탐지할 수 있다. 듣기에 편한 멜로디가 관통하고 난 자리에는 높은 강도의 흡인력이 남아 곡마다의 가치를 상승시킨다. 간편하게, 느릿하게 떨어지는 곡들에서 뛰어난 송라이터의 흔적이 드러난다. 피아노와 약간의 스트링, 혹은 신디사이저 사운드로만 차린 「Finish what I started」와 「Sing to me」가 여기에 해당하는 예들. 윌 버틀러의 목소리를 타고 나오는 팝적인 선율들은 단조로운 배경을 지나가던 이목을 오래 머물게 하는 상당한 효과를 갖는다. 가벼운 공기가 깔린 「Son of god」에서의 훅 라인도 캐치하긴 매한가지다.
강점으로 작용하는 이러한 특징들의 결합과 다양한 관점이 들어선 결과물들이 음반을 빛낸다. 덕분에 음반의 시작을 알리는 두 트랙은 훌륭한 오프너로서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2000년대 초 개러지 리바이벌 시대의 형식이 담긴 「Take my side」는 스타일 특유의 활력 넘치는 리프로, 뉴웨이브의 방식을 구사하는 「Anna」는 댄서블한 사운드 구성과 간단한 후렴구로 주의를 빠르게 잡아챈다. 좋은 곡들이 연달아 등장하는 트랙 리스트 가운데서 앨범의 클라이맥스는 「What I want」에서 모습을 비춘다. 단순한 진행 구조의 골자 위에 데이비드 번을 닮은 위태위태한 보컬 퍼포먼스와 신경을 건드리는 코러스를 얹은 이 업템포의 아트 펑크 넘버에는 시도성과 접근성을 함께 추구하는 아티스트의 관념이 담겨있다. 피아노가 몰아가는 로큰롤 「Witness」도 역시 멋진 트랙이다.
펑크와 펑크(funk), 뉴웨이브, 피아노 팝이 뒤섞여 사방팔방으로 튀어 오른다. 각각의 모양새가 확연히 다른 여덟 곡이 휩쓸고 지나간 작품의 표면에는 이렇다 할 큰 흐름이 잘 안 보인다. 감상의 결말에 깔끔한 맛을 남기고자 하는 기대를 들어줄 만큼 < Policy >는 너그럽지 않다. 스피커 너머의 이들은 당혹스러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윌 버틀러는 재미까지 앗아갈 정도로 문제 있는 실험가가 아니다. 전면의 혼란을 걷어내 보면 곳곳에는 즐기기 좋은 멜로디가 포진돼있다. 수준 이상의 자질을 가진 송라이터의 산물인 셈이다. 앨범의 내부로 시선을 깊게 이동시켜보자. 여러 요소들을 흥미롭게 혼합시키는 방법론이 핵심을 꿰차고 있다. 좀 전까지는 표면에서 안 보였던 앨범의 커다란 줄기가 그제야 시야에 들어온다.
2015/03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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