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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의 전설이 내 상대'
차가운 거리로 나섰다. 육중한 베이스 리듬으로 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지만, 결코 만족하지 못했다. 탕아라는 표현, 배신자라는 비난, 선구자라는 칭송 등 수식은 가득하나 현실은 그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 Heavy Bass >의 적자 < Street Poetry >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MC의 삶이 지닌 무게와 2015년에 던져진 그의 모습을 고스란히 자화상으로 담은 작품이다.
10년의 무게를 짊어진 피타입의 메시지는 관록이라는 새 거리의 동지와 함께한다. 경험과 넓은 시선을 갖춘 덕분에 앨범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격적이며 거침이 없다. 커리어 가장 큰 논란이라 할 수 있는 「폭력적인 잡종문화」를 과감히 제목으로 삼으며 우유부단한 힙합 씬을 후려치고, 이어지는 「Do the right rap」에서는 목적과 태도가 실종된 현재의 한국 힙합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가사 한 구절처럼 피타입, '이 꼰대의 역할'은 상업주의에 취해 의미 없이 흐느적거리는 MC들을 '패는 것'이다. 그야말로 '거리의 시'다.
자신도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언급했던 < Rap >을 제외하면 7년 만의 컴백. 때문에 피타입은 힙합 씬의 일원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외로운 「이방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Timberland 6''」에서 회자하는 수많은 전설의 이름을 새기려 하지도 않고, 단순 기계처럼 찍어내는 예술에는 열광하면서 정작 열정 있는 이들에게는 「네안데르탈」의 낙인을 찍고 멸종을 앞당긴다. 허세로 가득차 거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고 마는 현시대 상황을 '내-가-사-는 현실도 못 바꿔'라 푸념하는 「이방인」이 이 모든 비판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때문에 피타입의 선택은 더욱 트렌드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MC 성천 aka 패시네이팅과 신예 디프라이(Deepfry)의 주도로 다듬어진 붐뱁 비트의 향연 아래 '흩어지는 거친 라임, 터지는 펀치 라인'이 2004년의 굳은 다짐을 환기한다. 「광화문」이라는 공간에서 그는 시간의 흐름을 회고하며 개인과 사회를 동등하게 반추하기도 하고, 옛 산울림의 노래들을 샘플로 삼은 「반환점」에서는 빈곤한 현실에서 꿈꾸는 불완전한 미래 속에 다시금 일신의 기치를 세우기도 한다. '멋지게 낡은 미래'는 없다지만 '멋지게 낡은 힙합'은 여기에 있다.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아티스트지만 남편으로서는 「최악의 남자」라며 자신을 질책하고, 시와 자신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Vice versa」를 거친 피타입의 종착지는 결국 「돈키호테2」다. 그 자신을 대표하는 페르소나 트랙의 리메이크는 심플한 피아노 루프와 드럼 비트 위에 세월의 무게와 어렴풋한 희망의 메시지를 한데 모아 기막힌 공존 지대를 구축해낸다. 삶은 비참하다지만 꿈까지 비참할 수 없는, 거리의 시인이 빚어낸 「돈키호테」가 다시금 창을 쥐고, 투구끈을 고쳐맨다.
< Street Poetry >이 가치 있는 것은 단순히 < Heavy Bass >의 후속작이라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피타입은 작금을 비판하면서도 시대에 결여된 메시지를 다시금 끄집어내어 멍든 현실에 새 살을 깊이 두들겨 넣는다. 명실상부 씬의 '큰 형님'이 된 거리의 빅 캣(Big Cat)이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무뎌진 이성의 칼날과 녹슨 감성의 총탄이 다시금 서슬 퍼렇게 빛을 낸다. 구도의 길을 따라 현재 진행형의 비트를 타고 방랑 중인 피타입은 '현재 진행형의 10년 전 전설'이다.
2015/03 김도헌(zener12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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