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끝을 잡고 단호박 수프
하루한상 – 다섯번째 상 : 단호박 수프
여름이 수박이라면 가을은 호박이다. 특히 단호박은 쪄서 먹기만 해도 맛있다. 하지만 더 맛있게 먹고 싶다. 인간은 웬만해선 만족할 줄 모른다. 곧 다가올 할로윈데이에도 어울릴 다섯 번째 상은 단호박 수프.
첫 만남
고등학생 시절 피자가게에 가면 있던 샐러드바. 그중에서도 샐러드볼에 항상 처음 담았던 건 ‘단호박 샐러드’였다. 찐 단호박과 견과류, 건포도를 마요네즈로 버무려 놨던 그것. 생각해보니 난 단호박을 샐러드바에서 처음 맛보았다. 처음엔 그냥 늙은 호박을 달게 해서 만든 샐러드 인줄 알았다. 그 후 마트에서 단호박이라는 온전한 존재를 보게 되었다. 겉이 진한 초록인 것이 특이했다. 찾아보니 단호박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게 된 건 1990년대라고 한다. 남미가 원산지인데 일본은 1880년대 처음 받아들였고 우린 110년이 지나서야 들어왔다니 왜 이렇게 늦었던 걸까. 뭐 그게 인연이겠지만.
세월이 지나 연애시절 어느 겨울날, 퇴근이 늦은 날 보러 남편이 찾아왔었다. 따습고 맛난 것이 먹고 싶었던 난 고급 이태리 레스토랑에 갔다. 그땐 돈을 벌던 시절이라 1만 6천 원 하던 단호박 수프를 포함한 저녁식사를 시원하게 계산했었다. 그때 먹었던 고급진 맛이 생각나는 날씨다. 물론 지금은 수프를 위해 그 정도의 돈을 쓸 수 없지만 먹고 싶으면 만들면 된다. 자 만들어 보자!
익숙한 풍경. 곧 샐러드 바에 가야겠다.
15분 단호박 수프
그래서 찾아본 단호박 수프 레시피.
1. 단호박을 전자레인지에 쪄서 으깬다.
2. 양파를 볶아 1과 우유, 생크림(생략 가능)과 함께 믹서기로 간다.
3. 약불에 소금을 조금 넣고 한소끔 끓이고 먹는다.
와~ 간단하기도 하지! 다들 더 쉽게 하게 하기 위해 전자레인지를 사용하지만 난 없으므로 패스. 단호박을 8등분 해서 물과 소금을 조금 넣고 삶는다. 믹서기로 갈 생각을 하니 설거지가 걱정된다. 그것도 건너뛰어야지. 푹 쪄진 단호박을 국자로 으깨버리고 양파를 최대한 잘게 다져서 (눈물) 볶아 냄비에 넣고 생크림 조금과 우유를 넣고 끓인다. 완성! 딱 단호박 찌는데 10분. 다 섞고 끓이는데 5분. 총 15분 걸렸다.
단호박 수프 더 간단 레시피.
1. 단호박을 냄비에 쪄서 으깬다.
2. 양파를 잘게 다져서 달달 볶아 1에 넣고 우유, 생크림과 끓이고 소금 간을 한다.
하하! 믹서기를 사용하지 않아서 한 단계를 단축시킬 수 있다. 여러 도구를 사용해야만 할 수 있는 요리는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느낌인데 불과 솥만으로 만들 수 있다니 대관령 산골에서도 만들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유는 필요하니까)
단호박은 찌고 양파는 볶는다.
추운 월요일 아침을 달래주는 단호박 수프
간단하고 좋은 살림의 이로움
신혼살림을 준비하면서 내가 산 가전제품이라곤 전기압력밥솥이 전부였다. TV는 필요 없었고 냉장고와 세탁기는 남편이 쓰던 게 멀쩡해서 그냥 쓰고 있다. 핸드블렌더도 살까 하다가 그만뒀다. 이것저것 무작정 사면 자리만 차지하게 된다. 내가 정말 잘 쓰게 될지 생각하며 사는 살림들에 역시 손이 자주 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시간이 꽤 걸린다. 『산다는 건 잘 먹는 것』 이라는 책에서 저자가 식재료뿐 아니라 온갖 살림살이를 고찰하는 걸 보며 동감하곤 했다. 접시, 테이블 매트, 나무 쟁반 등등.. 나에겐 어머니가 물려주신 좋은 냄비가 있다. 나는 이미 그 냄비와 정이 들어버렸다. 이 냄비로 이번 주말엔 감자 크림수프를 끓여볼 생각이다. 그리고 아마 추운 계절 내내 가스레인지 위를 내려올 틈 없이 수프와 국을 끓이게 될 것이다.
(부록) 남편의 상
안녕하세요. 단호박 남편입니다. 오늘 상 얘기는 없습니다. 슬프게도 아침으로 단호박 수프를 먹은 날 점심 구내식당에도 단호박죽이 나왔습니다. 단호박 죽과 단호박 수프의 차이는 뭘까요? 친절한 여편님이 알려주십니다. 찹쌀가루를 넣느냐 우유를 넣느냐의 차이라고 합니다. 다음번에는 감자수프에도 도전하시겠다고 합니다. 저야 모두 사랑하는 식물들이니 좋지만 최근에야 감자와 단호박 모두 저 멀리 남미 대륙에서 건너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한창 열독 중인 『불의 기억』이라는 중남미 역사 책에는 감자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처음 스페인 사람들이 남미 대륙에서 감자를 가져왔을 때 유럽인들은 미개한 원주민들이나 먹는 거라며 멀리했다고 합니다. 주로 돼지우리나 감옥의 죄수들에게나 줬다고 합니다. 그러다 프랑스 혁명의 열기가 무르익던 때, 한 죄수가 억지로 감자만 먹다 보니 점점 감자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자유의 몸이 된 그는 파리에서 연회를 열고, 저명인사들에게 감자 빵, 감자 수프, 감자 샐러드, 감자튀김, 감자 케이크, 감자 술까지 대접했습니다. 재배도 쉽고 맛도 좋은 감자를 널리 널리고 싶었습니다. 이를 전해 들은 루이 16세는 파리 근교에서 감자를 재배하도록 하였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정원의 감자꽃을 무척 예뻐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감자는 유럽과 인류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되었던 것이죠.
호박꽃도 꽃이냐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새 단호박이 레스토랑이나 파티와 더 친숙한 식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다시 호박을 집에서 만만하게 대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산다는 건 잘 먹는 것 히라마츠 요코 저/이은정 역 | 글담
이 책을 읽다 보면 오감을 열고 잊고 지냈던 맛을 다시금 추억하게 된다. 또한 ‘먹는다’는 것을 그 자체로 순수하게 즐기게 된다. 하룻밤 재운 감자조림, 질그릇 주전자로 끓인 차, 찬밥에 말아 먹는 국의 맛……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맛이 있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맛, 질리지 않고 늘 먹고 싶어지는 맛,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진짜 맛은 일상 속에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저자는 시간을 들여 음식을 준비하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맛보는 일은 밋밋하게 흘러가는 날들에 기분 좋은 쐐기를 박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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