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그림책으로 마음 선물하기
상상 친구가 필요한 이들에게
『비클의 모험』
작가는 아들에게 좋은 친구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한데 이 당연한 이야기를 좀 다른 식으로 풀어냈다. 상상 친구가 현실의 친구를 찾아 나서는 모험담으로 말이다.
한 권의 그림책이 탄생하는데 아이들이 큰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작은집 이야기』를 쓴 버지니아 리 버튼은 만화책만 보는 아들을 위해 『작은집 이야기』를 썼다 하고, 레오 리오니는 기차 안에서 떠드는 손자들을 위해 <LIFE>지를 찢어 『파랑이와 노랑이』를 지어냈다고 한다. 국내 작가들도 비슷해서 유준재의 『엄마 꿈 속에서』는 딸의 이야기고, 권윤덕의 『만희네 집』에서 ‘만희’는 작가의 아들이다.
<비클의 모험>은 작가가 아들을 위해 만든 책이다. 그림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눈이 큰 남자아이가 금색 왕관을 쓰고 한 손에 피자를 들고 있는 사진아래 ‘알렉에게’라고 쓰여져 있다. 그러고 보니 알렉이 머리에 쓴 왕관과 그림책 주인공 비클의 왕관이 닮았다. 아마 이 그림책을 읽은 알렉은 비슷한 왕관을 쓰고 있는 비클이 곧 자신의 분신임을 눈치챘을 것이다.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이런 암호가 통하기 마련이니까.
작가는 아들에게 좋은 친구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한데 이 당연한 이야기를 좀 다른 식으로 풀어냈다. 상상 친구가 현실의 친구를 찾아 나서는 모험담으로 말이다.
사실 어린이문학 속에서 ‘상상친구’는 곧잘 등장하는 테마다. 존 버닝햄의 『알도』에 등장하는 토끼인형도 상상친구다. 『비클의 모험』에서는 아예 상상친구가 주인공이다. 발상의 전환이다. 앞 면지를 보면 아이들이 저마다 어떤 상상친구를 만났는지 알 수 있다. 기타를 좋아하는 아이는 드럼친구와, 종이 접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종이 팬더와, 연날리기에 빠진 아이는 바람과 함께 있다(오로지 주인공 비클 만이 아직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무지개가 끝나는 곳에 상상 친구들이 모여 산다. 아이들이 부르면 상상 친구들은 하나 둘 이 곳을 떠난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희고 포동포동한 ‘나’를 불러주는 아이가 없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세상으로 떠난다. 친구를 찾으러.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비클의 모험’이다. 작고 남루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으리으리한 도시에 도착한 ‘나’는 음악도 듣지 않고, 피곤해서 어쩔 줄 모르는 어른들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상상 친구들이 사는 섬나라나 아이들이 놀이터가 밝은 무지개 색이라면 도시나 어른들은 칙칙한 무채색으로 그려져 대비를 이룬다. 어른과 아이들 세계는 이만큼 다르다는 뜻이리라.
놀이터에서 자신을 불러줄 친구를 찾아 헤매던 ‘나’는 실의에 빠져 별이 반짝이는 나무에 올라 앉아 먼산을 바라보고 있다. 그 낙담한 뒷모습이 화면 가득 그려져 있다. 이 장면에서 어린 독자들은 아마 상상친구와 하나라 되리라. 그리고 곧 ‘저, 저기!’라며 손짓을 하는 여자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리라.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앨리스가 나무에 걸린 종이를 꺼내달라고 부탁했고, 이를 계기로 둘은 친구가 된다. 앨리스는 상상친구를 ‘비클’이라 불렀고 둘은 함께 놀았다. 신기하게도 외톨이였던 앨리스와 비클이 친구를 기다릴 때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더니, 둘이 신나게 놀자 다른 아이들이 주위로 모여들었다.
비클과 앨리스의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친구 만들기의 금과옥조를 보여준다. 친구를 사귈 때는 기다리지 말고 찾아 나설 것, 가까이에서 찾을 것, 친구란 한 명 만 있어도 된다는 사실 등등.
동양계인 댄 샌탯의 부모는 아들이 자라서 의사가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대학에서 미생물학을 공부했지만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디자인을 다시 공부했다. 비클과 친구가 된 앨리스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건 이유가 있다. 댄 샌탯은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후에 디즈니 에니메이션 제작에도 참여했고, 구글에서도 일했다. 에니메이션의 주인공 같은 캐릭터나 그래픽적인 그림들을 보고 있자면 그의 경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댄 샌탯은 이 책으로 2015년 칼데콧 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위플래쉬> 등의 영화로 깊은 인상을 남긴 제이슨 라이트맨이 영화로 만들 예정이다. 이제 부모님이 아들을 자랑스러워할 일만 남았다.
아이들은 때가 되면 상상 친구를 자연스럽게 떠난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늦게까지 상상친구를 보내지 못할 때도 있다. 이상하게 여길 건 없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드물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상상친구를 잊지 못하는 어른들도 있다. 그룹 너바나의 보컬 커트 코베인,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 등이 그런 어른들이었다.
함께 보면 좋을 책
알도
존 버닝햄 저/이주령 역 | 시공주니어
존 버닝햄의 대표작이자, 많은 아이와 어른들이 사랑하는 그림책. 친구 없는 소녀가 상상친구 알도를 만나 위로 받고 현실에서 친구를 사귀는 법을 배우고 알도를 떠나는 이야기.
비클의 모험댄 샌탯 글그림/고정아 역 | 아르볼
바다 건너 무지개 끝에 상상의 친구들이 사는 상상의 나라가 있습니다. 이곳 친구들은 아이들이 상상해 주어야만 세상으로 갈 수 있지요. 어느 날, 새 친구가 태어났고 그는 세상 아이들이 자신을 상상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무도 불러 주지 않자, 직접 아이들을 찾아 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과연 자신을 알아봐 주는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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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문학을 공부했고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일했다. 현재는 책과 출판에 관해 글을 쓰고 방송을 하는 출판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황정민의 FM대행진]에서 ‘한미화의 서점가는 길’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겨레신문]에 어린이책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시대 스테디셀러의 계보』 『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졌다 1-2』 등의 출판시평과 『잡스 사용법』, 『책 읽기는 게임이야』,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