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재수하는 동생에게 추천 그림책

『바다가 보고 싶었던 개구리』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인생에서 가장 쓰라린 실패를 겪은 후 만약 한 번 더 도전하기로 했다면 지금쯤 어떤 마음일까. 이십대 시절 오래도록 백수생활을 한 나는 입시건 취업이건 무슨 일이건 재수(再修) 시절을 견디는 일에 유독 감정이입이 심한 편이다.

1월은 한해를 시작하는 달이지만 지난해 노력한 결과를 거두는 달이기도 하다. 대학 진학을 위해 애쓴 고3이라면 이제는 진학을 하거나 재수를 결심할 때이고, 취업을 준비했다면 직장인이나 취업 재수생으로 신분이 달라질 시기다.

 

인생에서 가장 쓰라린 실패를 겪은 후 만약 한 번 더 도전하기로 했다면 지금쯤 어떤 마음일까. 이십대 시절 오래도록 백수생활을 한 나는 입시건 취업이건 무슨 일이건 재수(再修) 시절을 견디는 일에 유독 감정이입이 심한 편이다. 어디에서도 반겨주지 않는, 소속 없는 재수생으로 사는 일은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깊은 열패감과 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시작은 어렵지만 그래도 겁 없이 처음 시작하는 건 할만하다. 어떤 어려움을 거쳐야 할지 뻔히 아는 일을 다시 시작한다면 그보다 고약스러울 수 없다. 재수생활이 그렇다. 만약 주위에 재수하는 후배가 있다면 기 빌루의 『바다가 보고 싶었던 개구리』를 선물하면 좋겠다. 책만 덜렁 주지 말고 꼭 편지를 함께 쓰면 좋겠다. 인생의 선배로서 당신이 가장 참혹하게 실패했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면 더 좋겠다. 그 편지에서 그때는 실패했지만 열심히 노력해 이렇게 성공했노라고 자기 자랑만 하지 않는다면, 그저 솔직하게 상대의 아픔을 공감해준다면 정말 좋겠다. 

 

여기 연못에 사는 개구리가 한 마리 있다. 개구리 앨리스는 연못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다. ‘어둑한 연못 밑바닥 구석구석이며 갈대밭 곳곳의 숨어 있기 좋은 데를 다 알고’ 있고 ’뒷다리로 스물여덟 번 발길질 하면 연못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헤엄쳐 갈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만큼 연못은 앨리스에게 익숙한 곳, 말하자면 고향이고 집이고 학교다.

 

L (2).jpg

 

연못에 만족했다면 별일 없었을 앨리스는 궁금한 것 투성이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다. 마치 우리들처럼! 그래서 봄이 오면 사라지는 갈매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묻는다. 대체 연못의 갈대밭 너머 세상에는 무엇이 있느냐고. 그러자 신이 나서 갈매기가 앨리스에 말해준다. 이 연못보다 더 넓은 곳이 있다고. 이렇게 해서 앨리스는 바다를 보러 가기로 결심한다.

 

부모가 있다면 당장에 뜯어 말렸을 일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앨리스는 수련 잎 한 장을 돌돌 말아 옆구리에 끼고 부지런히 길을 나서 동이 틀 무렵 강가에 다다랐다. 기 빌루는 이 장면을 두 페이지 펼침으로 멋들어지게 그려냈다. 희미하게 날이 밝아오자 나무와 잎들과 강가로 빛이 퍼져 나간다. 세상은 고요하다. 오로지 앨리스 만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진지하게 앞만 보고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다. 이 장면을 보고 있자면 멋모르는 패기와 도전, 설레임과 두려움이 뒤섞여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강가의 도시와 궁전을 보고 난 후 앨리스는 드디어 바다에 도착한다. 하지만 바다가 어디라고 조그만 개구리 한 마리를 환영하겠는가. 개골 거리는 소리는 이내 파도에 묻혀버리고, 연잎 배는 맥을 못 춘다. 집채만 한 파도가 몰려오는 바다에서 앨리스는 간절하게 집을 그리워한다. 다행스럽게도 마법을 지닌 달님의 도움 덕에 집으로 돌아온 앨리스! 이제 그는 더 이상 바다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개구리.jpg


이 책의 묘미는 여기부터다. 앞부분을 읽을 때만 해도 용감하게 떠난 개구리의 무용담인줄 알았다. ‘무사히 돌아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니다. 연못으로 돌아온 앨리스는 봄이 오자 다시 바다를 생각한다. 갈까, 말까, 갈까, 말까,

 

처음 기 빌루의 그림을 접한다면 평면성, 불투명한 색감, 깔끔한 선과 색 처리가 너무 인위적인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이럴 때는 삶을 통해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남희의 그림책과 작가 이야기』에는 프랑스인 기 빌루가 어쩌다 뉴욕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오랫동안  살고 있는지를 잘 소개하고 있다.

 

기 빌루는 젊은 시절 마치 앨리스처럼 일러스트레이터로 성공하겠다고 마음먹고 미국으로 향했고, 뉴욕의 마천루가 보여주는 수직성에 매료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수직의 건물이 줄지어 늘어선 도시 속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뜻하지 않은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래서 바다가 보고 싶었던 개구리』에서도 주인공 앨리스가 그토록 작게 그려졌고. 강과 성과 파도 같은 세상은 거대하게 표현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바다로 떠나는 앨리스와 마찬가지로 보잘 것 없는 존재지만 늘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할까 말까 할까 말까. 세상을 향한 동경과 불안은 기 빌루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코 하고 싶지 않은 더구나 실패했던 일을 또 하겠다고 용기를 낼 때, 우리 삶은 비약한다. 다시는 연못에서 앨리스를 볼 수 없게 된 비밀이 이것이다.

 

 

 

 

함께 보며 좋을 책


 

꿈꾸는 소년의 짧고도 긴 여행

기 빌루 글,그림/이명희 역 | 마루벌

기 빌루의 작품 테마가 고스란히 담긴 또 한권의 책. 삶을 은유하는 기차여행이 고요하게 펼쳐진다.

 

 

 

 

 

 

 

 

 

 

 

 

 

img_book_bot.jpg

바다가 보고 싶었던 개구리기 빌루 글,그림/이상희 역 | 열린어린이
바다가 보고 싶었던 개구리에는 민담이 깃들어 있고, 어린이와 어른이 모두 푹 빠져들 수 있는 독특한 그림이 장대한 스케일로 펼쳐집니다. 이 책은 작년에 뉴욕타임스에서 선정한 최고의 그림책 중 한 권입니다.



 

 

 

 


 

[추천 기사]

- 누군가에게 꽃을 주고 싶을 때
- 다시 한번 친구를 찾아나서야 한다면
- 불을 켜지 않으면 밤잠을 이루지 못할 때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에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7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한미화

독일문학을 공부했고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일했다. 현재는 책과 출판에 관해 글을 쓰고 방송을 하는 출판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황정민의 FM대행진]에서 ‘한미화의 서점가는 길’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겨레신문]에 어린이책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시대 스테디셀러의 계보』 『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졌다 1-2』 등의 출판시평과 『잡스 사용법』, 『책 읽기는 게임이야』,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 등의 책을 썼다.

오늘의 책

트럼프의 귀환, 위기인가? 기회인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거머쥔 트럼프.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 트럼프 2기 정부의 명암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훈 저자의 신간이다. 강경한 슈퍼 트럼프의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그 전략을 제시한다.

이래도 안 읽으실 건가요

텍스트 힙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독서가 우리 삶에 필요해서다. 일본 뇌과학계 권위자가 뇌과학으로 입증하는 독서 예찬론. 책을 읽으면 뇌가 깨어난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이해력이 상승하며 즐겁기까지 하다. 책의 장르는 상관 없다. 어떤 책이든 일단 읽으면 삶이 윤택해진다.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소설

출간 즉시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관련 영상을 제작하려 하면 재앙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이 함께 떠난 크루즈 여행 중 숨겨진 진실과 사라진 작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밝혀진다.

우리 아이 영어 공부, 이렇게만 하세요!

영어교육 전문가이자 유튜브 <교집합 스튜디오> 멘토 권태형 소장의 첫 영어 자녀 교육서. 다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초등 영어 교육의 현실과 아이들의 다양한 학습 성향에 맞는 영어 학습법을 제시한다. 학부모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실천 방안을 담았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