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그림책으로 마음 선물하기
멀찌감치, 그러나 마음 깊이 위로할 때
『여우 나무』
얼마 전 1주년 맞이 무료 폭죽 스티커가 만발했던 초등학교 반창(학급동창) 밴드에 부고가 떴을 때의 일이다. 아무개 장인상 좋은세상 장례식장 2호실 발인 모월모일… ‘에고, 반창 장인상까지?’ 하는 마음으로 돌아서다가 ‘참, 그 장인이 여느 장인 이상이라지!’ 하고 다시 돋보기를 찾아 들여다보았다.
얼마 전 1주년 맞이 무료 폭죽 스티커가 만발했던 초등학교 반창(학급동창) 밴드에 부고가 떴을 때의 일이다. 아무개 장인상 좋은세상 장례식장 2호실 발인 모월모일… ‘에고, 반창 장인상까지?’ 하는 마음으로 돌아서다가 ‘참, 그 장인이 여느 장인 이상이라지!’ 하고 다시 돋보기를 찾아 들여다보았다. 고무줄뛰기 멤버들을 40여년 만에 접하는 흥분에 들떠있는데, 누군가 우리 엄마 안부를 묻기에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지. 아버지는 고3때 돌아가시고, 완전 고아란다. 시부모께 응석피우며 지내는 중.’이라고 썼더니 범상치 않은 댓글을 단 그 반창이었다. 자기도 일찍 양친을 여의고 외롭게 지내다가 결혼하고는 장인장모를 부모로 여기고 산다고. 그러니 부친상이나 다름없는 상사인데, 그렇다고 부의금을 보내기에도 마뜩치 않아 꾸물거리다 결론이 났다. 아, 그림책을 보내자!
‘이런 경우에는 이런 그림책을!’ 하고, ‘그림책 사람 쥬크박스’라도 되는 듯이 굴면서도 정작 이모저모를 따져 단골인터넷서점 장바구니에 그림책 한 권을 담기까지에는 며칠이 걸렸다. 결제하려던 순간에 취소하고 리베라 엔젤스 싱 음반 한 장을 더 담느라 다시 하루가 걸렸는데, 배송처를 묻느라 또 하루가 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최종 결제 창에서 대여섯 번이나 엉기는 바람에 또 며칠이 걸렸다. 에고, 오히려 그림책이 도착하기에 딱 좋은 시점이 되겠지… 한바탕 비탄의 파도가 휘몰아친 뒤의 고즈넉한 해변에 앉은 듯이 이제쯤 내외가 음악도 듣고 그림책도 읽겠지…하며 지각 조문의 개운찮은 마음이며 생각을 덮었는데, 일주일쯤 지나 엊그제 메시지 하나가 날아들었다. 나중에 손자 생기면 읽어주려고 잘 보관하고 있다. 고마워.
첫 장면_여우가 사랑하며 살았던 숲을 비스듬히 올려다보고 있다.
함부르크 태생으로 런던에서 공부하고 돌아가 베를린에서 작업하고 있는 브리타 테켄트럽의 그림책 『여우 나무』는 원래 제목이 ‘추억나무’쯤으로 번역될 만한 메모리 트리Memory Tree이다. ‘옛날 옛날에 여우 한 마리가 다른 동물들과 함께 숲에서 살았어요./여우는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지만, 이제는 많이 지쳤답니다./ 그래서 아주 느릿느릿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숲 속 공터로 갔어요./ 그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숲을 지그시 바라보고 땅에 누웠어요./여우는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내쉰 뒤/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어요.’ 로 시작되는 첫 장면에서 오렌지색 털의 회색 눈이 커다란 여우는 지친 머리를 갸웃한 채 자기가 사랑했던 세상을 마지막으로 올려다보는 참이다. 죽음에 이르렀으나 너무도 아름다운 이 여우! 작가는 이제 친구들의 추억담을 통해 그 아름다움의 이유를 말하기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다정했고, 친구들을 잘 보살펴주었으며, 활기차게 뛰어놀 줄 알았고, 해 지는 시간을 경배할 줄 알았던 존재였다고.
장면_친구들 가운데에서 여우 나무가 자라고
여우를 끝없이 추억하며 슬퍼하던 친구들은 문득 여우가 누워있던 자리에서 돋아난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여우의 털 색깔과 똑같은 오렌지 나무가 싹튼 것이다. 오렌지 나무는 계속되는 친구들의 추억담을 양식 삼아 쑥쑥 자라고 우뚝 선다. 그리고 이 마법적인 사건은 슬퍼하던 친구들에게 놀랍기보다 다정한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된다. 여우의 존재가 그랬던 것처럼.
장면_무성히 잎 나고 가지 뻗은 여우나무에 깃들어 사는 동물들
친구들의 추억은 하염없이 이어지고, 여우나무는 쑥쑥 자라고 자라서 나무이자 숲에서 가장 큰 나무가 된다. 여우처럼 활기차게 가지 뻗으며, 여우처럼 다정한 보금자리가 되어, 여우처럼 든든한 힘을 주는 존재로 거듭난 것이다.
책 더미에 빠져 살며 파인아트 작업도 병행하는 이 화가 겸 작가의 그림은 물론 예쁘장한 유아용 이미지를 넘어 오렌지색 여우와 오렌지색 나무라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정의했다. 어려움 없이 읽히지만 은유와 상징이 단단한 글 또한 문학적 품격을 갖추었다. 온 삶을 다 바쳐 한 가문을 이끌었던 존재를 평화로이 추억하기에 이만한 그 무엇을 구할 수 있을까?
(손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야, 그림책은 0세부터 100세 전세대가 함께 읽는 책이라고! 오늘 저녁 혼자 한번 읽고 나서, 부인 앉혀놓고 읽어드려. 꼭 그렇게 해봐야 해! 40여년 저편의 한 교실에 앉아있었던 인연으로 느닷없이 그림책 세례를 받은 친구 부부가 『여우 나무』에 놀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뛴다. (끝)
여우나무 브리타 테켄트럽 글, 그림/김서정 역 | 봄봄
오렌지빛 털을 가진 여우가 친구들의 사랑을 받아 오렌지 나무로 다시 태어나는 이 이야기는 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위로해 줍니다. 브리타의 일러스트레이션은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구성과 색감으로 이야기를 한층 더 따뜻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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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그림책
시인ㆍ그림책 작가, 그림책 번역가로 그림책 전문 어린이 도서관 '패랭이꽃 그림책 버스'와 그림책작가 양성코스‘이상희의 그림책워크샵’을 운영하면서, 그림책 전문 도서관 건립과 그림책도시 건설을 꿈꾸고 있다. 『소 찾는 아이』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은혜 갚은 꿩이야기』『봄의 여신 수로부인』등에 글을 썼고, 『심프』『바구니 달』『작은 기차』『마법 침대』등을 번역했으며, 그림책 이론서 『그림책쓰기』,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를 펴냈다.
<브리타 테켄트럽> 글, 그림/<김서정> 역12,600원(10% + 5%)
오렌지빛 털을 가진 여우가 친구들의 사랑을 받아 오렌지 나무로 다시 태어나는 이 이야기는 이별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위로해 줍니다. 브리타의 일러스트레이션은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구성과 색감으로 이야기를 한층 더 따뜻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