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그림책으로 마음 선물하기
아이가 ‘엄마가 우리 엄마 맞아요?’라고 물을 때
『진짜 엄마 진짜 아빠』
박연철의 그림책 『진짜 엄마 진짜 아빠』라면 어떨까. 너무 킬킬거리지 않으면서 진지하고도 유머러스하게 핵심을 파고든다. 표정을 절제하면서 온기가 느껴지는 나무조각으로 꼭두각시와는 또다른 조형성을 구현한 그림도 근사하게 이야기에 어울린다.
글 쓰는 후배가 겪은 실화 한 편. 낮밤 따로 없이 분주하기도 나른하기도 한 삼십 대 시절 전업 작가가 어느 여름날 한낮에 고향 친구의 전화를 받는다. “방금 내가 운전하면서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어떤 노인이 어릴 때 잃은 아들 찾는 얘길 하는데 딱 너 같더라고. 하도 기분이 묘해서 길에 차 세우고 전화번호도 적어뒀지 뭐야. 관심 있음 얘기해, 알려줄 테니까.” 마침 전날의 숙취로 몸도 마음도 의기소침 지경이던 전업 작가는 어린 시절에 듣고 반신반의했던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 얘기를 떠올린다. 그러면서 ‘어쩐지.... 내가 이렇게 모든 것이 시원찮은 이유가 제대로 못 먹고 큰 탓이고, 제대로 못 먹은 것은 친부모 보살핌을 못 받은 탓’이라 확신한다. 그러자마자 억울하고 분하고 마뜩찮았던 에피소드들이 어찌 그리 줄줄이 떠오르는지, 급기야 서러움에 차서 눈물까지 글썽인다. 망설임 끝에 방송 들은 고향친구를 찾아가서 다시 얘기를 들어보고, 며칠 밤잠을 못 이루고 끙끙거리고, 방송국에 줄을 놓아 담당피디를 만난다.... 그래저래 꽤나 심각하게 시간을 끌었던 그 촌극의 결말은 허무하도록 뻔했다.
어린 시절에 한번쯤 품기 마련인 ‘태생에 대한 궁금증’에 우린 곧잘 웃어넘기려 들지만, 칼로 베듯 해결하지 않으면 틀림없는 백일 사진이며 배냇저고리를 손에 쥐고도 그림자를 남길 수 있다. 평생 고요히 잠복해 있다가 그럴 만한 계기를 만나 의식의 수면 위로 쑥 떠오르는 어둠이 될 수도 있는 그림자! 그러니 어느 날 우리 아이 또는 주위의 아이가 떨떠름한 어조로 ‘엄마가 우리 엄마 맞아요?’라고 묻는다면 적극적으로 도움이 될 선물을 건네야 한다.
쥴 르나르의 『홍당무』는 바로 그 그림자가 낳은 명작이지만, 온도가 너무 차가운 선물이다. 박연철의 그림책 『진짜 엄마 진짜 아빠』라면 어떨까. 너무 킬킬거리지 않으면서 진지하고도 유머러스하게 핵심을 파고든다. 표정을 절제하면서 온기가 느껴지는 나무조각으로 꼭두각시와는 또다른 조형성을 구현한 그림도 근사하게 이야기에 어울린다. ‘지구로부터 2천4백7십5억 광년 떨어진 곳에 너무멀어자세히안보면잘안보여별이 있어. 그 별에는 왕과 왕비 그리고, 아기 왕자가 행복하게 살았지.’로 시작되는 능청스런 서두는, 그 아기 왕자가 가족과 함께 이웃 별로 여행을 떠났다가 우주 해적선을 만나는 바람에 낯선 별에 남겨졌고, 지나가는 여인이 데려갔고, 그러구러 지금 평민 가정에서 살고 있다고 단숨에 읊조린다. 마뜩치 않은 국면에 처할 때마다 ‘나는 이 별이 마음에 안 들어. 왕자님은 이렇게 살면 안 돼.’라고 투덜거리는 주인공 머나먼 별의 왕자-의 모습은 우리들 저마다 거울을 보는 듯이 낯익다.
투덜투덜 구시렁거리면서도 그럭저럭 적응해 살아가던 아이는 시장 아들과 다툰 일로 엄마한테 된통 꾸지람을 듣는다. 억울한 일을 당했으나 오히려 야단맞는 모습이며, 야단치는 모습 또한 두루 낯익다. “.......계속 그렇게 말 안 들을 거면 당장 네 진짜 엄마한테 가!”라는 호통에 문을 열고 나서는 아이의 결심-‘내가 못 갈까 봐? 진짜 엄마, 아빠를 찾으러 갈 거야. 날 찾으러 왔다 숲 속에서 길을 잃었을지도 모르잖아. 못된 괴물한테 잡혀 있을 수도 있고. 그래! 진짜 엄마, 아빠를 찾으러 가자.’-은 언젠가 한 번쯤 시도했던 가출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피노키오 만나는 장면
숲으로 떠난 아이는 우리가 익히 아는 서사 속의 대표적인 거짓말쟁이들을 차례차례 만난다. ‘거짓말’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스웨덴어로 표기된 타이포그래피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피노키오와 양치기 소년과 임금을 벌거숭이로 만든 사기꾼 재단사들은 왕자라고 우기는 아이를 한 목소리로 조롱한다. ‘왕자는 무슨 왕자? 보다보다 너 같은 거짓말쟁이는 처음 본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항변하며 맞서던 아이는 마침내 아이답게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친다. ‘어떡해. 길을 잃은 것 같아. 엄마, 아빠 어디 있어요? 어서 와서 저를 데려가 주세요. 으앙!’
우는 아이
“얘야, 여기 있었구나. 우리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라며 달려와 안아주는 엄마아빠에게 아이가 말한다. “모두 나보고 거짓말쟁이래. 나 진짜 왕자님 맞지?”
아이가 이렇게 말할 때 어른은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줘야 한다. 『진짜 엄마 진짜 아빠』의 엄마 아빠도 그렇게 한다. “그럼! 자, 이제 집에 가자!” 유아적인 왕자 공주 놀이와 다르게, 통과의례를 치르듯 엄숙하게 말이다. 그리하여 태생에 대한 의심 따위 까맣게 내던진 채 참된 나날로 진입하여 손 흔들며 인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잘 가라, 진짜 왕자 진짜 공주의 날들이여.
*태생에 대한 추호의 의심이 없는
고학년 이상 독자에게 권하는 책
홍당무
쥘 르나르 원저/강정규 역/김진아 그림/이지훈 해설 | 삼성출판사
주인공은 새빨간 머리 때문에 '홍당무'라고 불리는 주근깨 투성이의 소년입니다. 매정하고 독선적인 어머니와 비열한 형, 이기적인 누나, 그리고 무뚝뚝한 아버지. 홍당무는 가족들 사이에 이유 없이 구박만 받는 외톨이 신세입니다. 하지만 홍당무는 항상 유쾌하고 재치 있게 행동합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사춘기 소년의 일상과 진실을 독특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진짜엄마 진짜아빠 박연철 글,그림 | 엔씨소프트
“나의 ‘진짜 엄마 진짜 아빠’는 따로 있을 거야.” 부모님에게 혼나고 나면 울먹울먹 눈물을 한 가득 머금은 아이들은 생각합니다. 세대가 달라졌다고 해서 이런 생각 한번 안 해 본 아이가 있을까요? 재미난 이야기와 독특하고 기발한 그림으로 아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들의 엉뚱하고 귀여운 생각을 들여다보고, 나와 가족의 관계,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유머로 녹여내어 그린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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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ㆍ그림책 작가, 그림책 번역가로 그림책 전문 어린이 도서관 '패랭이꽃 그림책 버스'와 그림책작가 양성코스‘이상희의 그림책워크샵’을 운영하면서, 그림책 전문 도서관 건립과 그림책도시 건설을 꿈꾸고 있다. 『소 찾는 아이』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은혜 갚은 꿩이야기』『봄의 여신 수로부인』등에 글을 썼고, 『심프』『바구니 달』『작은 기차』『마법 침대』등을 번역했으며, 그림책 이론서 『그림책쓰기』,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