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그림책으로 마음 선물하기
사직서를 낼까 고민하는 당신에게
『고래가 보고 싶거든』
고양에 있는 한 도서관에서 두 해째 북 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첫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는 '여자와 책'을 주제로 저자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고양에 있는 한 도서관에서 두 해째 북 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첫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는 '여자와 책'을 주제로 저자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행사에 참여하는 이들이 99.9퍼센트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든 생각. 대체 그 많은 남자들은 공부하기 좋은 저녁 시간에 무얼 하고 있을까.
어쨌거나 여성을 대상으로 구체적 주제를 정하려고 30대 미혼인 담당 사서에게 사전 질문을 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은?”이라고 묻자 “떠나고 싶다”는 답이 나왔다. 아직 결혼 전이니 지금을 놓치면 인생에서 영영 다른 기회를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고 했다. 그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자신에게 뭔가 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 하지만 그녀는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안정된 직장을 버리자니 불안하다. 현재를 버릴 용기가 없다. 떠날 것이냐 머물 것이냐, 안정된 권태냐 혹은 불안한 자유냐, 삶은 늘 이것이 문제다.
내친 김에 사직서를 내고 런던이나 파리 그 비슷한 낯선 도시에서 아직 이루지 못한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당신에게 선물할 책이 있다. <고래가 보고 싶거든>이다. 현대 그림책 작가들의 작품은 사실 어린이용이라고 잘라 말하기 어렵다(물론 그 이전의 작가들도 그러했지만). 누구나 공감할 보편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그렇다. 맑고 투명한 선과 색으로 담백하게 소년과 고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에린 E 스테드의 그림도, 줄리 폴리아니의 섬세한 언어도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누구라도 감탄하며 음미할만하다. 뉴욕타임즈는 “줄리 폴리아노의 언어는 하나의 조각처럼 정교하다 신중하다. 시간을 들여 자기만의 언어를 빚어내는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고 전율하게 한다”고 평했다.
고래가 보고 싶니?
그렇다면 창문이 있어야 해.
그리고 바다도.
시간도 있어야 해.
바라보고
기다리고
“저게 고래가 아닐까?” 생각할 시간.
“저건 그냥 새잖아.”
깨달을 시간도.
고래가 보고 싶은 소년이 있다. 그림책은 소년에게 “고래가 보고 싶니?”라고 말을 걸며 시작한다. 고래를 보려면 많은 게 필요하다. 창문과 바다와 시간 같은 것, 하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많은 걸 참고 기다려야 한다. 한눈도 팔면 안 된다. 고래가 언제 나타날지 기약도 없고 그 사이 많은 유혹들이 소년을 찾아오니까. 장미와 커다란 배와 펠리컨과 구름까지. 이 모든 것들이 왔다가 가는 동안에도 한 눈 팔지 않고 소년은 고래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글쎄, 어떻게 되었을까? 그 답은 우리 자신만이 알고 있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지금 우리 역시 모를 것이다. 그 답은 오로지 우리가 한 생을 다하는 순간에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에린 E. 스테드는 연필로 섬세하게 선을 그리고 리놀륨 판화로 면에 색을 입혀 이 시적인 언어를 그림으로 형상화해냈다. 마치 크레파스로 부드럽게 색칠을 한 것처럼 에린 E. 스테드가 그려낸 바다와 하늘과 구름과 고래는 따뜻하고 맑다. 연필선이 투명하게 살아있는데다, 꼭 필요한 것만 간결하게 잡아내고 여백을 충분히 그림 안으로 끌어들여 간결하지만 깊은 여운을 준다.
친구의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어지간히 힘이 들었는지 “직장인들이 사직서를 넣고 회사에 다니는 심정이 어떤 건지 알겠어” 라고 말해 웃은 적이 있다. 궁지에 몰렸다 싶을 때 우리는 늘 사직서를 생각한다. 경쟁에 지칠 때, 보기 싫은 상사 때문에, 비전이 없어서,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해보려고. 이유는 제각각이다.
<고래가 보고 싶거든>은 사직서를 내고 싶을 때마다 정성스럽게 한 페이지씩 넘기며 조용히 소리 내어 읽어 보면 좋겠다. 읽다가 화가 풀릴 수도 있고, 소년의 모습을 보다가 내가 쫓는 게 고래가 아니라 펠리컨에 불과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읽으면 읽을수록 고래가 보고 싶어질 수도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래가 보고 싶다면 송창식의 노래 ‘고래 사냥’처럼 해보자.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봄이다!
줄리 폴리아노 글/에린 E. 스테드 그림/이예원 역 | 별천지
줄리 폴리아노와 에린 E. 스테드가 처음 호흡을 맞춘 그림책. 역시 섬세한 글과 서정적인 그림이 만났다. 이 그림책에서도 줄리 폴리아노는 모든 소중한 것은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고래가 보고 싶거든줄리 폴리아노 글/에린 E. 스테드 그림/김경연
2012년 『봄이다!』로 보스턴 글로브 혼 북 오너 상을 수상하며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작가 줄리 폴리아노가 다시 한 번 에린 E. 스테드와 손잡고 신작 『고래가 보고 싶거든』을 펴냈다. 2013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작품은 고래를 기다리는 한 아이를 따라가며 간절히 바라는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잔잔한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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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고래가 보고 싶거든, 사직서, 여자와 책
독일문학을 공부했고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일했다. 현재는 책과 출판에 관해 글을 쓰고 방송을 하는 출판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황정민의 FM대행진]에서 ‘한미화의 서점가는 길’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겨레신문]에 어린이책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시대 스테디셀러의 계보』 『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졌다 1-2』 등의 출판시평과 『잡스 사용법』, 『책 읽기는 게임이야』,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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