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그림책으로 마음 선물하기
이봄, 민들레 꽃을 보았나요?
『민들레는 민들레』
버스를 타고 신촌을 지나 홍대 쪽으로 접어들다 깜짝 놀랐다. 몇 해 전 버스전용차로를 만들며 가로수로 심어놓은 이팝나무에 벌써 꽃이 활짝 피었다. 그야 말로 ‘아니 벌써’였다. 봄꽃도 미처 다 구경하지 못했다 싶은데 벌써 초여름을 알리는 꽃이라니! 이 좋은 봄날이 가는구나 싶어 혀를 찼다.
버스를 타고 신촌을 지나 홍대 쪽으로 접어들다 깜짝 놀랐다. 몇 해 전 버스전용차로를 만들며 가로수로 심어놓은 이팝나무에 벌써 꽃이 활짝 피었다. 그야 말로 ‘아니 벌써’였다. 봄꽃도 미처 다 구경하지 못했다 싶은데 벌써 초여름을 알리는 꽃이라니! 이 좋은 봄날이 가는구나 싶어 혀를 찼다.
봄이면 꽃들이 피고 진다. 봄을 알리는 전령사는 단연코 꽃이다. 산수유 꽃이 점점이 피면 곧 개나리와 벚꽃이 만발하고 연분홍 진달래도 앞 다퉈 피어난다. 극적으로 아름다운 벚꽃이 모두 지면 조용하고 은은한 황매가 꽃을 핀다. 그러니까 봄꽃들이 모두 지고나면 초여름을 앞두고 이팝나무와 조팝나무에 밥알 같은 꽃이, 보기만 해도 서러운 찔레꽃이 온 산에 가득 피는 법인데, 벌써 하얀 꽃이 피었다.
봄꽃은 어디나 있다. 아직 잎이 푸르지 않아 눈만 제대로 뜨면 어디서나 울긋불긋 꽃들이 시선을 잡아끈다. 한데 마음이 있어야 볼 수 있는 꽃이 있다. 고개도 숙여야 한다. 민들레꽃이다. 꽃은 꽃이로되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른다. 민들레는 작고 보잘 것 없고, 땅에 착 달라붙어 있다. 뭇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벚꽃이나 복사꽃 등에 견주면 서러울 정도다. 설마 여기에 있을까 싶은 곳에도 조그만 틈만 있으면 제 한 몸을 풀어내 꽃을 피운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기 민들레가 있는 줄 모르고 밟고 지나간다. 오죽하면 ‘앉은뱅이’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보도블록 틈 사이로 피어난 민들레 꽃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민들레는 이런 제 모습이 싫증나지 않을까. 저도 화려한 벚꽃이나 복사꽃이 되고 싶지 않을까. 『민들레는 민들레』는 이런 사연을 그림책으로 풀어냈다. 언제 어디서든 있는 힘껏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글과 그림이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한 그림책이다. 그림책의 문법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책이다. 이 그림책의 가치를 먼저 알아본 건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이다. 매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리는 아동도서전 논픽션 부문에서 라가치 상을 수상했다. 수상의 이유는 이렇다.
"이 시적인 그림책은, 씨앗에서부터 바람에 흩어져 날리기까지 민들레의 한 생애를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여백을 잘 살린 섬세한 수채화와 최소한으로 절제된 간결한 글은, 도시에 사는 한 식물이 어떻게 자라나고 어떻게 살아남는가를 힘주어 말함으로써, 작고 약한 생명들이 삭막한 환경을 꿋꿋이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무엇보다 우리 삶 속에서 가장 평범한 것들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무릇 하나의 장르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갖는다. 그림책은 그림으로 이야기하는 책이라 글과 그림이 만나 울리는 이중주의 즐거움을 누리는 자에게 그 속살을 보여줄 때가 있다. 이 그림책의 글은 계속해서 '민들레는 민들레'라는 말을 후려구로 반복한다. 문장도 짧고 소박하다. 나머지 이야기는 모두 그림이 들려준다. 글이 '여기서도 민들레/ 저기서도 민들레/ 이런 곳에서도 민들레'라고 말하면 그림은 여기와 저기와 이런 곳이 어디인지를 그림으로 들려준다. 여기는 가로수 아래 보도블록 사이에 핀 민들레이며, 저기는 고속도로 중앙분리대 콘크리트 사이에서 피어난 민들레이며, 이런 곳은 허름한 동네의 기와지붕 틈에서 피어난 민들레다.
계속해서 그림책은 심심할 정도로 단순하게 민들레를 노래한다. 하지만 '혼자여도 민들레/ 둘이여도 민들레/들판 가득 피어나도/민들레는 민들레'라는 글을 따라 그림을 볼 때 독자는 알게 된다. 아하, 민들레는 혼자도 피어, 무리지어도 피고, 도시에서도, 소들이 풀을 뜯어먹는 산비탈에도 잘 자라는 구나 하는 사실을. 그림책은 이렇듯, 민들레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민들레의 한살이와 생태적 지식에 관해서도 그림을 통해 적확하게 보여준다.
지극히 절제된 글도 그렇고 여백을 충분히 살려 사실적인 수채화로 그려낸 그림도 그렇고 다 쏟아내지 않고 멈추고 아낀다. 있는 거 없는 것 모두를 쏟아내는 것보다 아끼고 멈추는 건 작가들에게 더 힘든 일일지 모른다. 민들레 꽃이 지고 씨가 맺혀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민들레처럼 작고 여리고 보잘 것 없더라도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라는 말을 어디엔가 넣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은 민들레 씨가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을 아득히 보여주며 끝이 난다. 그림책을 덮고 나면 어른 독자에게는 '나는 어떤 민들레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어린이 독자에게는 작은 풀꽃들의 노래에 귀 기울이는 즐거움을 안겨줄 그림책이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마음이 닿으면 한 줄의 문장으로도 치유를 받는 게 사람이다. 『민들레는 민들레』를 읽고 마음이 저릿했다면 이무석 박사의 『자존감』까지 읽어보길!
자존감
이무석 저 | 비전과리더십
자신의 내면과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자기애의 시작이며, 이는 자존감을 가지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생활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의학박사이자 국제정신분석가로 인간 내면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온 저자는 자존감과 열등감이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보다는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비롯된다고 말하며, 각자 자신에 대한 태도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도록 한다.
민들레는 민들레김장성 글/오현경 그림 | 이야기꽃
민들레는 흔하고 가까우면서도 예쁩니다. 게다가 피고 지고 다시 싹틔우는 생명의 순환을 거의 동시에 다 보여줍니다. 그래선지 어린 독자들에게 민들레의 한살이를 보여주는 생태 그림책이 적지 않습니다. 이 책도 민들레의 한살이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민들레가 온몸으로 전하는 또 다른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 주기를 소망합니다. 자기다움의 이야기, 자기존중의 이야기, 그래서 저마다 꿋꿋하자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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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문학을 공부했고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일했다. 현재는 책과 출판에 관해 글을 쓰고 방송을 하는 출판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황정민의 FM대행진]에서 ‘한미화의 서점가는 길’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겨레신문]에 어린이책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시대 스테디셀러의 계보』 『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졌다 1-2』 등의 출판시평과 『잡스 사용법』, 『책 읽기는 게임이야』,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 등의 책을 썼다.
<김장성> 글/<오현경> 그림9,000원(10% + 5%)
"이 시적인 그림책은, 씨앗에서부터 바람에 흩어져 날리기까지 민들레의 한 생애를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여백을 잘 살린 섬세한 수채화와 최소한으로 절제된 간결한 글은, 도시에 사는 한 식물이 어떻게 자라나고 어떻게 살아남는가를 힘주어 말함으로써, 작고 약한 생명들이 삭막한 환경을 꿋꿋이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