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부르면 꽃이 될 이름
그러기에 중요한 고민
살다보면 이름이 사람의 이미지와 잘 맞아서, 혹은 너무 달라서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 이왕이면 아이에게 잘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중학생 때 단짝이었던 친구의 이름은 남자 같았다. 학년 초, 앞뒤 자리에 앉게 된 계기로 친해졌는데 그 애는 공교롭게도 자신과 이름이 같고 성만 다른 남자애와 짝이 되었다. 반 친구들은 두 사람의 이름표를 보며 ○○끼리 짝이 되었네, 하고 한마디씩 했다. 그 남자애가 얼마 뒤 전학을 가는 바람에 그 일은 곧 잊혔지만, 중학교 때 내내 단짝 친구의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을 적어가며 편지를 쓰는 동안 나는 그 애의 이름이 남자 같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었다.
단짝 친구나 중학교 때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너는 어떻게 그걸 기억하니?” 하고 물었다. 그건 내가 기억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름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빨강머리 앤이 다이애나의 이름에 감탄하고 부러워한 것처럼 일기장 한 귀퉁이에 좋아하는 이름 목록을 적어두곤 했다(소설을 쓴 뒤로는 등장인물의 이름들을 모아두었다). 나는 받침이 하나도 없는 내 이름이 밋밋하다고 생각해서 늘 받침이 있는 이름을 좋아했고, 그 이름을 부르거나 적고 싶어서 친구나 동생들의 이름이 그것이기를 바랐다.
임신 25주를 넘어서면서 슬슬 아기의 이름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압박감이 생겼다. 정하지는 못하더라도 몇 개의 후보를 만들어놓지 않으면 나중에 우왕좌왕하다가 엉뚱한 결정을 내리게 될 것 같은 불안함이 들었다. 이름을 짓는 건 태명을 붙이는 것과는 달랐다. 태명이 학년마다 생기는 별명 같은 거라면 이름은 아이가 평생 가지고 갈 표식, 사람들이 아이를 떠올리고 부를 때마다 사용할 이미지였다. 남자아이라고 너무 남자다움을 강조하거나 유행에 따르고 싶지 않고 독특함에 매이는 것도 싫었다.
살다보면 이름이 사람의 이미지와 잘 맞아서, 혹은 너무 달라서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 이왕이면 아이에게 잘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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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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