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이름이 뭐예요?
마음과 정성을 다해 불러보는 이름
나 임신했어, 라는 말을 할 때는 매번 쑥스럽고 입에 붙지 않았는데 태명이 축복이에요, 라는 말은 훨씬 자연스럽게 나왔다. 나에게 복이 되는 아이가 아니라 살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아이였으면 싶었다.
밤에 누워서 아아,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알 수가 없네. 걱정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중얼거리면 옆 사람은 아아, 너는 책을 네 권이나 냈지만 나는 겨우 한 권밖에 안 낸 신인이라네, 하며 화답했다. 그러면 우리는 미리 짜놓은 것처럼 아아, 문학은 죽어가고 우리는 늙었고 입은 하나 더 늘어난다네, 하고 입을 모았고 마지막은 오늘도 태명은 짓지 못했다네, 로 마무리되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몸이 어떤가를 챙긴 뒤 태명은 지었어? 태명이 뭐야? 하고 물었다. 그러면 나는 아직 생각 중이라고 얼버무렸다. 어릴 적에 장난감이나 인형이 생길 때마다 열심히 이름을 지어주던 사람으로 초음파 사진을 받은 순간부터 태명에 대해 고민했지만 정하지 못했다. 뱃속에 있는 동안에만 쓰고 사라질 이름이라는 점에서 부담이 적었지만 그래서 더 의미 있는 이름을 지어야 할 것 같았다. 카페에도 태명을 골라주세요, 라는 게시글이 종종 올라왔다. 튼튼이, 힘찬이, 꼬물이, 콩이, 봄이, 통통이, 새싹이…… 귀엽고 예쁜 태명이 아주 많았다. 나도 나름대로 수첩에 후보들을 메모해두었지만 너무 팬시해서 내 것 같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늦은 나이에 엄마가 되는 걸 보면 네가 참 복이 많다. 나는 좀 어리둥절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했다.
“그 나이에 복 받은 거야. 요즘 아기 문제로 마음 고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태명 축복이는 그렇게 지어졌다. 너무 큰 이름인가 싶었지만 요란하지 않아 좋았다.
나 임신했어, 라는 말을 할 때는 매번 쑥스럽고 입에 붙지 않았는데 태명이 축복이에요, 라는 말은 훨씬 자연스럽게 나왔다. 나에게 복이 되는 아이가 아니라 살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아이였으면 싶었다. 가끔은 ‘축복’이라고 지어놓고 ‘걱정’이라고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미안했지만.
[관련 기사]
- 그렇게 엄마가 되는 여자들 (1)
- 진짜 둘이 되고 진짜 엄마가 되는 순간
- 너의 소리가 들려
- 예전에는 알 수 없었던 것들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