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여자의 배
우리는 모두 엄마에게서 왔다
나는 그 순간에 불현듯 깨달았고 비로소 확신했다. 엄마의 상황이나 현실, 심리가 어떠했든 모든 엄마와 자식은 일정 기간 동안 한 몸으로 지내다가 분리된다는 사실이 경이롭고 숭고했다. 그것이 엄마, 라는 단어를 듣거나 발음할 때마다 묘한 아픔과 눈물을 동반하는 까닭인지도 몰랐다.
거리를 걷다보면 알고 싶지 않아도 그즈음에 유행인 음악과 옷, 머리 스타일을 접하게 된다. 상점에서는 가장 핫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쇼윈도에는 그 계절의 히트 상품이 걸려 있다. 한때 나는 그런 유행에 민감했고 그 다음에는 열심히 피해 다녔고 어느 순간에는 그저 흥미로운 심정으로 구경했다. 번화한 거리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일은 대체로 즐겁고 가끔 피로했다.
임신한 뒤 번화가에 나갈 때마다 관심사가 변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임신 초기에는 스스로 발랄함의 열기를 뿜어내는 젊은이들을 동경의 눈빛으로 쳐다봤다면 점차 또래의 여자, 특히 그녀들의 배에 시선이 머물렀다. 가임기인 여성들의 배, 아직 임신과 상관없거나 임신을 모르는 매끈하고 납작한 배와 임신 중이거나 임신을 경험한 흔적이 보이는 배. 봉긋하거나 불룩하거나 산달이 가까워 만삭이 된 여자들을 발견하면 배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일면식도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모르는 체 살아갈 사람들이지만 동지의식을 담아 응원을 보냈다. 그리고 그 엄마들과 같이 나온 아기들에게도 눈인사를 보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평일 대낮의 거리에는 임산부와 아기 띠를 하거나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아기 엄마들이 꽤 많았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들은 자거나 입을 오물거리거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유모차에 탄 아기들은 발을 까딱거리거나 손가락을 빨거나 몸을 들썩거렸다. 사람들은 그 옆을 바삐 지나가거나 무관심하거나 아기다, 하며 관심을 보이거나 눈을 맞추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남자도 여자도, 부자도 가난한 자도, 권력이 있는 사람이나 무력한 사람, 지위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엄마의 배 속에서 태어났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아는 당연한 사실인데도 나는 그 순간에 불현듯 깨달았고 비로소 확신했다. 엄마의 상황이나 현실, 심리가 어떠했든 모든 엄마와 자식은 일정 기간 동안 한 몸으로 지내다가 분리된다는 사실이 경이롭고 숭고했다. 그것이 엄마, 라는 단어를 듣거나 발음할 때마다 묘한 아픔과 눈물을 동반하는 까닭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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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