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예전에는 알 수 없었던 것들
그래서 이제야 뒤늦게 전하는 축하의 마음
내가 먼저 소식을 전한 사람들은 모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다. 엄마방에 들어가기 전에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는 기분이었다. 소식을 전하며 근황을 나눈 뒤 전화를 끊을 때 그녀들은 모두 비슷한 말을 했다. “축하해. 곧 보자. 먹고 싶은 거 사줄게.”
가족에게 알리는 걸 시작으로 친구, 선후배 들에게도 임신 소식을 전했다. 하소연을 하거나 엄살을 떨고 싶어서가 아니라 같이 얘기하는 동안 이 어리둥절하고 붕 뜬 기분이 일상에 안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실제로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어 새로운 생명에 대한 기대로 부풀었다가 처지를 비관하고 좌절에 빠지기를 반복했다.
친한 후배는 앞으로 언니랑 할 얘기가 더 많아질 것 같아서 좋다고 했고, 오랜 친구는 유미야, 하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초등학생인 아들 둘을 키우는 친구는 사는 곳도 멀고 직장에 다녀 자주 보지 못했다. 잘했다, 잘됐어. 그 애의 목소리는 내가 소설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처럼 떨렸다. 먼 곳의 목소리인데 바로 옆의 손길처럼 어깨를 토닥거렸다. 이번에는 내가 울컥해서 가만히 있었다.
결혼과 출산 모두 늦은 선배는 실질적인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
- 그거 노산도 아니야. 앞으로 노산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해.
선배의 웃음은 경쾌하고 다감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먼저 소식을 전한 사람들은 모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다. 엄마방에 들어가기 전에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는 기분이었다. 소식을 전하며 근황을 나눈 뒤 전화를 끊을 때 그녀들은 모두 비슷한 말을 했다.
- 축하해. 곧 보자. 먹고 싶은 거 사줄게.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한동안 가만히 누워 있었다. 쑥스러움이 사라지고 현실감이 차츰 돌아왔다. 다들 잘 낳고 잘 키우고 잘 지내고 있다는 게 용기가 되었다.
그리고 오래전, 가깝게는 몇 년 전까지 내게 임신 소식을 전하던 그녀들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뭐라고 했나. 좀 놀란 뒤 축하한다고 건강 잘 챙기라고 했던 것 같다. 필요한 게 없냐고 맛있는 걸 사주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엄마가 될 그녀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겼던 것도 같다. 당연히 임신 중의 입덧과 태동과 널뛰는 기분에 대해 말했을 때 귀기울여주지도 못했다. 그런 것이 떠오르니 너무 미안해서 어디론가 숨고 싶어졌다. 나는 팔로 얼굴을 가리고 아아, 한숨을 쉬었다.
먼저 엄마가 된 지인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얘기해주고 싶었지만 그저 마음으로 속삭였다. 아무것도 몰라서, 그쪽으로는 관심이 없어서 다정하지 못했던 거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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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