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메슥거림
이제 조금씩 변화하는 것
입덧이 시작되었다. 평소에 가장 좋아하던 두 가지가 입에 맞지 않고 먹고 싶지도 않았다. 커피와 육류. 가장 좋아하던 것이 실질적인 입덧의 주범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7주와 8주, 세상은 봄이었다.
라디오에서는 봄바람, 봄옷에 대한 얘기와 봄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와 봄이다, 아 입을 옷이 없네, 의 세계에 속해 있었는데 갑자기 국외자가 된 기분이었다. 옷은 사면 뭐 하겠노, 살쪄서 못 입겠지. 나는 예쁜 옷이나 신발을 볼 때마다 개그맨의 말투를 따라했다.
누군가 임신기간은 합법적으로 살찔 수 있는 기간이니 맘껏 먹으라고 했고 누군가는 나중에 살 빼기 힘드니(나이가 많을수록 더욱) 임신했을 때 체중을 조절하라고 했다. 그런 충고에 대해 고민할 겨를도 없이 입덧이 시작되었다. 평소에 가장 좋아하던 두 가지가 입에 맞지 않고 먹고 싶지도 않았다. 커피와 육류.
커피는 원래 냄새만 맡아도 마음이 말랑해지고 한 모금에 영혼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는데 마셔도 별 감흥이 없었다. 몇 잔을 마셔도 잠이 안 온다거나 속이 쓰린 적이 없었는데 반 잔 마시고 밤을 꼬박 새운 뒤 멀리하게 되었다. 각종 육류는 좋아하면서도 즐겨먹는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고깃집 앞을 지나가면서도 숨을 참아야 할 정도로 냄새가 역했다.
가장 좋아하던 것이 실질적인 입덧의 주범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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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