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불후의 칼럼 > 하지현의 마음을 읽는 서가
나는 누구인가라고 단 번에 말을 할 수 있을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내가 누구라고 말을 하기란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아주 어릴 때에는 그저 ‘아빠와 엄마의 자식’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추천하는 심리책 이야기, ‘하지현의 마음을 읽는 서가’가 연재됩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에 선뜻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내가 누구라고 말을 하기란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아주 어릴 때에는 그저 ‘아빠와 엄마의 자식’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그리고 자라면서 조금씩 나를 규정하는 요소들이 늘어나면서 나를 정의하는 것도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특히나 어른이 되어 직업이라는 갖게 되면 더욱더 이 문제는 중요해진다.
사실 사회에 진출을 하는 일을 통해 내가 얻는 것은 ‘정체성’의 중요한 한 부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정신분석가 에릭슨은 정체성을 ‘개인 정체성’과 ‘사회적 정체성’으로 분류하면서 사회적 활동을 하면서 점점 더 커지는 것이 사회속에서 나를 규정하는 사회적 정체성이라고 했다. 사회적 정체성은 현재 수많은 이들의 고민의 원천이기도 하다. 수많은 청춘들이 학생이란 사회적 정체성의 유효기간은 끝났지만, 아직 그 다음의 정체성을 만들지 못해 고생을 하고 있다. 장년층은 사회적 정체성이 부여하는 힘이 워낙 강해 개인 정체성을 잃고 ‘조직의 톱니바퀴’일 뿐이라 자괴하며 괴로워한다. 이제는 다시 XX라는 사회적 정체성의 옷을 벗고 나면 그 안에는 무엇 하나 남아있지 않은 빈껍데기뿐인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고 공허함과 혼란의 중년기에 접어드는 것이 그 다음의 순번이다. ‘이건 내가 원하는 내가 아니었어’라는 미련과 후회에 망설이면서 끌려가듯이 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고민들은 ‘사회적 정체성’과 ‘개인의 정체성’ 사이의 균형이 깨진 것들,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과도한 경도, 또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 일들이다. 실제로 내가 상담을 하는 성인들의 고민의 핵심은 대부분 이 언저리에서 만날 수 있다. ‘나란 누구인가’라는 고민 속에 오늘도 머리를 싸매고 있는 분들에게 어떤 책을 권하면 좋을까? 마침 새로 도착한 따끈한 책이 한 권 눈에 들어왔다. 박성제의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푸른숲)다. 저자 박성제는 MBC 노조위원장을 하다가 해고된 해직기자다. 그런데, 지금 하는 일은 쿠르베라는 혁신적인 디자인의 하이엔드 스피커를 수작업으로 제작해서 판매하고 있다. 인생의 대 반전이라면 대 반전이다.
책이 끝날 때까지 그는 자신이 여전히 ‘천상 기자’라고 자신을 규정하고 싶어하지만, 조금씩 ‘스피커 장인’의 아이덴티티에 강한 애착을 갖기 시작한 것도 분명해 진다. 원하지 않게 잘 만들어온 궤적에서 튕겨져나온 한 남자가 주저앉아 울거나, 어떻게든 그 라인위로 다시 올라타려고 아둥바둥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보니 전혀 다른 종류의 삶을 만들어가게 되었다. 지금의 그를 제일 잘 설명하고 있다. 그의 지난 몇 년의 삶을 쫓아가면서 판단의 순간의 생각을 살펴보면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의 치트키의 재료를 얻을 수 있다.
그는 고등학생때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서울대학교 국문과에 들어간 다음에도 여전히 주로 음악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한량같은 학생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대학동창회에 나가서 “너같은 부르조아 한량이 노조운동을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처음 사회적 정체성을 만들기 시작하는 시기가 20대 초반이다.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고등학교 시절의 강한 억압에서 벗어나서 ‘나만의 나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시도를 자유롭게 한다. 아마도 이 시기만을 봤던 친구들은 그의 삶의 궤적을 지금까지도 같은 방향으로 외삽을 했기에 그렇게 봤을 것이다. 40대 초반까지는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MBC에 기자가 되었다. 그리고 기자의 정체성을 뼛속 깊이까지 새기게 된다. 여전히 술먹고 놀기 좋아하고, 사람좋아하는 한량이지만 기자라는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는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에게 그만큼 중요하고, 지금의 자신을 가장 잘 설명하는 큰 기둥과 같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어느 날 노조위원장을 제안받는다. 그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열혈 노조 활동파도 아니고, 학생때 운동권도 아니었으며, 사회적 비판에 목소리를 높여온 사람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여기서부터 그의 궤적이 한 핀트씩 엇나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계기가 드라마에서 볼만한 어떤 대단한 사건을 경험하면서 대오각성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조직에서 오랫동안 몸담으며 잘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요구에 대해서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는 제안을 받고 아내와 상의한다.
“나 같은 평범한 기자가 잘 할 수 있을까?”
“일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흔치 않은 선배잖아. 꽉막힌 투사 스타일보다 당신처럼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한량 스타일이 더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어”
결국 평범한 기자, 철없는 남편은 노조위원장이 된다. 이때부터 그에게는 기자에 언론사 노조위원장이 중요한 정체성의 한 축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주어진 일과 의무를 그에 맞춰서 해내가면서 좋아하던 골프도 끊고, 양주도 마시지 않게 된다. 그러다보니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시간이 많아진 것을 기뻐하는 것으로 균형을 맞춘다. 2년의 노조위원장 생활이 끝났지만 이미 그의 정체성의 궤적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는 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서 원하던 보직은 모두 물건너가고, 특파원도 탈락한다. 이후로는 무슨 정당한 지적을 해도, 간부로부터는 “너는 아직도 노조위원장인줄알아?”라는 편견적 반응만 듣게 될 뿐이었다.
얼마 안있어 그는 그저 뒤에 시위를 할때 뒤에 서 있었다는 이유로 주동자가 되어 해고를 당한다. 갑자기 지난 이십년 가까이 갖고 있던, 그리고 그의 정체성의 중심기둥인 기자라는 정체성을 박탈당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그 역시 처음에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앞날에 대한 걱정과 현실에 대한 염려속에 있던 어느날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절대 스트레스 받지 말자. 내가 건강하고 즐거워야 내 가족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화내지 말자. 그들을 떠올리며 스트레스 받지 말자. 그러면 내가 지는 거다. 즐겁게 살아야한다.
그러고 나서는 우연히 식탁을 만들기 위해 목공을 배우기 시작하고, 몇 개를 만들고 난 다음에 평소 취미인 오디오를 접목해서 스피커를 만들 생각까지 나아가게 된다. 제일 취미로 가장 좋아하던 놀이를 실현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왜 스피커는 네모인가’란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동그란 스피커 쿠르베다.
처음 시작품을 만들고, 이어서 그가 평소 활동하던 인터넷 사이트의 회원들과 함께 모여 제대로된 스피커를 설계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나온다. 중간에 독립언론과 대기업 홍보임원으로의 전직을 제안받지만 거절하고, 당시 가장 흥미가 가고 좋아하는 일이던 스피커 작업을 선택한다. 그는 그 과정들을 ‘나는 내가 단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고자 했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쿠르베가 조금씩 알려지고 전람회에도 나가고, 잡지에 소개될때에도 ‘해직 언론인이 만든 스피커’보다는 ‘장인이 만든 명품 스피커’로 평가를 받고 싶어하게 된다. 그는 쿠르베와 해직 기자 박성제를 분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지금 그는 해고 소송에서 승리했지만 여전히 MBC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에 그는 여전히 기자이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쿠르베도 자신의 분신으로 계속 그 생명을 이어가기를 원한다. 그런 선택의 이유에 대해서
나는 즐겁게 살고 싶었다. 돈은 못벌어도 좋았다. 스피커를 디자인하고 내 손으로 하나하나 완성해가면서 더할나위 없는 만족을 느꼈다. 즐겁고 행복했다. 해보고 안되면 그때 가서 접으면 된다.
아마도 이것이 지금 불확실한 세상을 돌파하는 힘이 된다고 그는 생각한 것이다. 해직 언론인 박성제는 ‘전직 노조위원장이자 베테랑 기자’로서 해야 할 일들, 요구되는 삶이 더 중요했다. 그런데 쿠르베를 만드는 그는 ‘스피커를 만들면서 즐겁고 더 할 나위없는 만족’을 느끼고 있다. 좋은 기사를 쓰고 큰 반향을 얻어 사회에 영향을 주는 것만큼 하나의 좋은 스피커를 만들어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도 만족스러운 ‘박성제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일’이 된 것이다. 3년전만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일이 지금의 그의 삶의 대부분을 규정하는 것이 되었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체성이란 한 번 정해지면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물과 같이 바뀌어갈 수 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다른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쌓아온 것 위에 덧씌어지면서 다른 삶을 만들어간다.
기자 생활을 했기에 빠른 판단과 기민한 행동으로 몇 년만에 스피커를 만들어냈고, 유연한 관점이 네모난 스피커에서 벗어난 쿠르베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기자이고 싶어한다. 이 책의 분량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기자로서 살아온 삶, 스피커 장인이 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아내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6대 3대 1의 비율로 분리해서 서술했다.(페이지 수를 확인해보았다) 마치 그의 쿠르베 스피커가 3 유닛인 것과 같았다. 각각의 유닛이 가장 큰 통, 중간 통, 작은 통으로 분리 되어 있듯 한 권의 책 안에 전혀 질감이 다른 세 개의 이야기가 동거하고 있다. 아마도 그게 바로 저자의 마음의 현상태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자, 스피커장인, 한 여자의 배우자로서의 삶이 모두 그를 적당히 나뉘어서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 하나 만으로는 그를 설명할 수 없고,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다. 베이스가 되는 제일 큰 유닛, 중간을 구성하는 유닛, 그리고 마지막으로 맨 위에 작아보이지만 없어서는 안되는 유닛이 모두 합칠 때 쓰리웨이 스피커는 완성된 소리를 만들어내듯이. 그리고 상황에 따라 우리 마음안에서 각각의 유닛은 언제든 자리를 바꿀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체성의 유동성을 인식하고, 각각의 요인들의 절묘한 균형이야말로 정신건강을 유지하고 오늘의 삶을 만족스럽게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불확실하고 변덕스러운 환경안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하는 우리에게 특히나 요구되는 능력이다. 내안의 모든 것이 나를 구성하는 것들이고, 무엇하나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박성제 저 | 푸른숲
2012년 6월 20일, 19년간 MBC 방송기자로 폼 나게 살던 중년 사내가 회사에서 쫓겨난다. 회사 선후배들과의 관계는 물론, 주변 평판이 좋은 언론인이자 20년간 50개의 스피커를 탐닉했던 AV애호가이며 퇴근 후면 늘 한강을 누비던 라이더로 살아온, 좀 놀 줄 아는 평범한 아저씨의 인생에 유례없는 위기가 닥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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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하지현, 마음을읽는서가, 어쩌다보니 그러다보니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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