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불후의 칼럼 > 하지현의 마음을 읽는 서가
청소년에게도 감정코치가 필요하다
『감정코치K』를 추천하는 이유
이 책은 지금의 십대 아이들이 고민하는 내용들이 무엇이고, 또 이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데 있어서 감정의 인식과 이를 다루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추천하는 심리책 이야기, ‘하지현의 마음을 읽는 서가’가 연재됩니다.
“짜증나!”
“왜 짜증이 나는데?”
“몰라. 그냥 짜증나. 짜증이 나서 짜증난다고 하는데 다른 이유가 필요한 거야? 그냥 혼자 있게 해줘. 학교 가는 것도 짜증나고, 학원 가는 것도 싫고 다 짜증나.”
영우는 사춘기에 접어든 다음부터 가끔 한 번씩 이런 식으로 이유 없는 짜증을 낸다. 엄마는 답답할 뿐이다. 이번에도 한동안은 잠잠하다가 갑자기 얼굴빛이 바뀐 것을 보고는 올 것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기분이 나빠지고 짜증이 나는 이유를 알아야 문제도 해결을 할 텐데 아이는 그저 짜증이 난다고 말을 하고,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다.
가만히 들어보면 우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엄마는 더욱 속상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하는 것이지? 영우도 자기 마음이 어떤지 알 수 없다. 종잡을 수 없고 괴롭기는 매한가지다. 공부 스트레스, 친구들과 자잘한 스트레스가 없지는 않다. 그런데 어떨 때에는 뭔가 밑에서부터 차올라 와서 뭔가 확 터져야 속이 시원해질 것 같은 답답함이 견디기 어렵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 저렇게 참다가 짜증을 내게 된다. 영우도 생각을 해보려고 하지만 머리가 마비되어버렸는지 돌아가지 않고 그냥 서버린 것만 같다. '내가 이상해진 것이 아닌가?' 겁이 덜컥 나지만 그걸 누구에게 말을 하기도 무서웠다.
무섭고 힘들다고 얘기하면 엄마나 선생님은 상담을 받거나 정신과를 가라고 할 텐데 그건 정말 더 겁이 나는 일이다. 상담을 받으러 가는 친구들을 보면 뭔가 문제가 있어서 가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장벽을 넘어설 방법이 없을까?
이와 같은 10대들이 많다. 이런 십대들에게 필요한 것은 먼저 감정의 흐름을 보는 능력을 갖추게 해주는 것, 그리고 상담이라는 공간이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모자라고 문제가 있는 아이가 벌을 받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와 같은 정신과의사나 상담선생님이 아무리 얘기를 해도 아이들은 먼저 방어벽부터 치기 쉽다. 또 일부 현장의 선생님들도 부정적인 편견을 갖고 있어서 아이들이 적절한 상담과 도움을 받는데 벽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마음의 장벽을 넘어설 방법이 없을까?
평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적절한 책이 발간되었다. 그것도 그냥 책이 아니라 ‘만화책’이다. 이진이 글을 쓰고 재수가 그림을 그린 『감정코치K』이다. 이 책은 심리학자이고 감정코칭협회의 회장인 최성애 박사와 학습방법과 교육방법 전문가인 조벽 교수가 원작구성과 감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이야기와 콘텐츠를 구성했다.
큰 키에 회색머리에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버버리 코트를 입은 감정코치K는 학교 선생님의 SOS 메일을 받으면 그 학교에 상담코치로 방문을 해 문제가 되는 학생의 상황을 확인하고 사건을 처리해나가게 된다는 것이 『감정코치K』의 기본설정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만 한편으로 다소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설정이지만 만화이기 때문에 그 안에 숨겨진 설정들이 무엇일지 궁금해 하고, 이런 만화적 설정이 흥미를 자아내는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내 눈을 끈 것은 책에 담겨있는 생생한 사례묘사였다. ‘화떡녀, 존나, 씨발, 사패, 세삥’같이 아이들이 지금 흔히 사용하는 은어들이 가감 없이 대화에 등장한다. 존재감 없이 없어서 아이들에게 무시당하는 아이, 낮은 자존감 때문에 진한 화장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고 SNS에 사진을 올리고 다른 이들의 칭찬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인정받는 것만이 유일한 즐거움이고, 대학생 오빠와 계속 만나기 위해 용돈을 바치는 여자아이, 아이돌 사생팬으로 친구들의 따돌림을 받을 정도로 지나치게 몰입하면서 오직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아이들이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등장한다. 이때 아이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대화들은 마치 그 자리를 바로 옆에서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몰입감을 줄 정도로 생생하다. 만화라는 껍데기를 가진 덕분에 감정표현을 강하게 묘사한 것이나 등장인물의 상태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직선적인 듯 해보이나 도리어 상황을 명료하게 이해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런 현장의 상황들을 맞닥뜨린 감정코치K는 아이들의 주변상황을 면밀히 관찰하고, 아이들의 두려움의 근원을 찾아낸다. 이런 식이다.
한 아이에게 선생님이 『감정코치K』를 만나보라고 하자 아이의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것은 “정신병원에 가라고 하면 어떡하지?”란 불안이었다. 이것은 실제로도 많은 아이들에게서 관찰되는 반응이고, 상담을 받는 것을 모자람의 증거이거나, 체벌의 일종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매우 많다. 그만큼 상담에 대한 거부감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만화를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상담을 통해 아이들이 아주 조금씩이지만 좋아지고, 한 고비를 넘기는 것을 함께 지켜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만화적인 상상력이 상담이란 것의 문턱을 많이 낮춰주는 데에 기여를 하지 않을까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10대 청소년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
불안하다는 것, 짜증이 난다는 것은 인간의 뇌의 ‘원시적 부위’에서 위험신호를 감지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거나, 자신의 감정의 정체를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감정에 압도당하기 쉽다. 『감정코치K』는 원래도 그런 상태가 되기 쉬운 10대 청소년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준다. 그리고, 난 다음 마치 그림을 내려다보다는 것처럼 거리를 두고 감정을 보고 나아가 주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한다.
물론 현실에서는 훨씬 긴 시간이 걸리고, 실패가 성공할 확률보다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만화이기에 단번의 성공과 낙관적 기대의 결말에 대한 거부감이 적게 느껴지게 된다. 이와 같이 『감정코치K』가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도 재미있지만,『감정코치K』는 지금의 십대 아이들이 고민하는 내용들이 무엇이고, 또 이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데 있어서 감정의 인식과 이를 다루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감정코치K최성애,조벽 원저/이진 글/재수 그림 | 해냄
감정코칭(emotional coaching)은 ‘감정을 충분히 공감하되 행동에는 제한을 주는’ 심리기법이다. 『감정코치 K』는 이러한 기법을 통해 청소년들이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함으로써 스스로 그리고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전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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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