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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역사, 그때 거기와 지금 여기를 성찰해야
한옥에서 나온 푸른역사의 책
푸른역사는 역사 전문 출판사다. 역사 책을 내는 곳답게 출판사 건물도 한옥이다. 1997년부터 10년 넘게 역사 책만을 만들어온 푸른역사의 역사를 들어 본다.
다소 신화적인 과장이 포함되긴 하지만, 대한민국은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렇게 유구한 세월을 안정적인 공동체를 일구며 살아간 사회는 세계적으로 흔하지 않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역사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 듯하다. 보통은 대학 입시를 통과하자마자 국사와는 멀어지는 게 현실이었는데, 그마저도 고등학교 국사가 선택 과목이라 역사를 향한 관심은 더 낮아졌다. 물론 해석이 갈릴 수 있는 역사를 정형화된 교과서로 주입식 교육을 한다는 데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한국은 대학 입시가 한 사람의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라는 점. 그렇기에 역사 교육을 신중하게 검토하여 정책적으로 정해야겠다.
그렇다고 마냥 공교육에 기대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교과서를 보완할 양서가 서점에 가득하다. 그리고 그 중 많은 책이 푸른역사에서 만들었따. 푸른역사는 출판사 이름에서 보듯, 역사 전문 출판사다. 1997년에 세워진 뒤 근현대사, 조선사, 고려사 등 이른바 ‘국사’와 함께 로마사, 중국사 등 광범위한 공간의 세월을 다뤘다. 주제의 범위도 다양하여 거시사와 함께 여성사나 이주, 풍속사 등 미시사도 고루 펴냈다.
푸른역사의 정호영 편집과장에게 푸른역사의 역사를 들어본다.
푸른역사는 어떤 출판사인가.
미쳤기에 다다를 수 있었던 조선 선비들, 조선 뒷골목 무명씨들의 소소한 삶, 낡은 액자 속에서 걸어 나오는 서양의 풍경들……. 출판사명이 말해주듯 도서출판 푸른역사는 역사 전문 출판사다. 1997년, 기존의 딱딱하고 어려운 역사서가 아닌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새로운 역사서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출판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역사서 출판만을 고집한다.
출판사 이름에 특별한 의미를 담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도서출판 푸른숲의 자회사로 출발했기에 ‘푸른’을, 역사 전문 출판사임을 알리고자 ‘역사’를 넣었다. ‘푸른역사’에 역사가 더해지면서, 푸른역사 출간 도서들이 늘어나면서 ‘푸른역사’라는 출판사 이름에 의미가 하나하나 늘어나는 듯하다. 신선함, 한결같은 꿋꿋함, 멈추지 않고 흐르는 도도함 등. 앞으로도 독자분들이 ‘푸른역사’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늘려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푸른역사에서 내고자 하는 책은 역사 책일 텐데, 어떤 역사 책인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바로 ‘일반인도 손쉽게 볼 수 있는 역사서’. 과거 역사서 시장은 학술논문에 준하는 전문 학자들의 책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역사에서 멀어진 대중, 대중과 유리된 역사’다. 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꺼리를 던져준다, 현재를 읽는 눈을 키워준다, 역사를 이대로 놓아버려서는 안 된다, 좀 더 새로운 역사서를 만들자, 이런 인식으로 시작했다.
그렇다고 푸른역사가 학술적 성과를 도외시하지는 않았다. 학술서가 거의 수익을 낼 수 없음에도 푸른역사는 역사학계의 중요한 연구 성과를 책으로 묶어내는 작업에도 매진했다. 학술적 깊이가 뒷받침되지 않은 역사 대중서는 의미가 없다는 원칙이 있다. 그 결과 역사학계와 독자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자로 굳건히 자리 잡았고, 역사학계의 지평을 넓히는 데도 일조했다고 감히 자평해본다.
인기가 많았던 책을 꼽는다면.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조용헌), 『조선의 뒷골목 풍경』(강명관), 『미쳐야 미친다』(정민), 『선비답게 산다는 것』(안대회) 등은 출간 후 10여 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책이다. 지금의 푸른역사를 있게 한 일등공신으로 꼽을 수 있겠다. 최근에는 『역사평설 병자호란』(전2권, 한명기)이 ‘인문학의 활로를 보여준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많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생각보다 반응이 없었던 책, 다소 아쉬운 책은.
‘마지막 황태자 시리즈’(전4권, 송우혜)가 아쉬움이 남는다. 1897년 10월부터 1910년 8월 22일까지 13년간 명맥을 유지했던 대한제국 황실 일가의 비극적 연대기와 가족사를 담은 네 권의 책이다. ‘사학자로서의 세밀하고 치밀한 역사적 고증이 소설가로서의 상상력과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독자들의 관심은 불러일으키지 못해 생각보다 반응이 좋지는 않았다.
치유를 목적으로 한 인문학 책이 많이 등장하고, 그 중 일부 책이 많이 읽히기도 한다. 아쉽지만 역사를 향한 관심은 그만큼은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역사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지난 5월 27일 <조선일보> 김태익 논설위원이 ‘역사학자 韓 교수가 보여준 인문학의 活路’라는 칼럼에서 『역사평설 병자호란』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을 했다. “『역사평설 병자호란』 성공의 둘째 이유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읽는 통찰을 제대로 준다는 것이다. 대중이 역사학에 기대하는 바로 그것이다. 병자호란 당시 뜨는 청나라와 지는 명나라 사이에 끼였던 조선과 오늘날 미?중 사이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 조선 조정이 저질렀던 잘못된 전략적 선택은 중국의 G2 부상으로 요동치고 있는 동북아 정세에서 한국이 어떻게 가야 할지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우리가 역사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평이 아닐까 싶다. 역사는 ‘그때 거기’에 대한 진중한 탐구, ‘지금 여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바탕으로 ‘내일의 어딘가’를 위한 진심어린 조언을 한다. 그런 만큼 말해지지 않았던 역사적 인간들, 이야기되지 못했던 역사적 사건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대중의 손에 안겨주어야 한다.
푸른역사만의 문화라는 게 있을까.
특별히 ‘푸른역사만의 문화’라 할 만한 것은 없다. 여느 출판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점심을 회사 근처 통인시장에서 산 반찬과 회사에 있는 밥솥에 갓 지은 밥으로 해결하는 것? 풍성한 집밥 먹는 느낌이 든다. 출판사 건물이 마당 있는 한옥이라서 개인적으로는, 좀 힘들고 지칠 때면 마당을 가만히 내다본다. 그러면 어느 정도 가라앉는다. 마음 쉴 수 있는 여유가 지척에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할 수 있겠다.
‘푸른역사 아카데미’를 통해 독자분들과 직접적인 소통의 장을 마련한 것도 다른 출판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푸른역사만의 특별함으로 꼽을 수 있겠다. ‘푸른역사 아카데미’에서는 서평회, 대담, 강좌, 영화감상, 음악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독자가 역사의 맛을 직접 느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잘 될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는데 지금은 일정 궤도에 오른 듯하다. 대부분 만족해하고. 프로그램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어떤 계기로 역사 편집자가 되었나.
책 읽기가 좋아서. 좀 뻔하고 평범한 답이지만, 특별히 ‘역사’가 좋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아무 책이나 읽고, 감상 서로 나누고……. 그렇게 읽고, 그렇게 공부하다가 편집자가 되었다. ‘역사’의 맛은 계속 알아가는 중이고.
전자책, 팟캐스트 등 독서의 모습이 많이 바뀌고 있는 듯하다. 역사 쪽 책으로는 가까운 미래 독서 모습이 어떻게 변할까.
‘책’이 가지는 특수성 때문인지 전자책이나 팟캐스트가 다른 분야보다는 더디게 활성화되는 듯하다. 그래도 조금씩 시장이 넓어지고 있는 건 분명하고.
역사 분야 전자책의 경우 ‘디지털 백과사전과의 결합’이 예측 가능한 변화가 아닐까 싶다. 전자책에서는 종이책의 제한된 분량 안에 담아낼 수 없는 많은 정보들을 해결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솔직하게 답하자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답이다.
푸른역사에서 앞으로 나올 책은?
『이순신과의 동행』(가제)이라는 책. 정유왜란 발발과 함께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된 후 바다를 찾아가는 ‘인간 이순신’의 고독한 모습을 담은 역사기행서다. ‘시대사 시리즈’(총 10권)도 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시대 한국사를 깊이 있게 조망해보자는 취지에서 한국역사연구회 소속 역사학자들이 대거 참여한 시리즈다. 우선 조선사 두 권을 먼저 출간할 예정이다.
* 푸른역사에서 낸 책
왜 몽골 제국은 강화도를 치지 못했는가
이경수 저 | 푸른역사
몽골의 본격적인 침략이 시작된 것은 1231년(고종 18)이다. 다음 해인 1232년에 고려 조정은 개경에서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고 대몽항쟁을 공포한다. 고려가 몽골과의 전쟁을 끝내고 화의를 맺게 되는 것은 1259년(고종 46)이며, 강화도 조정을 개경으로 되옮긴 것은 1270년(원종 11)이다. 이순신도 없는데, 김유신도 없는데, 고려는 어떻게 몽골의 침략을 오랜 세월 막아낼 수 있었나. 그것은 백성의 힘이었다. 가족을 지키려고, 고려를 지키려고 분연히 일어서 싸우다 쓰러져간 수많은 백성의 희생 덕이었다. 그리고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 덕이기도 했다. 뭍 백성을 버려둔 채 강화 섬으로 천도한 고려 조정의 판단은 분명히 비겁했고 또 현명했다. 강화도 조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면서 몽골에 대한 장기 항쟁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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