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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북스, 근대주의 역사관의 허구성을 일깨우다
근대주의 역사관에 반대하며 고민하고 질문하며 답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필요 역량 있는 편집자가 사라지는 것도 문제
모든 출판사의 목표는 좋은 책을 내는 것이다. 너머북스, 너머학교도 마찬가지다. 성인과 청소년에게 각각 인문학, 역사책을 펴내는 너머북스와 청소년을 독자로 해서 인문학을 소개하는 너머학교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모든 사람이 탐내는 것을 만드는 회사가 있다. 우리가 흔히 ‘명품’이라 부르는 것들 말이다. 대한민국 출판계에도 명품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있다. ‘좋아서 보는 인문학’에서는 인문 사회 서적을 중심으로 출판하는 출판사를 집중 조명하고자 한다. 9편은 ‘너머북스ㆍ너머학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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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는 좋은 서가와 좋은 학교를 꿈꾸는 출판사입니다.’
너머북스와 너머학교에서 낸 책에는 위의 문구가 적혀 있다. 모든 출판사는 저마다 ‘좋은’ 책을 내려고 할 텐데, 너머에서 추구하는 ‘좋은 책’은 어떤 책일까. 그간 너머북스와 너머학교에서 낸 책의 면면을 살펴보면 답이 보인다.
2008년 이후 너머북스는 주로 역사와 인문 분야의 책을, 너머학교는 2010년부터 청소년, 아동 분야의 책을 내왔다. 특히 역사책 중에서는 한때 절판되어 많은 연구자의 마음을 애태웠던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한국의 유교화 과정(이전 제목 : 한국사회의 유교적 변환)』도 있다. 그외에도 존 B. 던컨의 『조선 왕조의 기원』, 미야지마 히로시의 『나의 한국사 공부』 등도 인상적인 역사책이다. 이 책들은 한결같이 유럽의 근대주의 역사관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한국사를 어떻게 봐야 할지를 진지하게 탐구했다.
너머학교에서 나온 시리즈 중에서는 ‘~하는 것’ 시리즈가 유명하다. 『생각한다는 것』(고병권 저), 『사람답게 산다는 것』(오창익 저), 『잘 산다는 것』(강수돌 저), 『느낀다는 것』(채운)은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게 인문학을 편집하면서 인기를 누렸다. 종로구에 위치한 너머북스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에는 너머북스 이재민 대표와 김상미 대표가 응했다.
너머북스와 너머학교에는 모두 ‘너머’가 들어간다. 어떤 뜻을 담았나.
이재민(이하 ‘이’) :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너머에서’라고 하면, 공간적 거리감을 둔다는 의미다. 뭔가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바로 앞에서 보는 게 아니라, 거리를 둬야 한다. 거리를 둬야 편견 없이 읽어낼 수 있다. 편견 없이 현상을 성찰해 보자, 이런 뜻을 담았다. 둘째로, ‘너머로 가자’라고 한다면, 해결의 의미도 있다. 해결이 곧 진보이기도 하다. 이런 두 가지 정신을 책으로 구현해보고자 ‘너머’라고 지었다.
김상미(이하 ‘김) : 책을 매개로 좋은 학교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너머학교’로 표현했다. ‘너머북스’는 성인 역사책, 인문서 등 좋은 책으로 채워진 서가를 만들어가는 의미를 담았다. 너머북스와 너머학교에서 책을 낸 고병권, 미야지마 히로시, 오항녕, 김기협 등은 제도의 틀 속에 있지 않고 넘나드는 노마드 지식인이다. 이들 저자와 출판사가 지향하는 ‘너머’라는 가치가 닮았다.
너머북스, 너머학교의 대표적인 책을 꼽아 달라.
김 : 『생각한다는 것』이 너머학교의 첫 책인데, 생각보다 초기 반응이 빨랐다. 고병권 저자가 10대를 위해 썼다는 사실 자체도 시선을 끌었지만 철학을 쉬운 언어로 설명했다. 일상의 예를 많이 들면서 당시에는 새로운 형태의 청소년 인문서로 자리를 잡았다. 이 책을 필두로 ‘~한다는 것’ 시리즈가 계속 나오고 있다. 10번째로 오창익의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나왔고 이후에 나올 책도 상당히 많다. 안산의 석호중학교, 안양의 인덕원고등학교 등의 학교에서 열린 교실 시리즈로 커리큘럼을 짜서 저자가 특강을 하기도 했다. 이런 수요가 많다. ‘고전교실’ 시리즈도 인기가 많다. 한 가지 고전을 평면적으로 소개하기보다는 저자가 소화하면서 새로운 형식으로 써주는 시리즈다. ‘고전이 건네는 말’ 시리즈는 핵심적인 문장 한두 개를 어떤 배경에서 나왔고,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그래서 청소년도 고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 : 『미야지마 히로시의 나의 한국사 공부』다. 당대 역사학자 중에서 멘토로 여긴다. 개인적으로는 미야지마 히로시를 『양반』으로 처음 알았다. 당시에는 인문학 출판사에 다닐 때가 아니었지만,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이분이 한국에 오시자마자 만나 뵙고 10년간 교류한 끝에 책을 냈다. 이 책은 한국어로 쓴 글을 모은 것으로, 진보사학과 식민사학을 모두 비판한다. 두 모델 모두 서구적 근대화를 모델로 한 사관이기 때문이다. 미야지마 히로시, 존 던컨, 마르티나 도이힐러 이 세 사람이 제임스 팔레 이후로는 한국사를 이끄는 사람인데, 세 사람의 대표 저서를 이어서 냈다. 특히 존 던컨이 쓴 『조선왕조의 기원』을 읽어보면 사극 <정도전>이 얼마나 왜곡됐는지를 알 수 있다. 단적으로 신진사대부는 실체가 없었다.
너머북스에서 나오는 역사책은 기본적으로 어떤 역사관에 기초하나.
이 : 고대 노예제에서 봉건제, 자본주의, 이후로 어디로 이행한다는, 그러니까 역사가 어떤 목적을 향해 가고, 여기서 서유럽이 가장 발전했다는 게 근대주의 역사관이다. 근대주의 역사관은 서유럽의 역사를 보편, 진리라고 칭하고 나머지 지구의 다양한 역사를 거기에 끼워 맞추면서 나머지는 야만이라고 한다. 미야지마 히로시, 존 던컨, 마르티나 도이힐러, 이 세 사람의 책에서 공통분모는 근대주의 역사관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반대한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다 외국 학자다.
이런 책을 내는 이유는?
이 : 근대주의 역사관은 필연적으로 전통과 근대를 분리해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르면 지금이 발전했고, 과거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과거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하는 세계관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지녀야 한다. 대표적으로는 조선문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역사에서 필요하다. 나아가서 동아시아 문명도 다시 봐야 한다. 송나라부터 신유학, 주자학이 꽃피웠는데 아편전쟁 이후에 서구에 짓눌렸다. 그래서 마치 없었던 것처럼 인식되는데, 오해다. 동아시아 문명을 새롭게 이해해야 하고, 나아가서 인도 문명, 이슬람 문명도 다시 봐야 한다. 너무 거창하게 이야기한 것 같지만, 이렇게 해야 새로운 역사상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기대보다 반응이 없었던 책은?
이 : 김기협의 『해방일기』. 1980년대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유신체제 말기에 기획되어서 해방공간을 바라봤던 책이다. 반공 분위기라는 엄혹한 상황에서 하나의 구멍으로, 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이제는 학문적이든 사상적으로든 좀 더 열린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현재 한국사회가 어떤지, 기원은 무엇인지를 탐색한 시리즈다.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지고, 남북 모두 독재가 이루어진 뿌리가 무엇일까?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다. 『해방일기』가 좀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올해 내로 10권으로 완간할 예정이다.
2013년부터 2014년, 인문학이 인기를 끌었다. ‘인문학 열풍’이라는 말까지도 나왔는데. 이 분야 책을 내는 출판사가 보기에 어떤가.
이 : 글쎄. 인문학 열풍인지는 모르겠고 지금이 특이한 국면이다. 특정 학자의 강의에 사람이 몰리면 인문학 열풍일까? 이상한 구조다. 언젠가 이현우 저자가 이런 말을 했다. 지금 한국사회는 문맹사회라고. 문자는 아는데, 읽을 줄 모르는 사회라는 의미다. 동의한다. 한 사회가 무너져내리는 단적인 증표가, 읽을 줄 모르는 현상이다. 어떤 스타 인문학자에 수강생이 몰리는 건, 다른 의미로는 읽는 것보다는 듣는 게 쉬우니, 읽을 줄은 모르지만 듣기라도 하자, 이런 현상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1980년대기 사회과학의 시대였고 1990년대 이후는 인문학 시대라는 말도 하는데. 80년대는 목표가 단순했다. 자주, 민주, 통일. 그런데 세상에 세 가지 문제만 있는 사회가 어디 있나. 훨씬 문제가 많다. 나, 자기로 돌아오면 삶의 문제가 많다. 이런 문제를 인문학의 눈으로 깊게 들여다보고, 치유할 건 치유하고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얻어야 한다. 그래서 인문학이 중요하다.
이미 답변을 한 것 같긴 하지만, 우리가 인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꼽는다면.
이 :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려면 인문학을 읽을 수밖에 없다. 지금의 내가 누구인지, 내가 실패한다면 혼자만의 것인지, 약자의 편에 서야 하는지,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충분한지, 내 가족이나 사회에 어떤 유산을 남겨야 할지…… 거창한 질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런 질문에 답하려면 인문학을 읽어야지.
김 : 최근에 후지이 다케시가 세월호 참사를 4ㆍ16으로 부르자는 이야기까지 했다. 우리사회가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꼈다. 지금도 진행형이다. 제대로 돌이켜보고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는 건 독서밖에 없다. 고병권 선생님도 이렇게 이야기했다. 고통 이겨내는 건 책 읽는 방법 외에는 없다, 그리고 같이 읽어야 한다고.
이미 수많은 저명한 인문학자와 책을 내왔는데, 앞으로 책을 내고 싶은 저자가 있다면?
이 : 후지이 다케시, 채현국 선생님. 너머북스와도 잘 어울린다. 편견을 버리고 우리사회에 질문을 던지면서 새롭게 나아가고자 하는 저자들이다.
너머북스가 역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김 : 너머의 책은 온라인 서점에서도 팔리지만 학교 도서관이나 공공 도서관으로도 많이 나간다. 앞으로는 도서관이 늘어난다고 한다. 도서관이 한 지역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도 많이 나오고. 도서관에 책을 잘 비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책으로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만들도록 노력하고 있다. 사례도 있었다. 사람을 모아서 강연회를 열고, 책을 사서 읽히는 활동이 확산된다면 출판도 도서관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여기에만 기댈 수는 없고.
이 : 대표적으로 ‘찾아가는 인문학 교실’이 그랬다. 도서관이나 학교, 이런 공간과 협력해서 활성화하려 한다. 재작년에 노원구에 있는 동네 주민을 모시고, 첫해에는 인문학 강좌를 무료로 열어 드렸다. 작년에는 그분들이 주체가 되어서 2년째 하고 있다. 그런데 걱정인 게, 역량 있는 편집자가 사라지고 있다. 시대에 응답하려면 개성이 있는 출판사, 편집자가 다양하게 존재해야 하는데, 점점 어려워진다. 독자가 사라진다는 현상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편집자가 사라진다는 데에는 별로 이야기가 없다.
올해 너머북스에서 나올 책은?
이 : 7월부터, '21세기 하버드 중국사'라는 이름으로. 총 6권이 나온다. 21세기에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이냐가 화두인데, 하버드에서 특별 기획한 책이다. 학술서로 『다산의 사서학』이 나오고, 오항녕 선생의 『역사학의 오류』, 박천홍 선생이 근대 탐사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활자와 근대에 관해 쓴 책이 나올 예정이다.
김 : '고전이 건네는 말'이 1, 2권 나왔는데 7~9월에 걸쳐 3, 4가 나온다. 초등 고학년, 중학교 1, 2학년을 대상으로 해서 우리나라에 있는 이주민이 직접 자기 나라와 한국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책들이 나온다. 3년 동안 야심차게 준비한 새로운 시리즈다.
* 너머북스ㆍ너머학교에서 낸 책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
미야지마 히로시 저 | 너머북스
중국의 사대부, 일본의 사무라이, 그리고 한국의 양반을 비교한다. 동아시아적 시야에서 한?중?일 역사를 서술하면서 한국사를 새롭게 이해하려 시도한 책. 미야지마 히로시는 서구적 근대와 달리 동아시아의 근대는 중국은 명대에, 한국은 조선시대 중기인 ‘16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때의 전통이 지금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사 연구는 개항기 때부터가 아니라 조선시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주자학’을 재조명했다.
생각한다는 것
고병권 저 | 너머학교
‘너머학교 열린교실’시리즈의 첫 번째 책. 이 시리즈는 10대 청소년들과 ‘말’의 진정한 의미를 나누고,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계를 스스로 구성하는 데 바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획되었다. 탐구한다는 것, 기록한다는 것, 느낀다는 것, 읽는다는 것, 믿는다는 것 등의 말에 대해 십대들과 함께 생각해 보자는 의도다. 『생각한다는 것』은 삶의 본질과 행복, 사유, 자유, 우정 등 철학에 대한 새로운 ‘생각’ 을 지루하고 형식적인 논리나 추상적인 개념어로 이어지는 설명이나 이론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겪었던 일들과 우리 사회와 세계의 여러 가지 사건들, 역사 속 유명한 철학자들의 일화와 이론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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