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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리, 과학 출판의 입지는 좁지만
한 가지 방법으로만이 아니라 여러 길을 두루 살피다
앞으로 인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아마도 융합일 테다. 근대에서 분과학문 체제로 드러난 문제를 인문학이 각 학문의 성과를 종합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인문학은 인문학을 포함해 사회과학, 자연과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궁리가 내는 책은 인문학의 본질에 걸맞게 여러 분야의 책을 만들고 있다.
인간은 사유하는 동물이다. 그래서인지 '사유‘와 비슷한 표현이 많다. 사고하다, 생각하다, 고민하다, 성찰하다 등등이 그렇다. 그리고 ’궁리하다‘는 표현도 있다. 성리학에서 중요한 태도인 ’거경궁리(居敬窮理)‘에서 보듯, ’궁리‘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꽤 깊다. 사유에 단계가 있다면 ’궁리하다‘는 표현은 좀 더 심도 깊은 사유를 지칭한다. 퇴계는 ’궁리‘가 이치를 생각할 때 한 가지 방법으로만 접근하는 게 아니라 여러 길을 두루 살피는 것이라 했다.
그런 면에서 궁리출판사가 걸어온 길은 출판사 이름과 일치한다. 1999년을 시작으로 출판사 초기에는 자연과학을 주로 펴내다가 이후 인문, 예술, 문학 등 범위를 넓혀 다양한 책을 만들고 있다. 현재 300여 종의 책을 출간했고 문광부 우수학술도서, 우수교양도서 등에 100여 종의 책이 선정됐다.
저자 면모도 다양하다. 지그문트 바우만, 자크 랑시에르, 김열규와 같은 인문학자에서 제임스 왓슨, 에르빈 슈뢰딩거, 제인 구달, 최재천 같은 과학자에 이르기까지 화려하다. 독자 층도 넓다. 성인 단행본뿐만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인디고 서원 시리즈도 출간 중이다. 김현숙 궁리 편집주간과 이야기를 나눴다.
궁리출판사는 어떤 곳인가?
궁리라는 이름은 아주 많은 뜻을 가지고 있다. 출판사 설립 초기에는 자연과학 분야를 주로 펴내다가 이후 인문과학, 예술 등으로 범위를 넓혀 더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출간했다. 홈페이지인 궁리닷컴에서는 도서/출판/독서를 주제로 하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려 애쓰고 있다. 학문에서뿐만 아니라, 올바른 지식을 가능한 한 많이 정확하게 습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올바르게 살아가는 데 책을 읽는 것보다 나은 길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출판의 사회적, 문화적 책임이 크다는 것을 궁리는 늘 명심하고자 한다. 앞으로도 자연의 이치와 삶의 이치를 두로 살피는 책을 만들려고 노력하겠다.
궁리에서 냈던 책, 내고자 하는 책은 어떤 책인가.
지금까지 320여 종 정도 펴냈다. 자연과학 분야가 40퍼센트, 인문사회과학이 30퍼센트 정도 된다. 눈에 띄는 베스트셀러는 없지만, 독자들이 오랫동안 잊지 않고 찾는 스테디셀러들이 꽤 있다. 기본적으로 원고를 기획하거나 출간제안을 받은 원고를 살펴볼 때 주로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소수이지만 이 책이 꼭 필요한 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유념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스퍼거 증후군 아이들』이나 『입양아 부모 되기』, 『베델의 집 사람들』 등의 책은 그런 기준을 염두에 두고 출간을 결정한 책이다.
궁리의 대표 도서를 소개해 달라.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제인 구달의 『희망의 이유』, 이은희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김용관의 『수냐의 수학카페』시리즈, 조진호의 『어메이징 그래비티』, 래리 고닉의 ‘과학만화’ 시리즈 등을 꼽을 수 있고, 인문과학 분야에서는 부산 인디고 서원의 기획한 청소년 인문학 시리즈와 슬라보예 지젝 인터뷰집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길담서원이 기획한 청소년 인문학 교실 시리즈, 래리 고닉의 ‘세계사’ 시리즈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없었던 책은?
여러 매체에서 종종 ‘아까운 책’을 골라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책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시간차만 있을 뿐이지, 다들 자신의 운명을 꾸준하게 이어가는 까닭이다.
인문사회 책뿐만 아니라 과학 분야 책도 많이 내고 있는데, 인문학의 위기 못지 않게 자연과학의 위기도 문제이다. 책을 내면서 어떻게 느꼈는가.
몇 년 전부터 과학 분야의 베스트셀러 및 스테디셀러가 청소년층이나 대학생 독자들의 구매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과제로 꼭 읽어야 한다거나 선정도서여서 읽어야 하는 반강제적인 독서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물론 다양한 목록들에 포함된 책들은 오랜 시간 독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2000년대 초중반에 등장한 과학 필자들의 뒤를 이어갈 새로운 얼굴이 거의 없어, 이 소수의 필자들에게 집필을 의뢰하는 쏠림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만큼 아직도 과학출판의 입지가 현저히 좁구나, 라는 걸 느낀다.
궁리만의 문화라는 게 있을까?
딱히 이렇다 할 만한게 없는데,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책에 대한 아이템을 기획하고 출간하는 데 최대한의 재량을 가지고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앞으로 나올 책을 소개한다면.
8월 교황 방한을 기념하며 교황 사진집을 준비중이다. 올 하반기에도 과학 분야의 책들이 다수를 이룰 것 같다.
* 궁리에서 낸 책
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
지그문트 바우만 저/인디고 연구소 기획 | 궁리
인디고 연구소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꾸준히 진행했던 지그문트 바우만 인터뷰에서, 바우만 사유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희망'이었다. 이것은 바우만의 사유에도 드러나지만, 그의 삶과 인품에서 배어나오는 것이기도 했다. 바우만의 말처럼, "숨 쉬는 한, 나는 희망한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계를 희망하는 사람들만이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믿는 까닭이다. 슬라보예 지젝에 이어 공동선 총서 두 번째 인물로 인디고 연구소가 바우만을 인터뷰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그문트 바우만은 소비사회, 불평등, 인간관계 등 우리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들에 대해 탁월하면서도 생산적인 비판을 하는 지식인 중 한 사람이다. 바우만은 현대사회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유의 틀을 여럿 제공하였다. 『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는 바우만 사유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적인 개념과 사유의 지평을 두루 살펴보면서, 동시에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바우만식의 진중하면서도 재기발랄한 해결책 등이 담겨 있다.
세상을 바꾼 과학논쟁
강윤재 저 | 궁리
『세상을 바꾼 과학논쟁』은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둘러싼 13개의 논쟁을 통해 과학의 참모습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과학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그 영향력이 커질수록 우리는 과학기술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보거나 부정적으로 보기 쉽다. 이 두 가지 시각의 간극이 점점 더 커질수록 우리는 과학의 참모습을 보기 힘들어진다. 이데올로기화한 과학을 좀 더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노력 중의 하나는 과학이 사회와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학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고, 그 결과 과학을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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