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좋아서 보는 인문학
척 하면 삼천리, 역사 하면 삼천리
역사에는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인식도 중요
삼천리는 『빅토르 하라』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30여 종을 냈다. 앞서 언급한 책 외에도 『흙 :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노르딕 모델』, 『근대 일본의 사상가들』, 『중국 근현대사 (총 4권)』 , 『피노체트 넘어서기 : 칠레 민주화 대장정』, 『역사 없는 사람들 : 헤겔 역사 철학 비판』, 『조선사람 : 재일조선인 1세가 겪은 20세기』 , 『니그로 : 아프리카와 흑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 서 느껴지듯 역사책이 주를 이룬다.
모든 사람이 탐내는 것을 만드는 회사가 있다. 우리가 흔히 ‘명품’이라 부르는 것들 말이다. BMW 자동차, 라이카 카메라, 칼자이즈 렌즈, 롤렉스 시계, 에르메스 백 등. 대한민국 출판계에도 명품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있다. ‘좋아서 보는 인문학’에서는 인문 사회 서적을 중심으로 출판하는 출판사를 집중 조명하고자 한다. 1편은 ‘삼천리’다. | ||
살면서 한 번쯤은 세계사를 정리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는데, 문제는 그렇게 부지런하지 않다는 곳에서 생겼다. 세계사를 공부하고 싶기는 하나, 여러 권으로 된 세계사는 도저히 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딱 한 권으로 정리한 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크리스 하먼이 쓴 『민중의 세계사』를 읽기도 했지만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크리스 하먼은 뛰어난 활동가이자 저자이긴 하지만 책 자체는 다소 허술했다. 이는 기나긴 인류 역사를 한 권으로 요약하는 데서 온 불가피한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민중의 세계사』를 읽은 뒤, 좀 더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쯤 만난 책이 바로 『세계사 특강』이다. ‘삼천리’라는 출판사 이름은 생소했다. 오히려 원저를 낸 출판사가 익숙했는데, 영국의 루틀리지였다. 루틀리지는 영국의 저명한 인문학 출판사로, 한국에는 앨피 출판사에서 나온 ‘critical thinkers’ 시리즈로 알려져 있다.
루틀리지에서 나온 세계사 책이라니, 흥미가 생길 수밖에. 목차 또한 인상적이었다. 많은 역사책이 석기시대에서부터 자본주의까지, 식으로 연대기적 서술을 취한다. 『세계사 특강』은 이와 달리 주제 위주로 논지를 풀어나간다. 도시, 가족, 경제, 민족, 불평등 등과 같이 각 장은 해당 주제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런 서술은 영웅 위주의 이야기가 아니라 구조를 구성하는 요소를 분석함으로써 보다 넓은 시야로 세계사를 이해하는 데 유리하다.
이후에도 필자는 돈이 생길 때마다 삼천리에서 나온 책을 탐하곤 했는데, 지금까지 산 책으로는 『아름다운 외출』, 『돈의 본성』 등이 있다. 『아름다운 외출』은 ‘페미니즘, 그 상상과 실천의 역사’라는 부제가 나타내듯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꾼 여성 이야기를 담았다. 『돈의 본성』은 저자로도 유명한 홍기빈이 번역한 책으로, 화폐에 관한 이론과 역사를 다룬다.
화제를 전환해서 삼천리 출판사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삼천리는 2008년, 『빅토르 하라』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30여 종을 냈다. 앞서 언급한 책 외에도 『흙 :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노르딕 모델』, 『근대 일본의 사상가들』, 『중국 근현대사 (총 4권)』 , 『피노체트 넘어서기 : 칠레 민주화 대장정』, 『역사 없는 사람들 : 헤겔 역사 철학 비판』, 『조선사람 : 재일조선인 1세가 겪은 20세기』 , 『니그로 : 아프리카와 흑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 에서 느껴지듯 역사책이 주를 이룬다. 미시사, 구술사, 서벌턴 등을 향한 관심도 느껴진다. 이런 책을 만든 사람이 궁금해진다.
삼천리 송병섭 편집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삼천리’에 어떤 뜻을 담았나.
지구, 하면 무슨 설명이 필요하나. 마찬가지로 ‘삼천리’ 하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척 하면 삼천리라는 말도 있고, 애국가에도 등장한다. 많은 사람이 듣기에 편하고, 쉽게 알 수 있는 이름이다. 예전에 삼천리라는 잡지가 있었다. 일제 시대 김동환을 중심으로 발행한 고급 문예지다. 1970년대 일본 재일 조선인 사회에서, 계간지로도 존재했다. 이런 점을 본다면 삼천리는 에너지라든지 자전거, 이사집센터보다는 출판사에 더 어울리는 이름이다. 책을 계속 내고 이후에 확장해서 쓸 때도 좋을 것 같다. 삼천리 백과사전, 어울리지 않나. 그런데 촌스럽다는 이유로 반대를 많이 하더라. (웃음)
반응이 좋았던 책, 예상보다 반응이 없었던 책은 어떤 게 있었나.
『빅토르 하라』. 『흙』,『세계사 특강』이 반응이 괜찮았다. 그에 비해 『사코와 반제티』, 『피노체트 넘어서기』는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 『사코와 반제티』는 1920년대 미국에서 이탈리아 출신이면서 아나키스트인 청년 2명이 절도범으로 잡혀 끝내 전기 의자에서 사형당하는 과정을 치밀하게 다뤘다. 『피노체트 넘어서기』는 좌파로서 집권한 리카르도 라고스 전 칠레 대통령의 자전적 기록이다. 칠레도 한국처럼 좌파가 집권하기 쉽지 않은데, 기독민주당과 중도파를 연합해서 연합 정치를 절묘하게 했다. 이후에 뒤집히긴 했으나, 칠레를 민주화했다. 이런 점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미미했다.
번역서 위주로 책을 내는 이유는?
특별한 의도가 있지는 않다. 번역서는 계획한 대로 책을 내기 수월하다. 그리고 다른 나라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국내 저자가 쓴 책도 기획은 하고 있다.
출판계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실제로 어떤가.
호황이라도 당시에는 호황이라 하지 않는다. 지나가고 나서 호황이라고 평가한다. 전반적으로 어렵다고 말하는 경향이 많다. 출판계가 불황이라고 판단할 만한 잣대가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출판사 편집자가 아니라) 독자로서 보기에 예전 만큼 책을 선택할 폭이 넓지 않다. 그 말은 시장이 작아졌다는 뜻이다. 아마도 독자가 찾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책을 안 내는 듯하다. 이런 상황은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럼에도 왜 이 일을 하느냐? (웃음) 삼천리 책은 수치로 보면 작년보다 올해 50% 정도 더 팔렸다. 선택의 폭이 줄긴 했지만, 인문서를 찾는 사람은 꾸준하다. 전자책은 예상 못하겠다.
전자책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근래 소설이나 에세이는 종이책과 전자책이 함께 나올 때가 많다. 인문서는 볼 만한 전자책이 없는 것 같다. 이유가 뭘까.
잘 모르겠지만, 삼천리 책을 전자책으로 낼 계획은 당분간 없다. 편집이 책을 만드는 단계에서 마무리인데, 현재는 전자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IT 솔류션 업체에 맡겨야 한다. 이것은 책이 아니라 또다른 매체일 뿐, 진정한 의미의 전자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저작권이나 수익 분배가 아직은 합리적이지 않은 듯하다. 잘못하면 음반 꼴이 날 수도 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고 독자를 떠올리며 출판사가 편집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을 때, 전자책을 낼 수 있지 않겠나. 전자책에도 강점이 있다. 특히 인문서는 색인이 중요한데, 이 기능은 종이책보다 전자책에서 더 효율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책을 낼 계획인가.
역사에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인식도 중요하다. 헤로두투스가 이야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투키디데스는 지금이 어떤 시기인가 지금 사회 경제는 어떤가, 앞으로는 어떨 것인가, 를 다뤘다. 투키디네스 식 역사에 관심이 많다. 세계관, 가치관을 형성하려면 현재 세계를 알아야 가능하다. 나도 그렇게 하지는 못했지만. (웃음) 세계에서 인류가 겪은 많은 경험을 책으로 내고 싶다. 한국은 이런 면에서 다른 국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가령 파키스탄을 알고 싶어도 자료가 없다. 영어책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도서관에 거의 없다. 찾든 안 찾든 필요한 사람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 정도 먹고 사는 나라라면, 가능해야 한다. 이런 쪽으로 책을 계속 내면서도 우리 나라 사회, 우리 역사 책도 내려고 한다.
삼천리 송병섭 편집장
삼천리에서 곧 나올 책은 아프리카 현대사다. 아프리카를 궁금해 하면서도 정작 아프리카를 다룬 역사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는지라 호기심이 생긴다. 앞으로 라틴 아메리카 등 다른 지역 책도 꾸준히 나올 계획이라 하니 『세계사 특강』을 인상 깊게 읽은 독자라면 삼천리에 주목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세계사 특강
캔디스 고처,린다 월튼 공저/황보영조 역 | 삼천리
종래의 역사학이 거시사 위주였다는 비판이 제기된 이후 미시사 위주의 세계사를 쓰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세계사 특강』은 이러한 시도의 일환이다. 영국의 저명한 인문학 출판사인 루틀리지에서 제작된 이 책은 '세계사의 기초'라는 멀티미디어 프로젝트를 이끈 캔디스 고처와 린다 월튼이 만들었다. 국내에 아직 소개가 덜 된 굵직한 연구 성과가 다수 포함되었다. 책을 지탱하고 있는 11가지 주제는 세계사 이해의 핵심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도시, 종교와 공동체, 문화와 기억, 젠더 등이 그것이다.
티끌 모아 태산.
19,800원(10% + 5%)
25,200원(10% + 5%)
14,400원(10% + 5%)
17,100원(10% + 5%)
20,700원(10% + 5%)
20,700원(10% + 5%)
10,800원(10% + 5%)
10,800원(10% + 5%)
23,400원(10% + 5%)
20,700원(10% + 5%)
16,200원(10% + 5%)
13,500원(10%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