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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비, 음식인문학으로 삶과 세상을 조명하다
맛집, 먹방 뒤에 존재하는 역사와 구조를 보다
어떻게 씨앗이 뿌려져서 나무가 되고, 누가 수확을 하고 어떤 경로를 거쳐 식탁까지 올라오는지 그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하다. 최근에 염전에서 노예처럼 갇혀 일하는 노동환경이 문제가 됐는데,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가 먹는 토마토만 해도, 토마토 농장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여권 빼앗겨 노동 강요당하는 일이 허다하다.
모든 사람이 탐내는 것을 만드는 회사가 있다. 우리가 흔히 ‘명품’이라 부르는 것들 말이다. 대한민국 출판계에도 명품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있다. ‘좋아서 보는 인문학’에서는 인문 사회 서적을 중심으로 출판하는 출판사를 집중 조명하고자 한다. 6편은 ‘따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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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후, 한국은 급격히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한 세대 만에 해결한 전무후무한 나라라는 말까지 나온다. 1950년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가 지금은 때때로 선진국이라 불릴 정도로 발전했다. 절대적 빈곤을 해결한 한국은 어떻게 먹고 사느냐에서 무엇을 먹고 사느냐에 관심이 옮아간 상태다.
그래서인지 포털 검색창에서 많이 검색되는 검색어 중 하나가 바로 ‘맛집’이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맛집 포스팅과 유명한 맛집 블로거의 권위는 한국 사회의 음식을 향한 관심을 증명한다. 방송에서 먹는 모습을 담은 영상인 ‘먹방’이라는 새로운 단어의 출현도 음식을 향한 높은 관심을 나타낸다. 이쯤 되면 음식인문학이라는 분야가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실제로, 존재한다. 게다가 이 분야를 주로 다루는 출판사도 있다. 2010년부터 책을 내기 시작한 따비 출판사가 그 주인공이다.
따비출판사에서 내는 책은 ‘음식’에 관한 책이 대다수다. 『미각의 제국』,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조선의 탐식가들』, 『서울을 먹다』, 『맥주 세상을 들이키다』, 『한국음식문화 박물지』, 『음식문맹자, 음식시민을 만나다』, 『먹거리 반란』 등이 그렇다. 이 책들은 단순한 맛집 기행이라든지, 레시피를 소개한 것과는 다르다. 따비가 낸 책은 흔히 음식인문학으로 불린다. 음식에서 출발해 역사와 철학까지 아우르는 풍성한 담론을 펼치기 때문이다.
이런 따비의 지향은 출판사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따비는 농기구 이름이다. 쟁기를 쓸 수 없는 곳을 경작할 때 쓰는 원시적 형태의 농기구로, 실제로 강원도에는 소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을 ‘따비밭’이라 불렀다. 음식은 농업에서 시작하기에, 개척하기 어려운 곳에서 쓰는 농기구인 ‘따비’가 음식 인문학을 지향하는 출판사 이름으로 적합했다. 보통은 이름을 정할 때 후보로 한두 개는 두는데, 박성경 따비 대표는 “후보는 없었다. 따비가 생각나자마자 바로 정했다.”라고 말한다.
음식 인문학, 먹는 건가요?
따비 출판사의 역사가 궁금하다. 첫 책이 『미각의 제국』이었다.
책으로 하고 싶은 것은 음식 관련 이야기였다. 첫 책인 『미각의 제국』을 내고 만 4년이 됐다. 『미각의 제국』을 낼 때 고민을 많이 했다. 무엇보다 원고지 매수가 얼마 안 되었다. 출판하는 사람에게 보여주면 책이 안 된다더라. 그럼에도 저자인 황교익 선생님이 분량은 많지 않지만 의미 있는 이야기니 내보자고 했다. 디자인이든 뭐든 맘대로 만들라고 서로 약속을 하되, 사진은 안 넣기로 했다. 사진이 있으면 자칫 맛에 관한 정형화된 관념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어, 불편할 수도 있어서다. 그렇게 상당히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책이 나왔고 반응이 좋았다. 폭발적으로 좋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다. 앞으로도 ‘음식 맛이 이렇다’, 하는 흔히 아는 사실을 나열하기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책을 내고 싶다. 아직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먹거리, 음식에 관한 관심은 언제부터 생겼나?
2000년에 나온 『맛따라 갈까보다』라는 책이 있다. 황교익 선생님이 쓴 책인데, 재미있게 읽었다. 이동갈비라든가 홍어라든가, 각 지역에 유명한 음식이 있다. 이런 음식의 기원을 찾아다니면서 어디가 원조고 이 음식이 왜 나왔는지를 푼 책이다. 단순한 맛집 이야기가 아니라 더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이동갈비 이야기를 하면서 지역의 군인 이야기가 나오고, 지역 도로가 어떻게 뻗어 있는지를 다룬다. 아, 음식이 단순히 내 입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내 삶이 묻어 있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오더라. 시작은 그때였고, 이후로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음식 관련 책이 당시에는 별로 없었다. 따비를 시작할 때도 인문 쪽에서 음식 관련 책은 60여 종밖에 없었다. 여기에 끼어들어 가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인문학이라 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 음식을 이야기하면서 역사와 철학 등을 함께 논하나?
『조선의 탐식가들』이라는 책이 있다. 탐식가라는 말이 낯설 수도 있다. 식탐이지, 왜 탐식인가 하고 묻기도 하는데 식탐은 무조건 많이 먹는 것으로 치료가 필요하다. 탐식은 맛있는 걸 탐하는 것이다. 완전히 적절한 예는 아니겠지만, 로마인이 과거에 음식을 먹기 위해 토해내고 다시 먹지 않았나. 이런 게 탐식이다. 조선에 탐식이 가능했을까? 성리학에서는 말이 안 된다. 왕에게 차려지는 밥상도, 사극이 왜곡해서 그렇지 소박했다. 이런 조선의 상황에서도 식탐가가 있을까, 하는 물음으로 시작해 자연스레 역사를 이야기했다.
따비 박성경 대표
따비에서 나온 책 중 반응이 좋았던 책과 상대적으로 반응이 없어 아쉬운 책을 꼽아 달라.
지금까지 19종을 냈다. 그중 1종만 음식과는 무관한 책이었다. 전반적으로 황교익 선생님이 쓴 책은 반응이 좋다.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도 예상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다. 기억에 남는 책은 『조선의 탐식가들』. 신문 서평도 잘 받았다. 많이 판매되진 않았지만, 『맥주 세상을 들이키다』도 어쨌든 3쇄를 찍었다. 술에 정치적인 의미가 있겠다 싶어 찾은 책인데, 국내 저자가 쓰긴 어려울 것 같았다. 이 주제로 잘 쓸 국내 저자를 알지 못했으니까. 외국에서 찾다 보니 맥주에 관한 책을 발견했다. 전반적으로 사회과학적인 책은 반응이 없었다. 재쇄를 찍은 게 없다.
그럼에도 사회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까닭
융합의 시대, 학문을 세분화하는 게 시대에 뒤떨어지긴 하지만 흔히 인문사회라고 일컬어지는 두 학문은 구분할 수 있다. 인문학은 주로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을 아우르고, 사회과학은 사회학, 심리학, 경제학 등으로 세분된다. 사회과학은 구조를 다루면서 통계와 같은 정량적인 연구 방법을 좀 더 지향한다. 따라서 사회과학에는 복잡한 수식이나 통계 자료가 포함되기 쉬운데, 그래서일까.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책은 늘고 있는데 사회과학의 대중화는 아직인 듯하다
그럼에도 사회과학 저서를 계속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먹는 것에는 사회정치적 의미가 다 있다. 그걸 표현하고, 문제가 있으면 바로 잡아야 한다. 아직은 우리가 내 입에 들어오는 걸 감각적으로 즐기는 데에만 익숙한 듯하다. 정작 내가 즐기는 게 왜 여기 있는지에 관해서까지는 관심이 없다. 앞으로는 관심이 좀 생기지 않을까? 광우병을 예로 들어보자. 길거리에 많은 시민이 나오고. 시위도 했는데 지금 식당에 가면 거의 미국산이다. 많은 사람이 광우병을 두려워하면서 내 입에 안 들어가면 되지, 하는 식으로 생각해서 사회적으로 바뀐 게 없다. 왜 소에 골분이 섞이고 다른 동물의 내장이 담긴 사료를 먹이고, 그렇게 큰 소가 이 땅에 와서 팔려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 않았던 듯하다. 어떻게 씨앗이 뿌려져서 나무가 되고, 누가 수확을 하고 어떤 경로를 거쳐 식탁까지 올라오는지 그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하다. 최근에 염전에서 노예처럼 갇혀 일하는 노동환경이 문제가 됐는데,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가 먹는 토마토만 해도, 토마토 농장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여권 빼앗겨 노동 강요당하는 일이 허다하다. 인권, 노동에 관한 문제가 음식과 연결된다.
사회의 문제를 농업과 관련하여 설명한 책을 내고 있는데, 우리 사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관심사가 음식이었는데, 음식은 결국 농업에서 생긴다. 자연스레 관심이 생기더라. 우리나라는 식량 자급률이 엄청나게 낮다. 쌀이랑 콩 빼면 거의 없다. 문제는 정부 정책이다. 농업을 하지 말라는 정책 아닌가. 논이 있어도 벼를 안 심는다고 하면 정부가 돈을 준다. 특히 논밭을 적게 소유한 농부들에게 불리하다. 지금도 농사짓는 인구는 적고, 평균 연령이 엄청나게 높다. 사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우리가 먹는 것을 대부분 수입하는데, 수입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서 오는 과정이 길어지면 문제가 생길 개연성은 높아진다. 이른바 수확 후처리 과정 말이다. 예를 들어,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하면 뭣하나. 배 타고 오는 과정에서 썩지 말라고 처리를 한다. 거기서 발생하는 탄소 마일리지나 이런 부분도 문제다. 사실 OECD 국가는 농업 보조금을 줄 수 있다. 한국은 허용하는 농업 보조금을 거의 쓰지 않고 있다. 가장 잘 주는 나라가 미국이다. 바이오 에탄올, 이건 사실 농업 보조금이지 친환경 정책이 아니다. 옥수수가 늘 과잉인데, 옥수수에는 직접 보조금을 못 주니 친환경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것이다. 휘발유 1리터로 바이오 에탄올을 1리터 만드는 것 아닌가.
세계적인 기근이 들어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면 한국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지 않나.
물론 그런 문제도 있지만, 우리가 먹는 건 우리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치맥 열풍은 어떻게 보나?
슬프다. 달리 보면, 고용 사정이 안 좋은 한국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치킨 뿐만 아니라 음식점이 참 많다. 어떤 자료에 따르면 120명당 1집, 어떤 자료는 80명당 1집이라고 한다. 80명이든 120명이든, 80명이 매일 가도 답이 안 나오지 않나. 치킨집이 대표적이다. 돈 버는 집이 거의 없을 것이다. 창업할 때는 퇴직금, 대출 내서 1억 넘는 창업 비용으로 냈는데. 금방 망한다. 그리고 치킨은 닭살 맛으로 먹진 않는다. 튀김옷과 양념 맛으로 먹는다. 왜냐하면, 치킨집이 쓰는 닭은 거의 똑같으니까. 닭 공급하는 데가 얼마 없다. 양념은 점점 세지고 매워진다. 사람들이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뜻이 아닐까.
통계나 수식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복잡한 구조를 한 눈에 조망하는 게 쉽지는 않다. 어려운 인문사회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읽어야 한다기보다는 읽었으면 좋겠다. 책이 가장 좋은 것인가, 하는 질문을 가끔 하는데 책이 아니더라도 상관은 없다. 신문에서 볼 수도 있고 다른 매체에서도 접할 수 있다면 문제가 안 된다. 내가 사는 곳이 어디인지, 내가 만나는 사람과 나의 관계는 어떤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게 인문학적 사고인데, 인문학적 사고를 도와주는 데 좋은 게 책이다. 그런 면에서 인문학이 훌륭하다가 아니라, 필요한 대목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요즘 책 말고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잘 없지 않나? (웃음)
앞으로 나올 책은?
총서 개념으로. 시리즈가 나올 것이다. 가벼운 분량으로 내려 하는데, 목표는 100권 채우는 것이다. 시작은 『치킨의 사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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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비에서 낸 책
조선의 탐식가들
김정호 저 | 따비
이 책에서 살펴보는 조선의 탐식가는 그 종류도 다양한데, 먼저 권력과 부의 맛을 밥상에서 느끼려 한 이들로 개고기 탐식가 김안로와 식전방장(사방 열 자 가량의 상에 차린 진수성찬)의 윤원형 등이 있다. 이들의 탐식은 권력을 잃고 나서는 정적으로부터 공격당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또, 진귀하고 맛난 음식을 찾아 먹고 기록한 이른바 '맛집 탐방형'의 대표적 인물로는 우심적, 두부, 순채 등에 대해 수많은 시를 써서 남긴 조선 초기 문신 서거정과 조선 최초의 음식 비평서인 「도문대작」을 남긴 허균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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