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이택광의 영어로 철학하기
Ciao와 Turkey, 어둠의 역사가 만든 영어 단어
적절한 이름을 부여해주는 것이 철학의 임무
여하튼 겉으로 보기에 전혀 닮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 ciao와 slave가 사실은 Slav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개방적일 수밖에 없다. 자유로운 교환이 없다면 언어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교환을 위해 필요한 건 뭘까. 바로 자기 욕심을 억제하는 것이다. 자기 욕심만을 내세우면 이야기를 제대로 나눌 수 없다. 누군가 의사권을 독점하고 혼자 떠든다고 생각해보자. 토론이나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언어는 새롭고 낯선 것을 향해 열려 있어야 풍부하게 발전한다. 영어 또한 마찬가지다. 영어의 특성으로 꼽히는 많은 어휘들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셰익스피어처럼 훌륭한 시인이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다른 언어에서 차용했다. 당시로 본다면 200여 개도 엄청난 숫자이긴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만든 단어는 고작 200여 개에 불과하다.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한국어는 중국어나 일본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점차 영어의 영향을 더욱 많이 받게 되었다. 우리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믿는 표현들 중에는 영어에서 유래한 것도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인데, Blood is thicker than water라는 영어 속담을 직역한 문장이다. 이처럼 영어속담인데도 우리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은 한두 개가 아니다. Time is a great healer라는 속담은 “시간은 약이다”라는 말로 쓰이고 있다. “아는 것이 힘이다”는 영어 속담으로 Knowledge is power로, 역시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다. 한국어에도 비슷한 뉘앙스를 가진 속담들이 없진 않았겠지만, 대체로 영어식 속담들은 해방 이후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우리 일상으로 유입되면서 한자문화의 영향을 받은 기존의 표현들을 차츰 바꿔나갔다. 요즘 젊은 세대는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애인이라는 의미로 쓰곤 한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말은 쓰지 않았다. ‘남자친구’와 ‘여자친구’가 중국어 표현인 ‘애인’을 밀어낸 것만 보더라도 한국어가 얼마나 빨리 영어의 영향을 받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한국어만 영어의 영향을 받아 변한 게 아니다. 영어도 다른 언어의 유입으로 인해 계속 변해왔다. 오히려 영어는 외래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어휘력을 갖출 수 있었다. 그중 몇 가지를 말해볼까 한다. 손에 잡히는 영어회화 책을 펼쳐보면 항상 등장하는 표현이 하나 있다. 영어로 인사를 나눌 때 사용하는 “Ciao”라는 표현이다. 생긴 모양이 그렇듯 ciao는 당연히 영어가 아니다. 이탈리아를 가봤다면 대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Ciao는 이탈리아어다. 황당하지 않은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이탈리아어로 인사를 하다니. 그리고 영어교과서에 이탈리아어 인사말이 나오다니. 이상한 노릇이다. 서로 이탈리아어로 인사를 나눈다는 것만 이상한 게 아니다. Ciao의 뜻을 알면 기절초풍할지도 모른다. 뜻밖에도 ciao의 어원상 의미는 ‘노예’다. Ciao는 “당신에게 복종한다(Sono vostro schiavo)”라는 로마식 인사에서 유래되었다. Schiavo라는 말이 ciao로 바뀐 것이다. 로마는 신분사회였다. 상대방에게 복종한다는 표현은 최고의 인사였던 셈이다.
상대방에게 복종을 맹세하는 표현이 일상의 안부를 묻는 인사가 되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Ciao라는 인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영어로 Slav라고 쓰는 슬라브인들이 그렇다. 영어로 노예를 뜻하는 slave가 바로 Slav라는 말에서 왔다. Slav는 동유럽과 러시아에 주로 거주하고 있는 종족이다. 원래 slav는 말 또는 강론이라는 의미였다. 중세 무렵 이 지역에 강론을 훈련하던 공동체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지칭해서 slavo라고 불렀고, 이 말이 와전되어서 slav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Slav 중에서도 Bulgar라는 종족이 있었다. 한국에서 요구르트 이름으로 유명한 불가리아라는 국가를 이루고 있는 종족이다. 슬라브인들은 비잔틴 제국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는데, 전투에서 붙잡힌 포로들이 종신노동에 처해졌다. 그 유명한 오토대제가 그들을 붙잡아 노예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Slav라는 민족의 이름이 노예를 의미하는 slave가 되어버렸다. 영어로 노예를 의미하는 slave 자체가 슬픈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슬라브인들이 듣기에 썩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누군가 노예를 ‘코리안’이라고 부른다고 생각해보라. 자존심 상할 것이다. 그렇지만 슬라브인들은 꿋꿋하게 자신들의 독립 국가를 세워 과거의 불명예를 씻은 듯 보인다.
여하튼 겉으로 보기에 전혀 닮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 ciao와 slave가 사실은 Slav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슬라브인들이 비잔틴 제국에 맞서 싸웠다는 것은 유럽이 다양한 국가로 나눠지기 전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다. 따라서 Slav를 노예와 동격으로 취급했던 것은 유럽의 역사에서 아주 오래된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노예라는 말을 독일어로는 sklav, 네덜란드어로는 slaaf라고 쓴다. 스페인어로는 esclavo다.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Slav에서 유래했다. 한마디로 Slav가 노예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전에는 노예라는 개념조차 없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옥스퍼드영어사전에서 slave의 뜻을 찾아보면 ‘a person who is the legal property of another and is forced to obey them’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Slav가 노예로 팔려가면서 이런 의미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슬라브인들에게는 슬픈 역사겠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들 때문에 노예에 대한 규정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신분사회였던 그리스나 로마에 노예가 없지는 않았다. 스파르타쿠스라는 노예가 일으킨 반란도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노예들은 자신들을 사회적으로 규정해줄 용어조차 갖지 못했던 것이다.
비극적인 사실이긴 하지만 Slav는 노예라는 말이 만들어지도록 했고 또한 ciao라는 말이 영어 인사로 쓰이게 만들었다. 물론 슬라브인들이 ciao라는 말을 영어에 직접 전해준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또 다른 사건이 관련되어 있다. 영국인과 미국인으로 구성된 연합군이 이탈리아에 주둔했다가 자기들 나라로 돌아가서 ciao를 인사말로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마 이국 전쟁에 참전했던 경험을 자랑하고 싶었던 심사도 한몫 했을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통신이긴 하지만 이들이 이탈리아에 와서 뭔가를 가져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우리가 이탈리아 스파게티의 일종으로 알고 즐겨 먹는 까르보나라를 만들어낸 것이 이들이라는 설이 있다. 베이컨과 달걀은 영국인들의 아침식사로 흔한 것이니 크게 틀린 소문은 아닌 것 같다.
듣기에 따라 다소 황당한 기원을 가진 단어로 ciao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칠면조를 가리키는 ‘turkey’ 역시 실제 터키라는 나라와 아무 관련이 없지만 똑같은 단어로 쓰인다. 원래 칠면조는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조류였다. 아스텍인들이 길들이고 길렀던 가금류이기도 하다. 유럽인들이 처음부터 칠면조를 먹었던 것은 아니다.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하던 Numidia meleagris라는 새를 먹기 시작한 게 먼저였다. 이 새를 수입해서 팔던 상인들이 바로 터키인들이었다. 그 이후에 스페인인들이 식민지로 삼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비슷한 새를 수입했다. 이 새는 Meleagris gallopavo라고 불렸다. 당연히 기존 상권을 가진 터키인들이 두 종류의 새를 같이 팔았다.
걸핏하면 외래어 철자법을 제멋대로 바꾸는 영어가 이 복잡한 새의 이름을 그대로 쓸 리가 없었다. 두 새는 엄연히 다른 종류였지만, 요리로 만들어놓으면 맛도 모양도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래서주로 터키인들이 파는 새이니 간편하게 turkey라고 부르기로 했다. 참으로 황당무계한 결론이지만 덕분에 우리는 크리스마스 만찬상에 오르는 Meleagris gallopavo라는 새의 어려운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새는 터키어로 turkey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터키인들은 이 새를 인도에서 온 것이라고 착각해서 hindi라고 부른다. 콜럼버스가 인도를 찾아 항해를 떠나서 발견한 곳이 아메리카이고, 거기에서 온 새가 turkey이니 크게 틀린 명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slave 못지않게 부조리한 단어가 바로 turkey다. 두 단어 모두 노예와 식민지라는 어두운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공통점이 있다. 거대한 제국에 의해 희생 당해야했던 이름 없는 것들의 사연을 끌어안고 있는 단어들이다. 제대로 된 이름을 얻지 못했던 것들에게 적절한 이름을 부여해주는 것이 철학의 임무이기도 할 것이다. 생각의 내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앎을 사랑하는 행위의 명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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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이택광, 영어로철학하기, ciao, turkey
미술, 영화, 대중문화 관련 글을 쓰고 있는 작가.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문화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경북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에 자신을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구환경에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으며 우주여행을 떠나는 그림을 그려서 꽤 큰상을 받기도 했다고 추억한다. 그는 자신의 모토를 "그림의 잉여를 드러내는 글쓰기" 라고 밝히며 글쓰기는 그림 그리기의 대리물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림에 대한 글을 계속 쓸 생각이라고 포부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1999년, 영화주간지 <씨네 21>에 글을 발표하며서 본격적인 문화비평을 시작한 이후, 다양한 저서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