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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tox, 피부에 양보하는 소시지

성형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보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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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의 정점에 있는 건 바로 자신의 육체를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는 성형일 것이다. 영어로 성형은 plastic surgery라고 한다. 이 말은 19세기에 만들어졌다.

이택광

 

영어의 정신은 자유(liberty)에 있다고 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Liberty는 freedom을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했다. 이 사실을 강조하는 이들이 자유주의자들이기도 하다. 새 깃털만큼 다양한 자유주의자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자유라는 정치의 문제를 경제를 통해 풀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핵심이다. 이런 까닭에 자유주의는 경제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경제이론이 곧 자유주의라고 봐도 무방하다. 자유주의자들이 이렇게 경제를 끔찍이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무엇일까. ‘자유로운 개인의 경제활동’이야말로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주의적 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방책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초기 자유주의자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사유재산에 대한 옹호였다. 사유재산은 군주나 귀족에 대항해서 자신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물적 토대로 받아들여졌다. 후일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를 이야기하면서 숙련 노동자들의 역할을 강조했던 것도 비슷한 발상이었다. 물적 토대가 있어야 자기 계급의 이해관계를 실현할 수 있다. 물론 솔깃한 말이지만,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 역사를 돌아보면 딱히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의 실패는 정치 문제가 경제적 차원에서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켜준다.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유주의는 ‘자기의 완성’을 위한 물적 토대를 강조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자유주의와는 생각이 달랐다. 자본주의는 한마디로 생산을 사회화하는 것이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쉽게 말하면 무엇이든 함께 생산하게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의 생산방식이다.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노동과정을 분리해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기계의 발명은 필수적이다. 인간과 달리 기계는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그 기계를 작동시키는 인간은 교대로 근무하면 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노동’의 이미지가 이렇게 만들어졌다.


자본주의는 결과적으로 자유주의를 배반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세계는 자유주의의 상상과 달리 아름답지 않았다. 애덤 스미스는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잘 만든 기계’가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그 상상의 실현 결과는 그의 꿈과 달랐다. 사회는 기계처럼 되었고, 인간도 아름다워지긴 했지만 자유주의자들이 그려 보였던 세계는 아니었다. 자유주의자들은 일찍이 욕망의 문제를 깨닫고 잘만 관리하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관리’ 자체가 디스토피아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요즘 식상할 정도로 무수히 비판 받는 ‘자기계발’도 이런 생각의 가닥 중 하나다. 영어로 self-management라고 번역할 수 있는 ‘자기계발’은 자유주의의 핵심 사상인 자조(self-help)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계발’의 정점에 있는 건 바로 자신의 육체를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는 성형일 것이다. 영어로 성형은 plastic surgery라고 한다. 이 말은 19세기에 만들어졌다. 원래는 손상된 신체조직을 수술해서 치료함을 의미했다. 이런 의학적인 의미 이전에 plastic이라는 말에는 ‘주조하다’는 뜻이 있었다. 거푸집에 금속이나 석고를 넣어서 형상을 빚어내는 능력을 plastic이라고 했던 것이다. 1960년대에 ‘인공적이어서 얄팍하다’는 뉘앙스가 추가됐다. 성형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느낌은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plastic surgery라는 말에 담긴 의미는 훨씬 공격적으로 느껴진다. ‘자기 표현’이나 ‘자아 성취’까지도 암시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역설적으로 몸과 마음이 하나로 통합되어 나타나는 것이 성형일지도 모르겠다. 자유주의자들이 꿈꿨던 ‘멋진 신세계’와 달라도 너무 다른 현실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이상이 물질적으로 실현된 것이 바로 성형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성형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보톡스다. 얼굴의 미용을 위해 피하에 주사한다는 그 약물 말이다. 영어로 보톡스는 ‘Botox’라고 쓴다. 이 명칭만 놓고 보면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몰랐던 진실이 이 단어에 숨어 있다. Botox는 라틴어 botulinum toxin의 준말이다. Toxin은 ‘독’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botulinum은 뜻밖에도 소시지를 가리킨다. 라틴어로 소시지를 botulus라고 쓴다. Botox와 소시지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여기에 숨겨진 사연이 있다. 19세기 독일에 유스티누스 케르너라는 의사가 있었다. 시인이기도 했던 이 의사는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강력한 독성물질을 발견했는데 그 물질은 다름 아닌 상한 소시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이 독성물질은 얼마나 강력한지 서서히 신체 부위를 마비시켜서 마침내 환자의 심장을 마비시켜버렸다. 언어적 감각이 남달랐던 시인답게 케르너는 이 질환을 botulism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다소 생뚱맞지만 라틴어를 동원해서 ‘소시지 질병’을 멋있게 표현한 것이다.


케르너만 새로운 ‘소시지 질병’을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말 벨기에에서 집단 식중독 사고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상한 햄을 먹은 조문객들 다수가 사망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남의 장례식을 졸지에 본인의 장례식으로 만들어버린 주범은 바로 케르너가 발견한 ‘소시지 질병’을 유발하는 그 독성물질이었다. 벨기에의 세균학자들은 이 독성물질을 Clostridium botulinum라고 불렀는데, ‘소시지 박테리아’라는 뜻이다. 재미있게도 케르너가 소시지에서 발견하기도 했던 그 박테리아는 형태도 소시지 모양이어서 이런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별 생각 없이 넘어갈 수도 있는 발견이었지만, 세상에 사는 이들은 별의별 생각을 다 가지고 있는 법이다.


새로운 박테리아를 발견한 19세기 의사와 학자들을 뛰어넘는 발견을 21세기 의사들이 했다. 일부 성형외과 의사들은 이 독성 박테리아에서 형성된 물질을 극소량 피하에 주사하면 근육이 마비되어 주름 제거효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뻐했다. 이것이 바로 Botox의 탄생 비화다. 식중독을 일으키던 박테리아가 성형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만나서 부와 미를 동시에 성취하게 해주는 ‘기적의 물질’로 바뀐 것이다. 마비라는 부정적인 작용을 긍정적인 효과로 바꿔준 놀라운 발견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이것이 자본주의의 상품화 논리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는 그냥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항상 규범을 함께 바꾼다. 정확한 사례가 바로 mineral water일 것이다.


과거에는 물을 사서 마신다는 개념이 없었다. 지나가던 나그네에게 우물물 한 바가지를 선사하는 것은 인심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자연’이나 ‘건강’이라는 새로운 관념으로 물을 포장해서 투명한 병에 담아 팔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준다. ‘좋은 물’을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인식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과학적 근거가 동원될 뿐만 아니라, 취수에서 판매까지 안전히 ‘관리’하게 만드는 법적 체계도 갖춰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소비자가 물은 사서 마시는 게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해야 한다. Botox 역시 마찬가지다. 19세기에 흔했던 나쁜 식품 위생 상태 덕분에 만들어진 독성물질이 오늘날 각광 받는 의약품이 되기까지 필요했던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규범의 변화였다. 주름 없는 매끈한 얼굴을 아름다움의 지표로 삼는 사회적 인식이 없었다면 굳이 Botox 같은 ‘더러운 박테리아 물질’을 피하에 주입할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을 것이다.


케르너가 발견한 ‘소시지 질병’은 신선한 육류를 섭취하지 못했던 가난한 이들에게서 자주 발병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육류를 저장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가난한 이들이 부자들처럼 때맞춰 육류를 제대로 구입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가난한 이들을 괴롭히던 질병의 원인이 이제 부자들의 미용을 위한 물질로 둔갑을 했으니 정말 아이러니하다. ‘소시지 독’이라고 불렸던 그 물질의 이름도 당연히 고상하게 바뀌었어야 했다. Botox라는 그럴 듯한 이름은 이렇게 탄생했다. 더 좋은 이름도 많았을 텐데 왜 굳이 Botox라고 했는지 의문이긴 하다. ‘소시지 독’을 줄여서 ‘소독’이라고 쓴 격이 아닌가. 여하튼 Botox는 먹지 않고 피부에 양보하는 소시지이기도 하다. Botox는 주름을 없애주긴 하지만 얼굴 근육을 마비시켜서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든다. 얼굴의 아름다움은 얻을지 몰라도 자아의 자유를 잃어버리는 또 다른 아이러니를 Botox라는 말에서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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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택광

미술, 영화, 대중문화 관련 글을 쓰고 있는 작가.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문화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경북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에 자신을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구환경에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으며 우주여행을 떠나는 그림을 그려서 꽤 큰상을 받기도 했다고 추억한다. 그는 자신의 모토를 "그림의 잉여를 드러내는 글쓰기" 라고 밝히며 글쓰기는 그림 그리기의 대리물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림에 대한 글을 계속 쓸 생각이라고 포부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1999년, 영화주간지 <씨네 21>에 글을 발표하며서 본격적인 문화비평을 시작한 이후, 다양한 저서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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