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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웃의 사이코패스들 『검은 집』
인간의 감정을 가지지 못한 존재, 사이코패스
내가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을 처음 읽었던 건 대학에 다닐 때였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이었는데 그저 도서관 서가의 한 쪽 구석에 잠들어 있을 뿐이었는데 장르 소설을 좋아하던 나조차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되었다. <검은 집>은 보험조사관인 ‘신지’가 주인공인 소설로 이제는 일반화 된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작품이다.
정말로 무서운 세상
영화 <검은 집> 스틸컷
아들과 함께 무심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으레 그렇듯 습관적으로 채널을 돌리다가 스티븐 시걸이 나오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스티븐 시걸이 누구인가? 김보성의 ‘의리’가 전 국민의 유행어가 되기 한참 전에 사나이의 의리가 바로 이런 것임을 무표정한 얼굴로 보여 준 형님 아닌가! 희로애락이 일반인의 동체시력으로는 확인할 길 없는 찰나의 순간에 스치고 지나가는 그의 얼굴은 흡사 깎아놓은 무 같았다. 질끈 동여 맨 말총머리를 휘날리며 짧고 굵은 액션을 선보인 뒤에는 그의 발아래 적들이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언더시즈>라는 제법 괜찮은 작품도 있었지만 시걸 형님이 출연한 대게의 영화는 ‘의리’ 없이는 보기 힘들었다. 그래도 그의 영화를 보고나면 적어도 한 가지 생각만은 확실하게 들었다.
착하게 살아야지…….
자신의 무표정 희로애락 연기를 통해 인과응보의 가치를 몸소 증명해 보이는 스티븐 시걸의 영화이니 의리남인 나로서는 채널을 고정할 수밖에. 영화 속에서 스티븐 시걸은 눈썹 하나 까딱 않고 적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고 있었다. 악당들의 패턴이야 뻔한 법. 마지막까지 남은 한 놈이 칼을 빼들고는 시걸 형님에게 달려들었다.
“저거 칼이야?”
문득 아들이 물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녀석을 바라봤다.
“저 아저씨 칼로 뭐 할 건데?”
파워레인저를 즐겨보긴 하지만, 날이 시퍼런 칼을 사람을 향해 휘두른다는 상상을 하기에는 여섯 살 아들은 아직 순진했다.
“사과 깎아 먹으려고.”
나는 얼른 채널을 돌리며 말했다.
“갑자기 웬 사과?”
“저 나쁜 아저씨가 사과한다는 의미로 사과를 깎아먹자고 하는 거야. 하하하.”
아들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다가 곧 대나무 헬리콥터를 달고 하늘을 나는 도라에몽과 친구들의 무해한 세계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직 어린 아들에게 폭력적인 장면을 보여주지 말자고 아내와 늘 이야기를 한다. 이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게 현실이지만, 아들이 그 참혹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늦게 알았으면 하는 게 부모의 솔직한 마음이다.
현실의 악당들에 비하면 스티븐 시걸의 영화 속 악당들은 귀여운 수준이다. 배 나오고 굼뜬 할아버지뻘 되는 남자에게 척척 당해 주다니. 반면 우리 주위를 맴도는 악당들은 훨씬 더 영악하고 교활하며 잔인하다. 잔학무도한 연쇄살인범들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매일 뉴스를 장식하는 범죄자들을 보면 과연 인간의 마음을 가졌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승객들을 내버려 둔 채 자신의 목숨만 건사한 선장은 어떤가? 천문학적인 액수를 횡령하고도 떳떳한 회장님들은 또 어떤가? 국민이야 죽건 말건 막말을 쏟아내는 지식인들 혹은 높은 분들은 또 어떤가? 정말로,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아들에게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은 영화 속 칼부림이 아니라 어쩌면 뉴스일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생각을 지울 길 없다.
사이코패스의 존재를 각인시킨 작품
영화 <검은 집> 스틸컷
내가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을 처음 읽었던 건 대학에 다닐 때였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이었는데 그 당시 『검은 집』은 화제작이 아니었다. 그저 도서관 서가의 한 쪽 구석에 잠들어 있을 뿐이었는데 장르 소설을 좋아하던 나조차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되었다. 『검은 집』은 보험조사관인 ‘신지’가 주인공인 소설로 이제는 일반화 된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작품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두 명의 악인 ‘고모다’와 ‘사치코’는 보험금을 타기 위해서 자해는 물론이고 아들마저 죽이는 반사회적인격장애자, 즉 사이코패스로 나온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이 있을까 봐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이 사이코패스 부모가 저지르는 끔찍한 사건은 지금까지 호러 소설에 등장했던 어떤 괴물이나 귀신보다도 더 큰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괴물이나 귀신은 어차피 사람이 아니다. 어차피 우리가 잘 모르는 존재이고 그 때문에 그것들이 저지르는 무서운 일은 언뜻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혈관 속에 붉은 피가 흐르는 같은 인간들이, 그것도 멀쩡한 얼굴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태연자약하게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은 대학생이었던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마치 세상의 더러운 이면을 들여다 본 것 같았다. 『검은 집』은 곧 입소문을 타서 우리나라에서도 꽤 많이 팔리게 되었다.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는 일종의 유행어이자 21세기 초입을 설명하는 하나의 사회 용어로 자리 잡았다. 인간의 감정을 가지지 못한 존재, 사이코패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를 곤경에 빠트리거나 심지어 살인도 불사하는 인간의 탈을 쓴 괴물들.
우리나라에서 사이코패스가 화제가 되던 당시의 이미지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연쇄살인을 저질렀던 누구도 사이코패스고 끔찍한 성폭력 살인마 누구도 사이코패스라는 식으로. 괴담과도 같은 이야기가 떠돌았고 이 사이코패스들은 호러와 스릴러 문학, 그리고 영화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었다. 사이코패스라는 존재가 일종의 유행에 휩쓸리는 동안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우리 주위에도 사이코패스가 많다는 사실을. 멀쩡한 얼굴을 한 채 이웃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은 연쇄살인마의 얼굴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건실한 사회인으로서의 얼굴을 하고서 우리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었다.
요즘 새삼 주목받는 소시오패스 또한 반사회적인격장애의 또 다른 유형이다. 사이코패스와는 약간의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둘 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조정하려 든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사이코패스들이 극단적인 폭력성을 드러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검은 집』의 두 악마 고마다와 사치코는 소설이라는 장치 안에서 부유하는 괴물이다. 물론 우리는 뉴스를 통해 이들 사이코패스가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죽이고 자신의 피붙이들을 죽여 나가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하지만 더욱 무서운 사실은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이코패스들이 일상 속에서 우리를 공격한다는 데 있다.
며칠 전 아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우리 빌라 쓰레기통에 음식물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사람과 마주쳤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 태연한 얼굴로 자기네 쓰레기통이 가득 차서 이곳에 버린다고 말을 했다. 나는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그 얼굴을 보며, 한없이 검은 눈빛을 보며 현기증을 느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새치기를 한다, 남의 우편물을 훔친다, 한밤중에 동네를 누비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다른 이의 구역에 주차를 한 뒤 연락처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진다, 실수를 부하 직원에게 돌린다, 수많은 어린 생명을 차가운 바다에 빠트리고도 변명으로 일관한다, 당선이 되기 위해서라면 실현 가능성 없는 공약이라도 일단 발표해 놓고 본다. 일상의 사이코패스들. 우리 이웃에서 멀쩡히 살아가는 그들. 빛 한 점 없는 마음의 ‘검은 집’에서 뒤룩뒤룩 눈알을 굴리고 있는 존재들……. 그런 사이코패스들에 비하면 무표정한 스티븐 시걸 형님은 정이 넘쳐흐르는 인물처럼 보인다. 적어도 때린 곳을 또 때리지는 않으니까.
아들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는 더 많은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들이 활보할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아찔하다. 칼을 들고 우직하게 달려드는 대신에 자신의 지식과 지능과 권력을 이용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그들, 인간의 감정이 없는 그들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찌 살아남아야 할까? 바로 어제, 유치원에서 보내 온 설문지 하나를 작성했다. 몇 가지 질문 중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아이가 손해를 보더라도 양보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자기 이익을 위해 약삭빠르게 행동해서 손해를 보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 질문 앞에서 한참 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여전히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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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
<기시 유스케> 저/<이선희> 역12,600원(10% + 5%)
제4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 수상작이다. '인간의 마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는 소설. 시종 분위기를 압도하는 섬뜩한 캐릭터 설정, 절묘한 구성력과 복선의 묘미는 숨가쁘게 페이지를 넘겨가는 가운데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끼게 한다. 강력한 공포, 일본 호러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