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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방황하는 칼날』
내가 그의 분노에 공감하는 이유
나는 부모가 된 지난 6년 동안 그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리고 그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딱 그만큼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일이다.
내 새끼
올해 여섯 살인 아들은 아빠를 닮아서 소심한데다가 영 내성적이다. 다행히 얼굴은 엄마를 닮았다. 나는 본디 걱정이 많고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는 유형의 사람인데, 요즘 내 최대 관심사는 아들의 유치원 적응 여부다. 새로운 선생님과 새로운 친구들 틈에서 이 소심한 녀석이 잘 적응해 나갈지,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걱정에 빠진다. 마음 같아서는 투명 망토를 입고 유치원에 몰래 찾아가보고 싶지만 그런 게 없으므로 늘 짐작과 상상에만 의존할 뿐이다. 혹시 맞고 다니지는 않는지, 따돌림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는지 걱정하다 보면 어느새 아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된다.
“오늘 어땠어? 재미있었어? 점심은 잘 먹고? 친구들이랑 잘 놀았어?” 버스에서 내리는 아들을 안아 올리자마자 나는 폭풍 질문을 쏟아내지만 녀석은 웬 호들갑이냐는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를 할 뿐이다. “괜찮았어.” 어쩌면 아들은 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걱정이 된다. 나는 아들이 태어난 그 순간부터 녀석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했고, 그건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 지금의 내 부모님이 여전히 그러시듯.
‘내 새끼’에 대한 애정과 집착은 거의 본능적이다. 나는 아직도 분만실에서 아들을 처음 안았을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너무 작고 가벼워서 바스라질 것만 같은 존재를 안고 맑은 눈을 들여다보던 바로 그 순간, 나는 이 녀석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벼락처럼 찾아와 내 심장을 때렸던 그 다짐은 아직도 유효하다.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바로 어제,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들과 함께 집 근처를 돌며 꽃구경을 했다. 민들레, 벚꽃, 목련, 진달래. 아들은 유치원에서 배워 온 꽃 이름들을 잘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꽃이 좋다고 말했다. “꽃이 왜 좋아?” 나는 무심코 그렇게 물었다. “그냥 좋아. 좋아하는 건 이유가 없다고 아빠가 그랬잖아.” 맞다. 내가 그랬다. 왜 자기를 사랑하느냐는 아들의 물음에 나는 바로 그 대답을 들려주었다. 이유 없는 사랑. 그것만이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향하는 이 감정을 설명할 수 있다.
방황하는 칼날
나는 부모가 된 지난 6년 동안 그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리고 그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딱 그만큼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일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을 처음 읽은 건 신혼 때였다. 『용의자 X의 헌신』이나 『백야행』, 그리고 『동급생』, 『붉은 손가락』 등 그의 전작을 워낙 재미있게 읽은 터라 이 작품도 쉽게 접근했다. 소설은 지극히 ‘히가시노 게이고’스럽다. 짧은 문장에다가 사건 전개도 빨라서 가독성이 좋다. 내가 책을 읽는 건지 책이 스스로 책장을 넘기는 건지 모를 정도다. 구성은 잘 짜여 있고 결말의 반전도 신선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부분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이런 장점들에 더해 『방황하는 칼날』은 ‘공분(公憤)’이라는 감정적 요소까지 곁들여졌다.
딸 ‘에마’를 잃고 복수의 칼을 가는 ‘나가미네’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자연스레 함께 분노하고 함께 절망하게 된다. 분노의 칼날은 에마를 잔인하게 살해한 세 명의 청소년에게서 소년법이라는 미명하에 죄인을 보호하는 사회 시스템으로 자연스레 옮겨간다. 그 사이 이 우직한 남자 나가미네는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지막 한 명을 죽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독자들은 그의 사적 복수가 성공하기를 빈다. 폭력을 통해 무엇이 정의인가를 물을 수밖에 없었던 나가미네의 마음에 절절히 공감하면서. 나 역시 책을 읽는 내내 나가미네를 응원했으며 비뚤어진 법 제도에 분노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는 거짓말처럼 분노가 사라졌다. 주인공의 이름도 잊었고 몇 년 후에는 제목을 봐도 책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최근에 다시 『방황하는 칼날』을 읽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된다는 소식을 들은 후 갑작스레 관심이 생겨 그야말로 별 생각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이상하게도 읽기가 힘들었다. 책장을 넘기는 게 고역이었다. 옛날에는 그렇게도 잘 읽히던 소설이 이제는 아예 목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소설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쪽은 나. 한 아이의 아빠가 된 나는 결코 편안한 마음으로 이 소설을 읽어 내려 갈 수 없었다.
그 옛날의 나는 나가미네의 마음을 짐작했을 뿐이었다. 그의 분노를 짐작하고 그의 슬픔을 예상했을 뿐이었다. 사랑하는 딸이 고통스럽게 죽어갔으니 얼마나 슬플까? 법의 보호를 받으며 잘 살아가는 범인들을 보며 얼마나 화가 났을까? 피해자에서 피의자가 된 나가미네의 심정은 어떨까? 수많은 질문들 속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에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약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 당시에는 생각도 하지 못한 문제였다. 하지만 여섯 살 아들이 유치원에서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소심한 아빠가 된 지금, 나는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던지며 괴로워한다.
『방황하는 칼날』을 다시 읽는 동안 나가미네의 고통과 분노가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짐작이 아니라 이입이었다. 진심으로 화가 났고 진정으로 슬펐다. 그래서 읽기 힘들었다. 차라리 외면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내 아이를 해친다. 그 피해자는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런 사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나가미네는 ‘내 새끼’를 위해 복수를 시작했다. 그 복수가 곧 다른 이의 ‘새끼’를 죽이는 일임을 알면서도 그는 끝까지 달려 나간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는 아직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다. 다만 나가미네의 분노에 진정으로 공감할 뿐이다. 그리고 자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 볼 뿐이다. 이 세상 무엇과 바꿔도 아깝지 않은 ‘내 새끼’가 내내 안전하고 무사하기를 바라면서.
조만간 영화도 볼 예정이다. 소설과는 조금 다른 결말이라고 하니 더욱 관심이 가지만 아마도 감정적으로는 쉽지 않은 관람이 될 것 같다. 필시 아내와 함께 볼 텐데 제발 눈물만 흐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기적을 빌며
이 칼럼을 쓰던 중에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제주도로 향하던 배가 침몰했다. 그 배에는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이 타고 있었다. 청천벽력 같은 뉴스에 마음이 먹먹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계속 텔레비전 속보를 확인하고 인터넷에 올라오는 기사를 읽었다. 누군가는 구출되었지만 누군가는 아직 어두운 물 밑에 있다. 그 어린 것들이 차갑고 탁한 물속에 빠져있다 생각하니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학부모들의 마음이 어떨지 감히 짐작할 수 있어 하루 종일 슬프고 우울했다. 차마 칼럼을 마무리할 수 없었다. 제발 기적이 일어나기를 빈다. 거짓말처럼 실종자 모두가 구조되어서 부모의 슬픔과 분노가 저 차가운 바다에서 방황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누군가의 자식이 죽는 일은 오직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기를, 아비가 된 나는 그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다.
마음이 서걱거린다. 나가미네와 함께 그 설원에 서 있는 기분이다. 뒤집힌 배를 향해 헤엄쳐 가고 싶은 부모들의 심정이 내일은 기쁨으로 바뀔 수 있기를 소망한다. 제발 그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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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