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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하고 괴괴한 이야기의 향연 『엠브리오 기담』
괴담의 사회학,괴담이 생명력을 얻는 이유
『엠브리오 기담』 속 괴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하지 말 것’이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금지된 일을 ‘하면서’ 무서운 일을 당하거나 화를 입는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게 되면 고통을 겪는다는 교훈은 사실 모든 괴담의 공통점이나 다름없다.
무서운 이야기 하나 해 줄까?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홍콩 할매 귀신이 대세였다. 홍콩 행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불귀의 객이 된 이 할머니는 죽는 순간 고양이와 합쳐지면서 진정한 ‘캣우먼’이 되었다. 얼굴의 절반은 고양이, 100미터를 10초에 주파, 대답할 때마다 ‘홍콩’을 붙이지 않으면 아이를 잡아먹어버리는 괴팍함까지, 홍콩 할매 귀신은 시대의 공포 아이콘이 되기에 충분했다. 빨간 마스크도 있었다. 입 찢어진 여자가 피로 물든 새빨간 마스크를 끼고 아이들을 찾아 돌아다닌다. 그러고는 자신의 얼굴이 어때 보이냐고 묻는다. 못 생겼다고 하면 화가 나서 아이의 입을 찢고, 예쁘다고 하면 너도 똑같이 만들어 주겠다며 입을 찢는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지 갈등하게 만드는 빨간 마스크는 기말 고사의 주관식 문제처럼 또래 아이들을 공포에 빠트렸다. 이처럼 해질녘 초등학교 주변은 홍콩 할매 귀신과 빨간 마스크가 돌아다니는 공포의 세계였다.
나는 어쩌다 둘이 마주치는 상황을 상상하곤 했다. 서로 수고한다며 인사를 나눌까? 아니면 경쟁 관계라서 싸움이라도 한 판 벌일까? 홍콩 할매와 빨간 마스크가 대면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조금 웃기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두려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무슨 색 휴지가 필요한지를 집요하게 묻는 화장실 귀신부터 거꾸로 보면 귀신 얼굴이라는 유관순 열사의 초상화까지, 어린 시절 내 주위에는 끔찍한 괴담이 무궁무진했다.
그런 괴담들은 착한 아이를 만드는 하나의 수단으로 작용했다. 일몰 후에 집밖을 돌아다니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홍콩 할매와 빨간 마스크는 아주 과격한 방법으로 일깨워 주었다. 성적이 뛰어난 친구를 질투하면 콩콩 귀신이 되어 찾아오고, 어른들의 질문에 대답을 잘 하지 못하면 화장실에서 손이 쑥 튀어나와 끌고 가 버린다. 소풍 때마다 비가 온다 해도 기상청을 탓하지는 말지니, 그건 바로 수위 아저씨가 구렁이를 죽였기 때문.
재미있는 것은 이런 괴담들이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홍콩 할매와 빨간 마스크는 위세가 드높다. 오히려 더 잔혹하고 더 강력해졌다. 문방구에서 팔리는 싸구려 괴담집이나 만화책에는 아이를 해치는 끔찍한 장면이 여과 없이 묘사된다. 그런 장면들은 아이들의 무의식을 파고들어 집요하게 공포를 자극한다. 컴컴한 밤, 화장실에 가고 싶어 눈을 뜬다. 문득 방안 한 구석의 축축하고 눅진한 어둠 속에 누군가가 서 있을 것만 같다. 어둠이 일렁인다. 발을 질질 끄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눈을 꼭 감는다. 그 순간 머릿속으로 괴담의 한 부분이 떠오른다.
“그래서 귀신이 그 아이 집으로 찾아갔대.”
이쯤 되면 눈물이나 오줌 둘 중 하나를 찔끔거리며 뼈저린 후회를 하게 된다. 아! 학원 갔다가 일찍 돌아 올 걸.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 걸. 친구를 괴롭히지 말 걸. 아빠 말을 잘 들을 걸…….괴담은 아이들의 세계에서만 떠도는 건 아니다. 할머니를 도와드리려고 따라갔더니 봉고차에 납치당할 뻔했다, 누군가가 건네는 마른 해산물에 마취제가 들어 있다, 초인종 밑에 범죄의 용도로 의문의 표시와 낙서가 그려져 있다, 인육 판매책들이 뼈와 머리카락 등을 산성 용액에 녹여 하수구에 버린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떠돌고 있는 이 괴담들은 인터넷을 통해 광범위 하게 퍼져나가면서 어른들의 공포마저 자극하고 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유언비어일 게 뻔한 이런 괴담들이 끊임없이 재생산 되는 이유는 그 속에 시대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옛날의 홍콩 할매와 빨간 마스크가 유괴에 대한 공포에서 탄생했다면, 요즘은 성추행과 성폭행의 그림자가 더해졌다. 장기척출, 인육, 납치, 마취제, 의문의 낙서 등도 낯선 이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모태로 태어난 괴담들이다. 괴담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담고 있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현상들이 귀신, 낯선 이, 괴물의 형태로 변모해 우리 주위를 떠돈다.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 괴담의 생명력이 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동화라고 알고 있는 옛 이야기들도 대부분 그 시대의 괴담이었다.
일본영화 <링>의 한 장면
엠브리오 기담
오랜만에 괴담 소설을 읽었다. ‘야마시로 아사코’의 『엠브리오 기담』은 일본의 괴담 전문 잡지 <유(幽)>에 발표한 아홉 편의 괴담을 묶은 소설집이다. 작품의 배경은 이제 막 도로 정비가 되기 시작한 일본의 옛날 옛적. 주인공은 ‘이즈미 로안’이라는 인물로 직업은 여행 작가. 헌데 이즈미 로안은 지독한 길치라서 그와 함께 다니는 사람은 여행 중 꼭 이상한 길로 빠지고 만다. 『엠브리오 기담』은 주인공 이즈미 로안과 짐꾼인 ‘미미히코’가 괴상한 여행지에서 겪게 되는 섬뜩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때로는 무섭고, 때로는 끔찍하고, 때로는 뭉클한 아홉 편의 괴담을 읽다보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엠브리오 기담』 속 괴담들은 그 시대와 배경만 다를 뿐 현대 도시를 떠도는 괴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연히 줍게 된 ‘엠브리오(배아)’는 인간의 탐욕에 대해 말하고, 산속에서 만난 사람을 도와주려다가 지옥의 구덩이에 갇히게 되는 이야기 속에는 타인에 대한 섬뜩한 경고가 들어 있다. 그 외에도 다른 사람의 물건을 주웠다가 화를 입는 이야기, 인간을 닮은 물고기를 먹는 마을 사람 이야기 등 그야말로 기묘하고 괴괴한 이야기들이 펼쳐져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한 명의 작가가 떠오른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 작가가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바로 천재라 불렸던 ‘오츠 이치’다. 열일곱에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로 데뷔해 『GOTH 리스트 컷 사건』, 『ZOO』, 『암흑 동화』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일약 스타 작가로 떠오른 그는 짧고 간결한 문체와 서늘한 묘사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 오츠 이치가 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가명으로 연재한 괴담들을 한 권으로 묶어 돌아왔다. 그렇다. ‘야마시로 아사코’가 바로 오츠 이치인 것이다. 오츠 이치 특유의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섬뜩한 묘사하기’에 열광하는 독자라면 두 손 들고 환영할 만 한 작품이 이 『엠브리오 기담』이다. 매 번 느끼는 사실이지만 오츠 이치는 이런 짧은 이야기를 정말 잘 써내는 작가다.
『엠브리오 기담』 속 괴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하지 말 것’이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금지된 일을 ‘하면서’ 무서운 일을 당하거나 화를 입는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게 되면 고통을 겪는다는 교훈은 사실 모든 괴담의 공통점이나 다름없다. 홍콩 할매나 빨간 마스크 속에는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는 경고가 들어 있다. 요즘처럼 험한 세상에서는 섣불리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 안 된다는 정서가 납치와 장기밀매 괴담을 만들어냈다. 그런 금기들을 어긴다면 우리는 잡아먹히거나 입이 찢어지거나 장기가 모두 척출된 채로 인천 앞바다에 떠오르기 십상이다. 괴담은 우리 모두가 순한 양이 되기를 강요한다. 목자의 인도에 따라 이리저리 고분고분 옮겨 다니는 양.
문제는 이런 괴담들이 단순히 우리를 오싹하게 만들고 사회상을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특정 사상이나 이념이 들어간 채 유통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괴담들은 불필요한 공포를 조장하고 사람들을 현혹하며 심한 경우에는 사회 혼란을 불러온다. 괴담으로 사람들을, 국민들을 조정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시대의 가장 끔찍한 괴담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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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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