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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우의 예능과 인생’을 시작하며
예능, 어둡고 컴컴한 인생을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
예능 프로그램은 제게는 인생 그 자체입니다. 어둡고 컴컴한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게 손을 내밀어 준 고마운 친구입니다. 저는 이 땅의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예능이 그런 존재이리라 믿고 있습니다. 바보상자가 보여주는 가장 바보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혹자는 예능을 폄하하지만 그러면 어떤가요, 바보로 사니 이리도 편한 걸.
거창하게 시작할 말을 찾다가,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고 누웠는데 번뜩 영감이 떠올라 이렇게 소개 글을 시작합니다.
저는 인간이란 무릇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생각을 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저는 매 순간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 전형적인 일 중독자였으니까요. 화장실에서도 책을 읽고, 지하철을 갈아타는 그 짧은 시간에도 스마트폰으로 최신 뉴스를 보며 ‘나란 사람, 참 열심히 산다!’라고 뿌듯해 했습니다. 그냥 멍하니 앉아 있으면 마치 죄를 짓는 것 같았다니까요.
그러다가 탈이 났습니다. 어느 순간, 마치 건전지가 다 된 고물 장난감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울증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심각했지요. 지금이야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털어놓지만, 처음 우울증 진단을 받았던 일 년 전 그날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내가 우울증이라니!
내가 고자라니, 혹은 말년에 유격이라니 보다 더 심한 충격이라면 좀 이해하시려나요?
의사 선생님의 처방은 간단했습니다. 약 먹고 푹 쉴 것. 대신에 쉬는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말 것.
약을 챙겨 먹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약을 꺼내서 입에 털어 넣고 물만 마시면 끝났으니까요. 문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기’였습니다.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방법을 찾지도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무작정 소파에 앉아 있었습니다. 양지 바른 곳에서 실실 웃으며 앉아 있는 동네 바보처럼. 그 다음에는 눈을 멀뚱멀뚱 뜬 채 침대에 누워있기도 했죠. 컴퓨터 게임이라도 해 볼까 싶어 롤(lol)을 시작했는데, 웬걸 이건 회사 다니는 것보다 스트레스가 더 심하더군요. 그래서 다 때려치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텔레비전이었습니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소파와 몸의 각도가 잘 맞아야 장시간 누워있는 게 가능합니다!) 리모컨을 한 손에 들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가며 TV를 보는 것이야 말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저는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봤습니다. 우울증 때문에 웃을 일이 없었는데 예능을 보고 있으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하루 종일 TV의 예능만 찾다보면, 우리나라에 참으로 많은 예능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수많은 작품들을 챙겨보면서, 그 옛날 어머니의 말씀처럼 저는 점점 바보가 되어갔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면서 서서히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은 제게는 인생 그 자체입니다. 어둡고 컴컴한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게 손을 내밀어 준 고마운 친구입니다. 저는 이 땅의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예능이 그런 존재이리라 믿고 있습니다. 바보상자가 보여주는 가장 바보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혹자는 예능을 폄하하지만 그러면 어떤가요, 바보로 사니 이리도 편한 걸.
제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깨달았던 삶의 정수(精髓)들을 이 칼럼을 통해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뭐, 정수라 해서 거창한 비밀이나 깨달음은 아닙니다. 그저, 우리네 인생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런 걸 말하고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삶도 예능(藝能)으로 이루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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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