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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 『제노사이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한 종족이 다른 종족을 집단학살(제노사이드)하는 경우는 인간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다는, 작품 속에서 거듭 다뤄지는 내용이 아니고라도 우리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사악해 질 수 있는지 우리는 현실의 뉴스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런 썩어빠진 인간이 계속 살아갈 가치가 있을까? 인간보다 뛰어난, 초월적인 존재의 입장이라면 인간을 향해 ‘Delete’ 버튼을 누르고 싶어지지 않을까?
여전히 아름다운지
나는 대체로 긍정주의자라서 세상은 제법 아름답다고 믿는 쪽이다. 그건 내 삶이 힘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든 삶은 힘들다. 뻑뻑하게 익힌 삶은 달걀을 물 없이 꾸역꾸역 넘기는 것과 같다. 그만큼 가슴 답답한 일이고 목이 메는 일이다, 산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언젠가 한 번, 그러니까 대학생일 때 태종대의 그 유명한 자살바위에 갔던 적이 있다. 아마 망쳐버린 중간고사 다음 날이었으리라. 우리학교는 태종대 근처에 있었기에 도서관에서 밤을 보낸 후 꼭두새벽부터 자살바위로 향했다. 딱히 무언가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저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와 장엄하게 펼쳐진 바다를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문제는 그 바위를 찾은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
몇 미터 밖에서도 강력한 술 냄새를 풍기던 그 아저씨는 나를 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아! 젊은 사람이 뭐가 그리 힘들어서 여길 찾아?”(강력한 부산 사투리를 번역했다.)
“어르신. 그게 아니고…….”(나 역시 부산 사투리였다.)
내 말은 무시한 채 그 아저씨는 인생이 어쩌고, 삶이 어쩌고 장광설을 늘어놓으셨다. 사업을 하다가 망하고 그야말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마누라’가 도망갔다는 기막힌 사연도 털어놓으셨다. 우리가 한참 인생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하고 있을 때, 수평선 저 너머로 노랗게 잘 익은 태양이 불쑥 솟아올랐다. 잔잔한 바다 저 너머에서부터 태양빛을 머금은 파도가 밀려왔고 갈매기 수십 마리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봐 바라. 억수로 아름답제?”
아저씨는 씩 웃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정말로 아름다웠다. 나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그때처럼 아름다운 일출을 본 적이 없다. 아저씨와 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 어깨동무를 한 채 태종대를 내려왔다. 그에게서 풍기는 술 냄새를 맡으며, 나는 어쩌면 아저씨가 늘어놓았던 그 수많은 말들이 자신에게 한 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요즘도 가끔 그때의 일출을 떠올린다. 여전히 아름다운지, 언젠가 한 번 다시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제노사이드
무라카미 하루키는 『잡문집』 이라는 책에서 ‘캄캄하고 밖에서는 초겨울 찬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밤에 다 함께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소설,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까지가 동물인지 알 수 없는 소설, 어디까지가 제 온기고 어디부터가 다른 누군가의 온기인지 구별할 수 없는 소설’을 쓸 수 있기를 바랐다고 고백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름답다고 믿게 되는’ 소설을 쓰고 싶다. 내 소설에는 항상 누군가가 죽고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고 범죄자와 그 뒤를 쫓는 절박한 사람들이 나오지만 그래도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변함이 없다.
아마 다카노 가즈아키도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13계단』 과 『그레이브 디거』 로 유명한 이 작가는 긴박감 넘치는 범죄 소설과 스릴러 소설을 써 왔지만 작품 속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늘 한결 같았다.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다는 것. 사람들은 여전히 따뜻한 인간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작가가 품고 있는 긍정과 희망의 시선 덕분에 기분이 상쾌해진다.
근작인 『제노사이드』 에서도 그 시선은 변함이 없다. 다만 이번에는 욕심을 좀 부렸다. 전작들의 빠른 전개와 흡입력 있는 내용,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에 더해 전 인류적인, 아니 초(超) 인류적인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소설은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이라는, 발음만 해도 왠지 앓아누울 것 같은 불치병과 인류의 멸망을 예측한 ‘하이즈먼 리포트’ 두 개의 키워드로 시작된다. 그리고 곧 미국 용병인 ‘조너선 예거’와 일본의 대학원생 ‘고가 겐토’가 이 두 개의 키워드에 얽혀 들게 되고,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는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다.
『제노사이드』 는 주춤거리거나 망설이지 않고 바로 핵심을 파고든다. 독자들은 책을 펼치고 얼마 되지 않아 이 작품이 신인류의 등장으로 현생 인류가 종말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설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된다. 기발한 착상이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전작들이 비교적 현실적이었던 데에 반해 『제노사이드』 는 SF적인 소재를 끌어왔다. 꽤 골치 아픈 공식들이나 단어들이 등장하지만, 걱정 마시라 그런 것들을 몰라도 이야기는 잘만 굴러간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들, 고가 겐토와 조너선 예거의 상황은 그렇지 않았으니,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쫓기며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 치료약을 개발해야 되는 일본인 청년이나 정부의 명령으로 콩고에서 피그미 족을 말살해야 하는 용병이나 고달픈 상황을 연거푸 만난다. 주인공이 고난을 겪을수록 이야기는 점점 흥미진진해지고 끝내 예측할 수 없는 결말로 치닫는다.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솜씨는 여전하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왜 지금 이 시대에는 진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진화는 과연 점진적으로만 일어날까?
현생 인류보다 진화한 ‘인간’이 나타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제노사이드』 에서 던지는 이 세 가지 의문은 곧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작품 속에서 현생 인류를 뛰어넘는 새로운 종(種)을 묘사하는 부분은 매우 섬뜩하다. 또한 그 종이 가지는 힘, 그에 의해 인류가 맞이하게 되는 결과 등도 충격적이다. 어떤 부분은 너무 나간 거 아닌가, 고개를 갸우뚱 하게도 만들지만 적어도 작품 속의 세계에서만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결국에는 납득하게 된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SF와 스릴러, 심지어 종말문학까지 아우르는 이 장대한 이야기를 제법 영리하게 풀어나갔다.
작품의 시작, 그러니까 다카노 가즈아키가 작품을 쓰게 된 계기 자체는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질문 때문이겠지만, 실제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좀 더 심오하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인간의 자격은 무엇인가?
한 종족이 다른 종족을 집단학살(제노사이드)하는 경우는 인간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다는, 작품 속에서 거듭 다뤄지는 내용이 아니고라도 우리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사악해 질 수 있는지 우리는 현실의 뉴스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런 썩어빠진 인간이 계속 살아갈 가치가 있을까? 인간보다 뛰어난, 초월적인 존재의 입장이라면 인간을 향해 ‘Delete’ 버튼을 누르고 싶어지지 않을까?
다카노 가즈아키는 작품의 마지막에 나름의 해답을 내놓는다. 그 결말 속에서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작품 속에서 숱하게 등장한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제노사이드, 그 끔찍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희망이 있기에 인간의 존재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조건을 갖춘 두 사람, 고가 겐토와 조너선 예거 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인간들을 멸절에서 구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결말에 이르러 독자들을 미소 짓게 하는 작은 반전, 허나 그 결과가 전 인류에 미치는 그 반전 또한 타인을 돕고자 하는 인간의 선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누군가를 향해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좌절하고 실패하더라도 의지를 가지고 다시 한 번 일어설 때, 아름다운 것을 보고 탄성을 내지를 때, 이른 새벽 자살바위에 선 청년이 걱정되어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을 때,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그 옛날의 일출을 아름답다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옆에 그 아저씨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인간’과 함께 있었고, 그 때문에 진정으로 아름답다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인간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아름다움의 배경이 되어 주리라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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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