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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혜의 꽤 괜찮은 책] 마음은 ‘대체’될 수 있을까? 『클라라와 태양』

<월간 채널예스> 202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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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언가를 다른 것의 ‘대체제’로서 사랑할 수 있는가? 아니, 그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언제나 또 다른 무언가를 새롭게 사랑할 수는 있다. (2021.08.04)


아이와 대화하는데 갑자기 식탁 위의 휴대전화가 띠링 하고 울리더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 원하시는 정보를 찾지 못했습니다.” 무슨 상황인가 어리둥절해 있다가 깨달았다. 아하, 아이에게 ‘시리얼’ 먹겠느냐는 물음에 자기를 부른 줄 착각하고(알려졌다시피 애플에서 휴대전화에 탑재된 인공지능의 이름은 ‘시리’다) 대답한 것이로구나. 예상치 못한 전화기의 참견이 황당하여 웃음이 나오는 한편, 오래전부터 SF의 단골 소재였던 삶이 그야말로 목전에 있구나 싶어 다소간 긴장이 되기도 했다. 로봇이나 인공지능과 함께 하는 건 픽션에서나 볼 수 있다 여겼는데.

이대로라면 영화 <블레이드 러너> 속 세상이 머지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기계가 인간과 거의 흡사해진 세상, 로봇에 의해 인간의 많은 영역이 ‘대체’된 세상, 그리하여 로봇이 인간을 보조하는 역할을 넘어 경쟁자이자 적대자로 등장하는 세상 말이다. 하기야 ‘번역기 말투’라며 놀림 받던 기계 번역은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는 중이고, 요즘 패스트푸드점에서는 키오스크로만 주문을 받는다고 하니, 어쩌면 이미 많은 부분에서 그리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영화 <Her>처럼 로봇과 인간이 사랑에 빠지는 상황 뿐이려나. 올초 인공지능 챗봇인 이루다가 논란 끝에 서비스를 종료하자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역시 이미 실현 중인지도.

이렇다보니 요즘은 인공지능 관련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연스레 다음의 질문이 떠오르곤 한다. 그렇다면 기계는 인간을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 노동이나 학습은 그렇다 치고, 기계가 인간의 정서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인간이 품은 아주 친밀한 욕구와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까지도 기계가 대체 가능할까? 만약 가능하다면, 어쩌면 인류는 진정한 의미에서 해방을 맛보게 될지 모른다. 특별한 노력 없이도 언제까지나 날 사랑해줄 존재, 언젠가 반드시 죽을 운명인 동물이나 사람 대신 영원히 곁에 남아 상실감을 채워줄 수 있는 존재. 이 얼마나 편리한가. 다만 그리 된다면 또 다른 질문이 남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대체 가능한 세상에서, 인간은 과연 서로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이러한 의문을 품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소설 『클라라와 태양』를 펼치자마자 흠뻑 빠져들 것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최신작인 이 소설은 반려로봇이라는 상상의 소재를 중심으로 앞서 제기한 의문들에 정면으로 맞서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로봇이 인간의 정서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로봇에게 마음이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로봇이 인간의 마음까지도 대체가능한지에 대하여, 다른 무엇보다 ‘마음’이란 무엇인지, 우리를 고유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클라라와 태양』은 아이들의 친구로 반려로봇이 개발되고 판매되는 근미래의 사회를 배경으로, 로봇 클라라가 인간 조시를 만나 겪어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운명처럼 조시라는 여자아이에게 입양된 클라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반려인이 병이 들어 나날이 상태가 악화 중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뒤로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조시를 낫게 하는 데 골몰한다. 안타깝게도 애써 생각하고 실현한 방법이라는 것이 오로지 태양열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움직이는 태양열 로봇인 자신의 기준에서였기에 큰 효과는 없었지만.

이야기는 내내 클라라의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머지않아 마주할지 모르는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재미있으며, 인간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로봇의 생각과 행동을 지켜보는 일은 몹시 흥미롭다. 반려로봇이 개발된다면 진짜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만 같다. 그 때문인지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며, 순식간에 몰입하여 지루할 틈 없이 읽어나갈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따로 있다. 줄거리나 소재보다도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다름아닌 소설이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방식이다.

언급했다시피 소설은 오로지 로봇의 시야와 생각을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그와 같이 로봇의 눈에 비친 인간을 가감없이 그려냄으로써 로봇의 성능과 특징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어떤 본질을 더 자세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다양한 감정이 공존한다는 것, 그리하여 때로 잔인하게 웃는 누군가의 눈 속에 슬픔이 함께 어릴 수도 있다는 것, 인간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의도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말과 행동을 할 때가 많다는 것, 사람들은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우 복잡하고 헤아리기 어려운 행동을 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혹독한 외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누군가의 더 나은 행복과 미래를 바라기도 한다는 것, 수많은 모순과 혼란으로 때로는 스스로도 자기 마음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리하여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독자는 깨닫게 된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인간은 오로지 호르몬으로 이루어진 생명체이며, 그러므로 인간의 자아라든가 고유성 같은 것은 사실 무의미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고유한 존재라는 것을. 우리 자신이 고유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과 그들이 우리에게 품는 감정으로 인해 우리는 고유해진다는 것. 그러므로 이 소설은 다음의 질문에 대한 가즈오 이시구로의 대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다른 것의 ‘대체제’로서 사랑할 수 있는가? 아니, 그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언제나 또 다른 무언가를 새롭게 사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무엇도 다른 무엇을 ‘대체’할 수는 없다.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면 사랑을 중심으로 ‘마음’이라는 것이 생겨나고, 그렇게 되면 하물며 ‘기계’조차도 다른 ‘기계’를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이다.



클라라와 태양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저 | 홍한별 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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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승혜(작가)

작가. 에세이『다정한 무관심』,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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