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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혜의 꽤 괜찮은 책] 잘 말하고 잘 생각하기 - 『우리말 어감 사전』
<월간 채널예스> 2021년 7월호
굳이 저걸 ‘적확’하다고 말해야 할 이유가 있어? ‘적확’이라는 단어를 안다고 잘난 척 하는 거야, 뭐야? 하는 비뚤어진 생각을 하곤 했던 것이다. (2021.07.06)
“제 경험상 ‘정확하다’와 ‘적확하다’의 차이점은, ‘적확하다’를 쓰는 사람들이 단지 지나치게 우쭐댄다는 정도입니다.” 인터넷 어딘가에서 우연히 이 문장을 보고선 깔깔대며 웃었다. 이것은 한때 트위터에서 유행하던, “제 경험상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의 유일한 차이점은,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이 단지 지나치게 우쭐댄다는 정도입니다.”라는 우스갯소리를 조금 변형하여 응용한 것이다. 패러디도 재미있었을 뿐만 아니라 내용 또한 평소 하던 생각과 몹시 비슷했기에 격하게 호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부터 자주 눈에 띄는 ‘적확하다’란 표현을 보면서 나 역시 자주 생각하곤 했다. 이를테면 “쓰임이 매우 적확하다”, “적확한 표현”, “상황을 적확하게 파악하고 인식한다면”, “적확하고 날카로운 통찰” 같은 말들. 그런 말들을 볼 때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그냥 ‘정확한 표현’, ‘정확한 통찰’이라고 하면 안 되나? 굳이 저걸 ‘적확’하다고 말해야 할 이유가 있어? ‘적확’이라는 단어를 안다고 잘난 척 하는 거야, 뭐야? 하는 비뚤어진 생각을 하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정확하다’와 ‘적확하다’는 같은 표현일까? ‘정확’을 ‘적확’으로, 또는 ‘적확하다’를 ‘정확하다’로 대체해서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정확하다’와 ‘적확하다’라는 단어가 따로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정확하다’란 ‘바르고 확실하다’를 뜻한다. 유의어로는 ‘확실하다’, ‘명확하다’, ‘분명하다’ 같은 표현들이 있다. 한편 ‘적확하다’는 ‘정확하게 맞아 조금도 틀리지 아니하다’는 의미다. 얼핏 유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둘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국립국어원에 의하면 ‘틀림없이 들어맞는 표현’이라는 뜻을 나타내려면 ‘적확한 표현’으로, ‘바르고 확실한 표현/자세하고 확실한 표현’이라는 뜻을 나타내려면 ‘정확한 표현’으로 써야 한다고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예를 들어 일종의 ‘교본’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경우, 그러니까 스포츠, 악보, 수학과 같이 어떠한 동작, 음율, 숫자 등이 딱 떨어지게끔 ‘정답’이 존재하는 대상에 대하여, 그러한 정답에 최대한 일치하는 표현이나 자세에 대해서는 ‘정확’을 사용해야 한다. “방금 한 동작 무척 정확했어요!” 같이 말이다. 반면 올바른 무언가에 대한 공감대는 존재하나 그것을 수치적으로 계량할 수는 없는 경우, 이를테면 정치, 사회, 문화와 같은 영역에 있어서는 상황에 매우 적절하고 어울리는 어떠한 것을 볼 때 ‘적확’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매우 적확한 통찰이네요”처럼.
그런 의미에서 ‘적확하다’를 쓰는 사람은 ‘정확하다’를 쓰는 사람에 비해 단지 지나치게 우쭐댄다는 정도만 다르다는 말에 동조하며 깔깔거렸던 얼마 전까지의 나는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셈이다. ‘정확’과 ‘적확’은 같지도 않을뿐더러, ‘정확한 생각’이라는 표현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상황에 따라 보다 적절하고 더 알맞은 ‘적확한’ 생각은 존재할 수 있지만, 수학의 답처럼 똑 떨어지는, ‘정답’에 가까운 ‘정확한’ 생각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얼핏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의미가 미묘하게 다른 단어가 상당히 많다. 편견과 선입견과 고정관념, 체념과 단념과 포기, 거만과 오만과 교만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이들은 모두 비슷한 뜻으로 통틀어 취급되며 그로 인해 자주 혼재되어 사용되지만, 실은 모두 조금씩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 더해 감사하다와 고맙다처럼 사전적 의미는 차이가 없더라도 어느 것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어감이 달라지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비슷한 듯 보이나 의미가 미묘하게 다르고, 맥락과 상황마다 어감이 달라져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무수한 단어들을 대체 어떻게 구분하여 시의적절하게 잘 사용할 수 있을까?
안상순의 『우리말 어감 사전』은 앞서 예시를 든 단어들과 같이 한국어 내에 존재하는 미묘한 표현들을 비교하여 각각의 차이점과 각기 다른 쓰임새를 알려주는 책이다. 30년 넘도록 사전을 만들었으며 그만큼 우리말에 각별한 애정을 지닌 저자는 겉으로는 유사한 듯 보이지만 그 속뜻을 알고보면 꽤나 다른 표현들이 한국어에 얼마나 많은지, 그러한 말의 속뜻을 알고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역설한다. 단어에 대한 설명은 자세하고 구체적이며, 예시로 든 문장들은 적확하여 이해하기 쉽고 편하다.
물론 여기까지 읽고서 너무 번거로운 것 아니냐고, 지금까지처럼 그냥 구분 않고 대충 쓰면 안 되냐고, 어차피 다 비슷한 뜻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구분하며 사용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국어학자도 아니고, 기자도 아닌데 그냥 살던 대로 살면 안 되냐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흔히 말해지듯 언어는 우리의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생각하는대로 말하기도 하지만, 때로 말하는 대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무심결에 사용하는 단어들, 얼핏 비슷해 보였던 단어들마다 제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때로는 단어 하나로도 어감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무언가에 대해 말할 때 한층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신중을 기하는 사이에 우리는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상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그것을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은 무엇인지에 대해. 말과 생각은 이처럼 늘 이어져 있다. 잘 생각하다 보면 잘 말할 수 있고, 잘 말하다 보면 잘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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