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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믿음이 한몸이라고 알려주시개
영화 <개들의 섬>
‘차별’과 ‘억압’에 대한 풍자 메시지를, 웨스 앤더슨의 천재적인 강박관념으로 빚어낸 비주얼 최강의 애니메이션. (2018. 07. 12)
영화 <개들의 섬>의 한 장면
일단 반려견과 사는 자, 일본 서브컬처 덕후, 웨스 앤더슨 연출의 색감에 중독된 자, 일본 악기인 태고의 두둥 소리에 몸이 흔들리는 자, 일본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자, 꼰대에게 ‘막된 듯 대드는’ 10대에게 흥미를 느끼고 매료된 자, 성장담에 목마른 자라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개들의 섬>에 감동 받을 확률은 99%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웨스 앤더슨 연출에 중독된 자로서, 99% 감동을 넘어섰다. 101분 동안 끊임없이 ‘귀여워’, ‘멋져’, ‘어쩜 좋아’를 중얼중얼. 2001년 영화 <로얄 테넌바움>의 독특한 가족사를 보면서 환희를 맛보았고, 그때 배우 벤 스틸러가 입고 나왔던 ‘아디다스 추리닝’에 훅 가버린 기억도 생생하다. 2012년 <문라이즈 킹덤>은 또 어떻고. 이미 배우 틸다 스윈튼에게 빠져 있던 관객에겐 최고의 선물 같은 영화였다. 아아, 2014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고는 그 파스텔 톤의 영상을 잊지 못해 예술서로 나온 동명의 책을 세 권이나 구해서 선물하기도 했던 나란 사람.
애니메이션 <개들의 섬>에는 목소리 출연이 쟁쟁하다. 틸다 스윈튼은 물론이고 스칼렛 요한슨, 에드워드 노튼, 그레타 거윅, 오노 요코까지 금세 알아듣는 음성이 연기를 한다.
<개들의 섬>은 20년 후 일본 가상의 미래사회가 배경이다. 메가사키 시의 고바야시 시장이 선거에 나서면서 개들의 전염병이 인간을 위협한다는 명분 아래 쓰레기 섬으로 개들을 추방하는 공약을 실천하며 벌어지는 일들이다. 공약 실천을 보여주고자 경호견 ‘스파츠’를 1호로 추방한다.
<개들의 섬>에서는 영어와 일본어 두 언어가 섞여 있는데, 일본어는 굳이 자막 처리를 하지 않는다. 중요한 장면에서는 영어 중계 방송을 하는 연출 방식인데, 웨스 앤더슨은 개와 인간이 언어로는 불통하는 관계임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에서 개들은 영어를 쓰고 사람은 일본어를 쓴다. 언어 소통 부재에서 웃음의 포인트가 살아나기도.
고바야시 아들인 ‘아타리’는 대형 기차 사고로 가족을 잃고 먼 삼촌뻘인 고바야시 시장에게 입양된 것. 스파츠와는 영혼을 나눌 정도로 친해졌는데, 정치적 이유로 고바야시 시장이 쓰레기 섬에 버렸으니 가만 있을 리 만무하다. 열두 살 소년은 모험하며 성장하고 싸우면서 사랑을 실천한다.
고바야시 시장은 정치적 야욕으로 일부러 개 전염병을 퍼뜨렸고, 전염병 치료약을 개발하는 경쟁자인 과학자를 살해했으며, 인공 개와 무기를 개발하고, 개가 위협이 된다는 걸 시민에게 세뇌한다. 그 세뇌가 성공하여 당선되었고, 또 재선을 노리는 사이에 아들 아타리가 스파츠를 찾아나섰으니 전면 전쟁을 선포할 상황. 정치적 논쟁과 풍자가 절묘하다.
영화 <개들의 섬>의 한 장면
경비행기로 스파츠를 구하러 쓰레기 섬에 날아갔다가 추락, 다섯 마리 개의 도움으로 살아나 스파츠와 만난다. 렉스, 보스, 듀크, 킹, 치프에겐 아타리란 인간의 존재가 버림받았던 상처를 치유하게 하는 셈. 특히 치프는 떠돌이 개로 거칠고 물어대기 일쑤이지만 아타리에게 서서히 동화되어 궁극적으로 가장 믿음 가는 개로 남는다. 알고 보니 스파츠의 동생이었다는 것, 그래서 후에 스파츠 대신 경호견이 된다는 스토리는 예상보다 만화적인 결론.
<개들의 섬>은 ‘차별’과 ‘억압’에 대한 풍자 메시지를, 웨스 앤더슨의 천재적인 강박관념으로 빚어낸 비주얼 최강의 애니메이션이다. 세상이 억압적인, 강요된 질서를 요구할 때 사랑은 그에 어떻게 화답해야 하는가. 인간 아타리와 개 스파츠가 역경을 딛고 제자리로 사랑을 돌린다. 스파츠는 과연 ‘사랑과 믿음이 한몸이라는 걸 알려주시개’가 아닌가.
웨스 앤더슨이 일본 판화가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영향을 받아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는 고백도 있지만, 쓰나미와 지진과 화산 폭발로 망가진 산업 시설의 쓰레기 섬만 해도 마치 일본 민화를 보는 듯한 기시감을 준다. 버려진 장소마저 예술적 소재로 삼아 영상미로 극화시키는 감독의 뛰어난 감각이다.
죽은 걸로 알려진 아타리가 살아 돌아와 한 편의 시를 발표한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인간의 가장 좋은 벗에게/ 떨어지는 벚꽃”. 하이쿠의 제목은 ‘아타리의 등불’. 이 시를 고바야시 삼촌에게 바쳤으니, 감동한 시장의 변화가 기대될 수밖에. 해피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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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