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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수상한 수업>으로 대학로 돌아온 노신사 박웅

70대 배우들이 무대에 서는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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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서고 연극을 함으로써 자신을 확인할 수 있죠!”

몇 년 전에는 오승근 씨의 ‘내 나이가 어때서’가 인기더니 요즘은 이애란 씨의 ‘백세인생’이 화제라고 하죠? 노래야 재밌게 듣지만, 집에 계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어디 그렇습니까? 어린아이 못지않게 조마조마하고 불안불안하죠. 그런데 이런 마음이 ‘젊음’의 오만은 아닐까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바로 70대 배우들이 무대에 서는 공연을 볼 때인데요. 특히 쉬어가는 시간도, 편집도, 연기 외에 특별히 도움 받을 것도 없는 연극에서 주인공으로 두 시간의 무대를 짱짱하게 이끌어가는 그들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오늘의 주인공도 2인극 <수상한 수업>으로 대학로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선사하고 있는 관록의 배우 박웅 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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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에게는 연극 무대가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어느 작품이나 힘든 건 있지만 그래도 숨 쉴 틈이라고 있는데, 연극은 태생적으로, 숙명적으로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무대에 서고 연극을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확인해 볼 수 있죠.”

 

기자가 박웅 씨를 만난 것은 토요일 저녁 8시. 공연은 5시에 끝났는데 그 시각까지 공연장에 계셨다고 합니다. 전날은 취재를 위한 전막 시연까지 2회 공연이 있었으니 보통 빡빡한 일정이 아닙니다.


“상대역이 더블 캐스팅이라서 맞춰보느라, 조금 피곤하기는 하네요(웃음).”

 

상대역인 ‘유진원’에는 김재만 씨와 박웅 씨의 아들인 박준 씨가 호흡을 맞추고 있습니다.


“재만이라는 친구가 왕성하게 활동하는 연기자라서 연습기간에 일본에서 일이 있었어요. 저 혼자 연습을 못하니까 상대역은 더블 캐스팅으로 얘기가 됐고, 제 둘째 아이가 연기생활을 하고 있어서 ‘아버지와 같이 하겠느냐’고 먼저 물었죠. 그런데 아들과 한 무대에 선다는 게 꽤 부담스럽네요. 괜히 신경 쓰이더라고요, 우리 애도 마찬가지일 테고. 앞으로는 같이 안 하는 게 좋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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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한 달 이상 이어지는데, 노교수 역은 박웅 씨가 도맡았습니다. 2인극이 1인극보다 더 어렵다고 하는데, 체력적으로도 힘드시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맞습니다, 2인극이 가장 힘들죠. 1인극은 자기가 알아서 포즈를 둬도 되는데 이건 상대와 맞춰야 해서 상당히 힘듭니다. 저는 더블 캐스팅으로는 연극을 거의 해보지 않았어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어쩔 수 없지만, 별로 안 좋더라고요.”

 

연극 <수상한 수업>은 지난 2014년 예술의 전당에서 기획 제작한 작품입니다. 이번에 <박웅의 수상한 수업>으로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대학로 예그린 씨어터로 무대가 옮겨지면서 무대 장치들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같은 소극장이지만 무대 조건이 달라요. 예술의 전당은 공연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지만, 대학로의 경우는 극장용으로 지은 건물보다는 있던 건물에 극장이 들어간 경우가 많죠.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인데, 이 공연장은 최근에 지어서 꽤 높은 데도 예술의 전당에서 사용했던 무대 장치는 거의 사용하지 못했어요.”

 

작품은 쉽지 않습니다. 과거 판사로 일했던 노신사가 별 볼일 없는 조연출 유진원에게 5천만 원이 든 돈 가방을 들고 와 연기수업을 제안하죠. 두 사람은 무인 등대섬에서 49일간의 연기수업에 들어가고, 놀라운 과거와 마주하게 됩니다. 어쨌든 굉장히 집중해서 봐야할 작품입니다.


“그럴 겁니다. 저희도 좀 어려운데, 이야기가 비약적으로 흘러가다 보니까 관객들이 따라오기는 좀 힘들죠. 연극은 많은 부분 관객들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작가가 던져놓고 관객들이 생각하도록.”

 

형식은 반전 스릴러인데, 내용은 부성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성애마저 도대체 어떤 모습인지 규정하기 힘듭니다.


“오은희 작가는 노교수를 완전히 나쁜 사람으로 그렸다고 해요. 그런데 막상 연기를 해보니까 연민이 생기는 거죠. 배우로서 그런 연민이 생기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정황상 대사를 하다 보면 그래요. 배우 입장으로 보면 노교수는 마지막에 토로하는 건데, 그렇다고 완전히 용서하는 것도 아니에요.”

 

TV 드라마로 익숙한 박웅 씨는 1963년 동아방송 1기 성우로 연기를 시작해 극단 자유에서 수많은 작품을 만나며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습니다. <박웅의 수상한 수업>은 그가 지금까지 소속돼 있는 극단 자유의 창단 50주년을 자축하는 공연이기도 합니다.   


“배우로 완벽하게 만들어져서 현장에 나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예요. 현장에서 알게 되고 배우는 거죠. 극단 자유는 1966년에 창단했으니까 올해가 꼭 50주년이에요. 저보다 극단 자유의 50년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대학로에서 <그 여자 사람잡네>라는 공연을 하고 있는데, 저는 이 작품 때문에 참여할 수가 없었어요. 올해 2~3개 작품을 더 한다고 하니까 기회가 되면 그때 함께 해야죠.”

 

한국연극협회, 대학로문화발전위원회 등에서 활동한 박웅 씨는 대학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고, 대학로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배우들의 권익에 앞장서는 것은 물론이고 대학로를 문화지역으로 가꿔 나가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제가 힘이 부족해서 큰일은 못했어요. 대학로는 문화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항상 주역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문화와 상인들의 생업이 공존하는 곳이라 어찌 보면 주인 없는 곳 같아요. 잘못된 걸 수정하고 해결하는 사람이 없고, 연극인들은 한두 달 연극하면 떠나버리니까 책임감 있게 관여할 수가 없죠. 그래서 이 지역 사람과 예술인들 사이에 중간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해요. 문화지구로 지정만 됐지 후속 조처는 미흡하거든요.”

 

참 힘들지만 신기하게도 대학로에서 사라지지 않는 연극. 박웅 씨를 보러 오는 관객들도 계실 텐데,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 보러 오는 분들은 없죠(웃음). 무대 위 이야기가 인간이 살아가면서 일어날 수 있고, 무언가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라서 여전히 관심을 갖고, 또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관객들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특히 기초 예술에 대한 힘을 보태줬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확산되면 그 힘을 가지고 또 다른 문화가 파생되고, 재창출할 수 있는 힘이 생기니까요. 저는 일단 이 작품을 잘 마무리하고, 얘깃거리들을 만들어서 무대 위에서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주말 저녁이라 젊은이들로 더욱 붐비는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뤄진 인터뷰. 소란함 속에서, 무엇보다 무리한 일정으로 누적됐을 피곤함 속에서도 진지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말씀을 이어가는 노신사 박웅 씨의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아내 장미자 씨와 아들 박준 씨도 카페로 들어서는데, 모두 배우이니 이 가족에게는 ‘무대’라는, ‘연기’라는 이야깃거리가 풍성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족이면서 동료이기도 하고요. 50여 년을 배우라는 한 길을 걸어온 박웅 씨의 관록 있는 연기, <박웅의 수상한 수업>에서 제대로 감상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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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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