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윤하정의 공연 세상
인터뷰를 위해 이 배우의 공연 일정을 확인하다 보니, 와, 쉬는 날이 없습니다. 뮤지컬 <쓰루 더 도어>와 연극 <액션스타 이성용>을 오가며 일주일 내내 대학로를 찾고 있더군요. <쓰루 더 도어>가 12월 31일에 끝나니까 새해에는 좀 여유가 있겠다고요? 기자는 내년 1월 5일부터 시작하는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때문에 그를 만나려는 건데요! 이렇게 연말연시를 공연장에서 불태우고 있는 그는 바로 배우 박유덕 씨. 공연을 하는 배우나 공연을 취재하는 기자나 다른 사람들 쉴 때 일하는 것은 같기에 이왕이면 크리스마스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봤습니다.
“월요일 제외하고 매일 공연한 지 3주 정도 됐어요. 이제 슬슬 몸에 한계가 온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쓰루 더 도어>나 <액션스타 이성용>은 유쾌한 작품이잖아요. 새해를 <빈센트 반 고흐>와 시작할 텐데, 아무래도 이 작품은 좀 무겁습니다.
“그렇죠, 이제 죽기 시작해야죠(웃음). 제가 작품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데, 지금은 <쓰루 더 도어>의 레니 영향을 더 받아서 항상 피곤해 하고 있어요(웃음). <빈센트 반 고흐>를 할 때는 테오가 몸이 불편한 설정이라서 몸이 정말 아파요. 평상시에도 팔을 불편하게 하고 있을 정도예요. 음울하지만 다시 행복하게 죽을 수 있도록 해야죠.”
빈센트 반 고흐야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화가이고 수많은 자료가 있습니다만 그의 동생 테오에 대한 캐릭터는 어떻게 잡아갔나요?
“빈센트와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는 책으로 많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건 참고만 하고, 이 공연에서 테오는 작가와 연출, 배우가 만들어내는 캐릭터잖아요. 그래서 작가님과 얘기를 정말 많이 했어요. 33살, 제 또래지만 그 당시 미술상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테오는 저와는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의 30대와 그때의 30대, 그들이 갖고 있는 책임감은 많이 다를 거예요. 사실 테오는 저와 많이 달라요. 보통은 연기할 때 제 색깔을 많이 내는 편인데, 테오를 연기할 때는 박유덕의 색을 많이 버리지 않았나 싶어요.”
극중 테오가 바라보는 빈센트는 어떤 모습인가요?
“저는 형이 무척 걱정돼요. 저의 아버지가 저를 바라보는 입장일 것 같아요. 제가 예고를 가려고 빈센트처럼 아버지와 많이 싸우고 고등학교 때 집을 나가기도 했거든요. 앞날이 불분명하지만 좋아하니까 해야 하는 일이고, 응원해주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많이 되고. 그래서 손을 잡아주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만큼 걱정했을 거예요. 이 형이 상처받지 않을까, 좌절하지 않을까.”
한두 해도 아니고, 평생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빈센트를 지지하는 일이 가능했을까요?
“가능했을 거예요. 왜냐면 내 사람이니까. 내 사람이면 무엇을 하든 안아줄 수 있겠더라고요, 물론 화나고 소리도 치겠지만. 결혼한 지 2년 됐는데 그렇게 되더라고요. 사실 처음에는 제가 형제가 없어서 형제애를 잘 몰랐어요. 그래서 어떻게 표현해야 하고, 어떤 게 서로를 위하는 건지 참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작품을 하다 보니, 반 고흐 형제로 살다 보니 형제애를 알게 되고,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에요. 테오를 만난 뒤에 결혼을 하니까 결혼생활이 이해됐는데, 결혼을 하고 테오를 다시 만나니까 또 테오가 이해되더라고요(웃음).”
<빈센트 반 고흐>에는 초연 때부터 참여하고 있는데, 빈센트를 해보고 싶지는 않나요?
“처음에는 빈센트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도 테오를 하고 싶었어요. 조력자를 하고 싶었거든요. 작품을 보면 빈센트는 거의 성스루(sung-through)인데, 테오는 아니에요. 연기적으로 채워야만 해서 테오가 빈센트를 지지하듯이 무대 위에서도 상대 배우를 지원하고 싶었어요.”
세 배우의 빈센트는 많이 다른가요?
“그렇죠. (김)보강이는 워낙 친하고, 지금 <액션스타 이성용>에서도 상대역을 하고 있어서 정말 편하죠. 뭘 해도 서로 받아줄 수 있는. <빈센트 반 고흐>는 초연 때부터 같이 해서 작품에 대한 얘기도 많이 했고, 바라보는 점도 같아요. 배우로서도, 무대에서 형제로서도. 보강이가 우직한 빈센트라면 (조)형균이는 사춘기 빈센트 같아요. 어디로 튈지 몰라서 그 친구의 에너지를 따라가다 보면 조마조마하고, 정말 제가 돌봐줘야 하는 어른이 되는 느낌이죠. 센스가 좋고, 집중도도 좋아서 저도 모르게 흡수가 돼요. (김)경수 형은 20대 초중반의 빈센트라고 할까요? 테오와는 대립되는 경향이 있어서 많이 부딪히죠. 형이 무대에서 그걸 표현하니까 저도 받게 되고요.”
1월 초 공연 일정을 보니까 김보강 씨와는 <액션스타 이성용>에서 함께 무대에 오른 이틀 뒤 <빈센트 반 고흐> 초연 무대에 서던데요. 헷갈리거나 어떤 장면에서는 기시감 같은 게 느껴지지 않을까요(웃음)?
“아마 관객들은 아시겠죠. 아무래도 저희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다고 해도 김보강과 박유덕이기 때문에, 그리고 습관적인 게 있어서. 오히려 저희는 그런 부분을 더 살려보자, 캐릭터 안에서 용납이 된다면 콜라보를 해보자고 말해요(웃음).”
공연장에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연말이니까 한 해를 돌아보게 되잖아요. 고등학교 때 집까지 나가며 걸어온 배우의 길, 마음에 드나요?
“그럼요. 힘든 부분도 있지만, 제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계속 하고 싶으니까요. ‘항상 웃자, 긍정적으로 살자’고 생각하는데, 특히 올해는 많이 웃었던 같아요. 좋은 작품도 많이 만나고, 좋은 동료들도 많이 만나고. 그래서 다른 해보다 더 많이 웃었고, 그걸 관객들께도 많이 전달한 것 같아요. 2015년 할 몫은 다 했다(웃음)!”
새해 소망은요?
“2016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어요. 예전에는 ‘더 행복해져서 웃고 싶다, 돈 많이 벌어서 웃고 싶다’ 그런 생각이 있었는데, 소소하게 이루고 싶은 것들은 다 이룬 것 같아서 이제 웃는 일밖에 없지 않나. 그래서 작품도 좀 쉬엄쉬엄하면서 그냥 생각 없이 웃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기쁨, 소소한 즐거움, 사랑, 우정. 박유덕 씨는 올 한 해 이런 단어들을 잘 실현하며 살아온 듯 무척 밝은 모습입니다. 잘 걸어온 2015년이기에 2016년에 대한 기대나 부담도 정돈된 모습이고요. 새해와 함께 문을 여는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장소를 옮겨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됩니다. 공연장이 커지는 만큼 배우들에게는 노래를 더 시원하게 부를 수 있어 좋고, 관객들에게는 배우들의 노래와 빈센트 반 고흐의 명화를 더 크게 감상할 수 있어 좋지 않을까 싶네요. 무엇보다 박유덕 씨를 포함해 지금 다른 무대에서 신나게 달리고 있는 밝은 기운의 배우들이 다시 장난기 쏙 뺀 모습으로 그간의 경험과 느낌을 그러모아 한껏 성숙해진 빈센트와 테오로 선보일 반 고흐 형제의 우애가 기대됩니다. 물론 그들의 노래와 그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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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