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윤하정의 공연 세상
긴장감 넘치는 드라마, 연극 <맨 끝줄 소년>
다음 편을 기다리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 작품에서는 뒤쪽에 앉아야만 볼 수 있는 명장면이 있네. 그런데 사실 공연장에서도 맨 끝줄에서 색다른 재미를 느낄 때가 많아. 앞줄이 무대와 배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좋지만, 맨 끝줄에 앉으면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 그 관객을 바라보는 배우들, 그리고 무대를 만들어가는 스태프의 움직임까지 볼 수 있거든.
며칠 전 고등학교 교사인 친구와 연락하다 꽤 특이한 연극을 봤다는 얘기를 들었다. 바로 예술의 전당이 참신한 국내외 신작을 선보이는 ‘SAC CUBE’ 일환으로 공연 중인 <맨 끝줄 소년>.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희곡을 연출가 김동현의 해석으로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학생들의 형편없는 작문 과제에 넌더리가 난 문학교사 헤르만은 수업 시간 언제나 맨 끝줄에 앉는 클라우디오의 과제에서 신선한 자극을 받는다. 같은 반 친구 라파의 가족에 대해 은밀한 관찰과 욕망이 담긴 소년의 글에는 헤르만은 물론 두 사람의 태도를 비난하는 헤르만의 아내 후아나도, 그리고 관객들도 다음 편을 기다리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렇게 시작된 헤르만과 클라우디오의 글쓰기 수업은 점점 어긋난 길로 빠져들고, 숨 가쁘게 극을 쫒아온 관객들도 복잡 미묘한 감정에 공연장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기자는 우연히도 이 작품을 아동 심리치료사와 함께 관람했는데, 그 친구와의 대화를 토대로 <맨 끝줄 소년>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을 관객들의 마음을 대변해 보기로 한다.
A블록 7열 7번 : 어우, 공포영화도 아닌데 좀 오싹하다.
A블록 7열 8번 : 그러게, 원래 사람이 제일 무서운 거야.
A블록 7열 7번 : 그 무서운 사람이 겨우 17살 소년이라는 게 더 섬뜩해. 클라우디오가 극중에서는 가장 어린데, 결국 모두의 머리 꼭대기에 있었던 거 아냐.
A블록 7열 8번 : 공원에 앉아 모두를 관찰하고 있었지. 다른 사람의 삶을 관찰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 삶에 은근슬쩍 개입해서 바꿔 놓으려 하고.
A블록 7열 7번 : 그러기에 맨 끝줄은 최적의 위치지. 헤르만이 말하잖아. ‘아무도 거기를 못 보는데 거기서는 모두를 보지!’ 다른 사람들 모르게 모두를 관찰할 수 있는 자리 말이야. 그런데 결손가정에서 자라서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 주요 관찰 대상인가? 라파의 집이 아니면 글을 쓸 수 없다고 하잖아. 그러면서도 클라우디오는 중산층 가정의 화목함이나 취향을 비웃는데, 속으로는 탐내는 게 아닌가 싶어. 무서운 건 클라우디오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식으로든 그 가정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고.
A블록 7열 8번 : 들어가지만 또 파괴하고 싶어 하지. 자기는 갖지 못했으니까. 다른 사람과 건강하게 관계 맺는 방법을 모르는 거야.
A블록 7열 7번 : 확실히 아동 심리치료사라 바라보는 게 다르구나? 재미있는 게 교사인 친구는 헤르만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 클라우디오의 암묵적인 협박에 시험지를 유출하는 건 특히 납득할 수 없대. 자기가 헤르만이라면 글쓰기를 중단하게 하고 상담교사에게 말했을 거래. 교사로서의 윤리 문제겠지?
A블록 7열 8번 : 헤르만도 갈등은 하잖아. 하지만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었던 자신의 좌절된 꿈을 클라우디오를 통해 실현하고 싶은 욕망이 더 컸겠지.
A블록 7열 7번 : 원작자인 후안 마요르가도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대. 그때 한 학생이 시험지 답안에 ‘선생님 저는 공부를 안 해서 문제를 못 풀어요. 하지만 테니스를 잘 쳐서 대회에도 나갔어요. 언젠가 챔피언이 될 거예요.’ 라고 썼다는군. 학생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도구로 시험지를 이용했다는 게 흥미로워서 관련된 작품을 쓰게 됐다는 거야.
A블록 7열 8번 : 네가 헤르만이었다면 어땠을 것 같아? 너도 글을 쓰는 사람이잖아?
A블록 7열 7번 : 어려운 질문이네. 헤르만이 이해는 돼. 멋진 글을 쓰고 싶었던 사람이 맞춤법이나 문장기호도 제대로 모르는 학생들 사이에서 얼마나 무료하겠어. 아니, 비참했을 거야. 그런데 한 소년이 위험하지만 매력적인 글을 쓰고 있다... 학생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 재능을 키워낸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았을까? 겉으로는 말리지만, 계속 써오기를 바라겠지. 헤르만도 클라우디오를 비난하면서 동시에 글을 이어가도록 끊임없이 새로운 동기부여를 하잖아. 책 모서리 접히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이 자신의 책까지 선뜻 빌려주면서 말이야.
A블록 7열 8번 :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비난은 자기를 대신해 아내 후아나가 하도록 설정했지. 사실 아내를 그다지 신뢰하지도 않으면서 말이야. 또 ‘그럼에도’ 글을 쓰는 것은 클라우디오가 하도록 방관하고 있어. 그런 차원에서 헤르만은 비겁한 사람이 아닐까?
A블록 7열 7번 : 후아나도 비난은 하지만 클라우디오의 글을 기다리고 있잖아? 나는 두 사람의 직업도 기막힌 설정이라고 생각해. 대단한 글을 쓰고 싶었으나 학생들의 보잘 것 없는 문장을 봐야하는 문학교사 헤르만과 현대미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을 비웃지만 결국 그 평범한 대중에게 작품을 팔아야 하는 후아나. 부부의 대화를 들어보면 서로의 지적 허영심을 과시하며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이해받고 싶어 하잖아? 그게 클라우디오가 말한 중산층의 위선 아닐까? 그래서 클라우디오가 접근할 수 있는 틈을 줬고. 네가 헤르만이라면, 아니 너에게 클라우디오가 상담을 받으러 온다면 어떻게 할 거야?
A블록 7열 8번 : 클라우디오가 자신의 얘기를 쓰도록 해야지. 클라우디오가 라파에게 수학을 가르치면서 ‘허수’를 자주 언급하잖아.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수, 그 숫자로 뭐든 할 수 있다고. 사실 등장인물들 모두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기만 하지. 클라우디오 역시 다른 사람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관찰하고 다른 사람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도록 도와줘야지.
A블록 7열 7번 : 나도 중산층의 위선을 가진, 지금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네. 그래서 클라우디오의 존재가 더 섬뜩하게 느껴졌나? 그나저나 제한된 무대 안에서 별다른 장치 없이 시간과 공간을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모습이 멋지다. 헤르만과 후아나의 대화가 바로 헤르만과 클라우디오의 수업으로 연결되고, 클라우디오의 글에서 라파의 집이 바로 펼쳐지고. 약속된 거짓, 또는 상상. 이게 연극의 매력인 것 같아.
A블록 7열 8번 :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좌석이 거의 끝인데 오히려 좋다?
A블록 7열 7번 : 그러게, 특히 이 작품에서는 뒤쪽에 앉아야만 볼 수 있는 명장면이 있네. 그런데 사실 공연장에서도 맨 끝줄에서 색다른 재미를 느낄 때가 많아. 앞줄이 무대와 배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좋지만, 맨 끝줄에 앉으면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 그 관객을 바라보는 배우들, 그리고 무대를 만들어가는 스태프의 움직임까지 볼 수 있거든. 공연 전체를 보고 싶어 하는 이 마음도 일종의 관음인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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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