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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했다!

창작과 임신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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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글을 쓰고 나면 그 외의 모든 ‘나머지’ ‘기타’적인 시간들이 부질없게 느껴지는 것이다. 골 지점에 도착해서도 아직 흥분이 체 가시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산후조증’일까?

예전에 한 칼럼에서, 책을 쓰는 일련의 과정 중 내가 가장 즐거울 때는 첫째, 얼개를 잡고 초고를 내키는 대로 써나갈 때, 둘째는 교정지 상태로 처음 원고를 볼 때, 마지막으로는 책 제목을 고민할 때다, 라고 쓴 적이 있었는데 나는 지금 후자 두 개의 즐거움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얼마 전, 초고를 쓴 지 9개월만에 새 소설을 탈고, 즉 끝냈기 때문이다. 형언하기 힘든 그 속 시원하면서도 허탈한 체감은 아기를 낳았을 때의 그것과 어찌나 흡사한지. 그러고 보니 9개월이라는 시간도 한 아이를 임신해서 낳기까지의 기간이다. 

 

수 차례 보고 또 보며 수정을 거듭해온 소설 원고를 마감날짜에 맞추어 드디어 담당편집자에게 이메일로 보내니 그녀는 ‘정말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젠 한시름 놓으세요’라고 답신을 보내왔다. 마치 ‘아이 낳느라 정말 수고했다, 이젠 몸조리에만 신경 써라’는 말을 들은 것만 같았다. 사실 소설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교정지로 받아서 마무리 수정을 하기까지의 한달 남짓한 시간은, 마치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이직하면서 가지는 틈새 휴가처럼, 인생에서 주어지는 가장 달콤한 ‘방학’ 중 하나다. 어떻게든 글은 쓰여졌고, 중간에 여러 불안한 과정도 거쳤지만 이젠 무사히 하나의 완성품으로 만들어질 날을 기다릴 수 있다. 해냈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아직은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져 독자들의 손으로 넘어간 상태가 아니기에 아직까지는 나(와 편집자)만이 애틋하게 보듬을 수도 있다. 어쨌든 과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중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반짝 주어지는 선물 같은 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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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간 함께 고생해준 나의 친애하는 노트북, 맥북에어 

 

힘들게 수정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마감하고 나면’ 하고 싶은 것들, 해야 할 것들이 참 많았다. 여유가 없어서 보지 못했던 영화나 전시를 보러 가거나, 쌓아놓고 읽지 못한 책을 읽거나, 챙기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거나 혹은 아무 생각 없이 격렬하게 쉬고 싶다고 갈망해왔다. 그런데 실제로 마감하고 나면? 그 강렬했던 욕구들은 어느새   시들시들해져 있다. 김연수의 산문 『소설가의 일』에서 ‘소설가는 소설 쓰는 일 외에 애시당초 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시간관리를 한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같은 선상에서 막상 글을 쓰고 나면 그 외의 모든 ‘나머지’ ‘기타’적인 시간들이 부질없게 느껴지는 것이다. 골 지점에 도착해서도 아직 흥분이 체 가시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산후조증’일까?

 

그래서 지금의 나는 마라톤 완주 후에도 호흡을 고르기 위해 또박또박 걷듯이, 아직도 마음 놓고 놀지 못하고 매일 아침이면 카페에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나가, 이것저것 끄적거리고 있다. 그것은 다음에 쓸 산문일 수도 있고 곧 만들어질 소설의 책 제목 후보 안이나 홍보카피이기도 하다.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글 쓸 때는 그리도 외로워하면서도 어느덧 그 외로움에 익숙해져 심지어 고독을 즐기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러면서 한창 소설 원고를 수정하던 시기를 아스라히 그리워하게 된다. 반면 그 안에서 힘들었던 부분 ? 초고수정을 하며 자학했을 때, 연이어 수정하면서 체할 때, 편집자들의 뼈아픈 중간리뷰를 받을 때 ? 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언제 원고지 600매를 채웠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마치 아이를 낳고 나면 임산부였던 시절을 추억하면서도 그 중 고생한 부분은 선택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아 또 다시 임신할 수 있는 것처럼. 

 

올 초, 지난 번의 책을 출간하자마자 이번 소설의 작업에 바로 들어간 나를 보며 친구인 가수 요조는 ‘예술가는 느긋하게 좀 놀 줄 알아야 한다’고 가장 적절한 조언을 해주었다. 하지만 예술가적인 성향도 별로 없거니와 타고나길 급하고 느긋하지 못한 성격을 결국 여태 어떻게 하지도 못했다. 이러면서 다시 원고작업에 들어가면 또 마감일만 목 빼고 기다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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