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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책이 없다

글쓰기의 결정적인 동기부여는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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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엉망진창이어도 일과가 끝나고 몰두할 수 있는 책이 있다면 견디기가 한창 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책과 만나게 되는 기회가 점점 줄어가는 것만 같다.

책을 쓰지 않을 때는 책을 읽는다. 글을 업으로 삼는 사람의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책을 쓰는 일이나 읽는 일이다. 얼마 전, <채널예스>에서 펴낸 잡지를 보다가 뒷쪽에 빼곡히 실린 신간들 일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백여 개의 새 책들은 엄선돼서 실린 것일 테니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책들이 수시로 출간되고 있다는 것일까.
 
한데 그런 풍요 속에서 요새 종종 '읽을 게 없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 중 하나는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가 엉망진창이어도 일과가 끝나고 몰두할 수 있는 책이 있다면 견디기가 한창 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책과 만나게 되는 기회가 점점 줄어가는 것만 같다.
 
물론 나의 좁고 까탈스러운 취향도 한 몫 한다. 영화만 해도 너무 폭력적이거나 너무 어둡거나 너무 옛날 배경이거나 너무 공상과학적이면 잘 보게 되질 않는다. 너무 '날림식' 미국식 유머를 구사하거나 깡패와 형사가 한 세트로 나와서 총을 쏘고 쫓고 쫓기는 류의 영화도 잘 안 보게 된다. 상황이 이러니 종이책엔 어떠하리. 영미권 작가들의 작품은 문화적 이질감이 느껴지고 너무 두껍고 길면, 일본 작가들의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식물적이고 때로는 비릿하면,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비장하고 쓸데없이 문체가 어려우면 책을 도중에 덮게 된다. '읽는' 일은 능동적인 의지와 기력이 소요되는 행위이기 때문에 첫 스무 여장 읽고 겉돌면 더 이상 진도가 나가기 어렵다. 억지로 꾸역꾸역 읽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독서조차 정직하게 못한다면 삶이 너무 팍팍하지 않은가.  
 
제일 바람직한 것은 '합'이 잘 맞는 작가가 한 사람 정해지면 그 작가의 전작을 모두 읽는 것일 게다. 근래에는 줌파 라히리가 그랬지만 불행히도 전작이 네 권 뿐이었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뒤늦게 『빅 퀘스천』을 읽고 작가에 대한 인간적 흥미를 가지게 되어 지금 『스테이트 오브 유니언』에 이어 『빅 픽쳐』를 읽고 있다. 좋아하는 작가를 발견했는데 그가 책을 몇 권 안 냈다면 아쉽고 서운하다. 가령 『서재 결혼시키기』의 앤 패디먼이나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의 노라 애프런 같은 저자들이 그랬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읽는 속도가 쓰는 속도를 겨우 따라가는 다작 저자들은 그런 의미에서 독자에게 매우 친절하다.
 
전작이 끊기면 좋아하는 작가가 자기 책에서 거론한 다른 작가의 작품을 메모해놨다가 챙겨보기도 한다. 시도해보면 절반 정도는 취향이 엇갈린다. 나와 취향이 잘 맞는 친구나 지인이 추천하는 책을 눈여겨볼 수도 있다. 이 역시도 내 마음에 들 확률은 많아야 절반 확률이다. 세상의 많은 것들에 비해 책의 취향은 훨씬 더 세밀하고 복잡하다. 불현듯 이 '재미없음'의 상태는 그저 내가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가서 감흥 자체가 줄어, 객관적으로 재미는 있는데 내가 그 재미를 못 알아보고 있는가 싶다. 이런! 안 돼! 그럴 순 없어! 글쓰기의 결정적인 동기부여는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에서 나온다. '아 나도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써야지'가 모든 것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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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때의 제주도. 보기엔 좋지만 쪄죽는다.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의 여자 아이를 만나는 일처럼, 찌는 여름의 무더위를 잊게 해줄 책을 만나고 싶다. 일주일간 렌트카로 제주도 횡단휴가를 보낸 자로서 장담한다. 휴가는 눈부신 땡볕과 해변, 이 아니라 에어콘 빵빵한 곳에서 연인같은 책 한 권과 보내는 서늘한 시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을 남한테 수동적으로 추천받는 게 아니라 역시 내 발품을 들여 직접 찾아나설 수밖에 없다.  
  
 

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저/정영목 역 | 지호 | 원제 : Ex Libris

결혼 5년차인 책벌레 부부가 양말까지 공유하면서도 책만은 서로 공유하지 않으려 버티다가 드디어 책들을 합방시키는 날의 그 진지하기 그지없는 에피소드들. 혹은 책 속의 단어들이 마치 살아있는 벌레처럼 보이는 느낌을 공유할 수 있었던 가족들간의 사랑스런 대화에 관한 추억들을 모았다. 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뒤에는 '벌레'라는 말이 붙는것인지 예전부터도 참 억울했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어머! 너도 그랬구나!"하는 반가움과 "아니, 나보다 더하잖아!"하는 감탄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

노라 에프런 저/김용언 역 | 반비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이자 작가, 연출가인 노라 에프런이 독특한 유머 감각과 노골적이리만큼 솔직한 태도, 세련된 감성으로 무장한 에세이. 신문사에서 여성은 기자가 아닌 우편담당 아가씨로만 고용되던 시절부터, 두 번의 이혼 경력보다 나이가 더욱 중요하게 자신을 규정하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인생 전체를 반추하면서 그 속에서 얻은 통찰들을 명료하고도 유머러스하게 풀어놓는다.

 

 

 

 

 

 

[관련 기사]

- 임경선 “사랑은 관대하게 일은 성실하게” 〈Across the uni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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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벌이의 덫
- 나는 부족한 엄마다. 그러나 딸에게는 완벽한 연인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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