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좋은 편집자란

내 글을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사람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인간적으로 좋아해야 저자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지고 그래야 일에 발을, 아니 마음을 제대로 담굴 수 있지 않겠는가. 저자들이란 족속은 겉으로는 센 척해도 대개 인정욕구 과잉에 자기 재능에 대해선 늘 불안한 법이다.

열한 권의 책을 펴냈으니 적지 않은 숫자의 출판사 편집자와 함께 일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오늘은 그 얘기를 조금.
 
맨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 간혹 편집자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 말을 안 듣거나, 일부러 청개구리처럼 굴거나, 그의 자질을 무시하는 저자를 보는데 그것은 틀려먹었다. 편집자는 저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친구이자 파트너이며, 편집자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저자를 도울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도울 수 있도록 저자인 당신이 먼저 도와야 한다. 고집불통을 버리고 편집자의 말을 들어라. LISTEN TO THEM.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좋은’ 편집자, 를 전제로 하는 말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저자가 있듯 다양한 스타일의 편집자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편집자’는 별다른 게 아니다. ‘내 글을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어지는’ 편집자다. 나의 온갖 정념과 치부와 민망함이 다 들어간 날것의 글을 맨 먼저 쪼르르 어린아이처럼 달려가서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평가하는’ 편집자보다 ‘질문하는’ 편집자를 좋아한다.
 
“왜 이 부분을 이런 형식으로 쓰셨어요?”
“이 인물은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이건 대체 뭐죠?”
 
하나하나 빨간펜 선생처럼 옳고 그름을 자의적으로 완결시켜 정리해버리기보다 원고에 대한 중립적인 어조의 질문들로 내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절로 알 수 있게 한다. 저 속 깊이 든 생각을 저자가 직접 끄집어내도록 하고, 알아서 수정할 수 있게 유도할 줄 아는 자가 실로 유능한 편집자다.
 
그렇다면 내게 있어서 ‘좋지 않은’ 편집자란? 딱 두 경우만 말하겠다. 하나는 저자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 편집자이다. 사람은 개인적 취향이라는 게 있기에 저자를 내심 싫어하거나 안 맞을 수는 있다. 편집자와 저자, 두 인간종만을 놓고 본다면 솔직히 성격 이상하고 나쁜 걸로 치자면 저자 쪽이 월등할 것이다. 그럼에도 부탁드린다. 최소한이라도 좋아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하는 노력 정도는 해주세요, 라고. 인간적으로 좋아해야 저자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지고 그래야 일에 발을, 아니 마음을 제대로 담글 수 있지 않겠는가. 저자들이란 족속은 겉으로는 센 척해도 대개 인정욕구 과잉에 자기 재능에 대해선 늘 불안한 법이다. 그럴 때 ‘아 나를 정말 좋아해주는구나, 나를 위해서 저렇게 말해주는구나’라는 확신이 들어야 불끈, 열심히 해야지 하지, 겉으로 ‘선생님’이고 속으로는 진심으로 존중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지면 그것은 진정 고통이다. 다음으로는 편집자가 작가지망생인 경우. 이 역시도 한 개인이 무엇을 지향하든 자유지만, 예민한 저자의 입장에서는 ‘사실 나는 너보다 글을 더 잘 쓸 수 있어’라는 냉소나 ‘내가 지금 남의 글을 봐줘야 할 때가 아닌데’ 라는 절박감이 감지되면 곤란하다. 아닌 게 아니라 편집되면서 글은 어느새 편집자의 문체로 뒤바뀌어 있다.
 
현재 나는 스타일이 확연히 다른 두 명의 여성편집자와 오랜 기간에 걸쳐 호흡을 맞추며 일하고 있다. 한 명은 ‘채찍’형, 한 명은 ‘당근’형이다. 정말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러나 딱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만약 그들이 다른 회사로 이직한다면 나는 언제라도 그 작업을 도중에 그만둘 것이다. 쓸데없이 비장하다고? 무슨 말씀. 이것은 출판계약서에 내가 추가조항으로 덧붙인 사안이다. 그만큼 내게 편집자는 중요하고 소중하다.

 

임경선의성실한작가생활.jpg

저와 빨간 실로 묶인 유능한 두 미녀 편집자들.
누가 ‘채찍’ 형이고 누가 ‘당근’ 형일까요?

 

 

[관련 기사]

- 임경선 “사랑은 관대하게 일은 성실하게” 〈Across the universe〉
- 완전한 개인의 탄생을 환영하며 : 임경선 ‘나라는 여자’
- 결혼을 시아버지랑 하는 현대 여성들
- 여자의 인생은 엄마의 인생만 있는 게 아니에요
- 사인본에 대하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3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임경선 (소설가)

『태도에 관하여』,『나의 남자』 저자

오늘의 책

트럼프의 귀환, 위기인가? 기회인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거머쥔 트럼프.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 트럼프 2기 정부의 명암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훈 저자의 신간이다. 강경한 슈퍼 트럼프의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그 전략을 제시한다.

이래도 안 읽으실 건가요

텍스트 힙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독서가 우리 삶에 필요해서다. 일본 뇌과학계 권위자가 뇌과학으로 입증하는 독서 예찬론. 책을 읽으면 뇌가 깨어난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이해력이 상승하며 즐겁기까지 하다. 책의 장르는 상관 없다. 어떤 책이든 일단 읽으면 삶이 윤택해진다.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소설

출간 즉시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관련 영상을 제작하려 하면 재앙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이 함께 떠난 크루즈 여행 중 숨겨진 진실과 사라진 작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밝혀진다.

우리 아이 영어 공부, 이렇게만 하세요!

영어교육 전문가이자 유튜브 <교집합 스튜디오> 멘토 권태형 소장의 첫 영어 자녀 교육서. 다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초등 영어 교육의 현실과 아이들의 다양한 학습 성향에 맞는 영어 학습법을 제시한다. 학부모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실천 방안을 담았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