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불후의 칼럼 > 하지현의 마음을 읽는 서가
정신분석이 사회로 눈을 돌린 이유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개인과 사회의 관계, 요즘 급증하는 사이코패스급의 자기애적 인격의 출몰에 궁금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책을 펼쳐 들어 시간을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하고 싶다.
자고로 정신분석이란 세상에는 별 관심이 없는 학문이자 치료법이다. 의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위암에 걸린 사람이 부자이건 빈자이건, 공산주의자건 자본가이건, 살인범이건 성직자이건 상관없이 차별 없이 치료를 하는 것이 원칙이고, 치료방침도 다르지 않다. 정신분석이나 다른 상담기법들도 마찬가지다. 환자의 인생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사회문화적 배경에 대한 정보는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환자의 치료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한국과 미국의 환자를 정신분석을 하는 원칙이 결국은 같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신분석은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서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 그 자체에 더 깊이 파고들어갔다. 정신분석학이란 학문의 발전은 초기의 프로이트의 정동-트라우마 이론에서 자아심리학으로 발전하고, 이어 클라인을 포함한 대상관계 이론, 코훗의 자기심리학을 지나 1970년대이후 상호주관성 이론으로까지 발전했지만 여기에 사회적 변화는 반영된 바가 없었다.
이런 흐름이 미흡하다고 점차 정신분석가들은 생각하기 시작했다. 수십 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환자들이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남자 네 명이 중년 남성 한 명을 테이프로 나무판에 싸맨 후 얼굴에 낙서를 하고, 다른 남성은 자기 성기를 그의 얼굴에 들이대는 치욕스러운 장면을 카메라로 담았다. 이 사건은 범죄자 집단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유럽의 한 마을의 회사의 노조 대표가 다른 직원을 괴롭히는 장면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평범한 시민이자, 직장인, 그것도 노동조합의 대표가 저런 가학적인 장면을 집단으로 저지르고 그걸 또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것일까.
거시적인 사회의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 정신분석가가 있었다. 벨기에 헨트 대학의 파울 페르하에허다. 그는 일찍이 정신분석가이면서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져서 2000년부터는 신경과학과 정신분석학을 연결하는 연구를 하기도 했다. 그가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서구사회에 만연하기 시작한 새로운 인격유형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해낸 책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를 썼다.
위의 사례는 그가 책의 서문에 소개한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에 한 교수가 자기 제자에게 오랜 기간 구타를 하고, 모욕을 하고, 급기야 인분을 먹이는 만행을 저지르다 구속되어 징역형을 선고 받은 사건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인간이 인간에게 할 것이라 상상하기 힘든 행위를 몇 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저질렀을까. 더욱이 그에 동조한 다른 대학원생들은 죄의식 없이 그 행동에 동참을 해왔다가 함께 처벌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었다. 동료의식이나 최소한의 연민, 미안함, 그래서는 안되겠다는 양심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영역에서는 착한 아들, 온순한 학생이자 애인으로 살아온 사람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페르하에허는 모든 것을 개인을 중심으로 보는 심리학,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과감히 벗어나서 거시적인 사회의 변화를 주목해봐야만 이 의문을 풀 실마리가 보인다고 주장한다. 그는 ‘내가 누구인가’를 규정하는 정체성 형성과정에 큰 변화가 발생했는데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있지 않고, 정체성의 거울로 이용되는 외부세계의 변화로 인한 것이라 보았다. 정체성은 외부 세계가 우리의 몸에 새겨 넣은 관념의 집합이고 세계의 변화로 인해 우리의 정체성은 변할 수 있다.
현대사회를 주도적 사고체계인 신자유주의는 길게 돌이켜보면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기독교 철학에서 비롯했다. 기독교 철학은 신아래 존재하는 인간의 부족함과 죄의식을 기본바탕으로 하여 이를 벗어나 구원을 얻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경외하는 신을 믿으며 거기에 추호의 의문을 가져서도 안 된다. 또 성실하고 근면하게 노동을 하며 금욕을 실천해야 한다. 이는 능력주의로 발전해서 실패와 가난은 그 사람의 존재론적 못남을 뜻하고, 인성이 유약하다고 보는 방향이 된다. 그들은 자신의 상황을 바꾸기에는 너무 게으르고 우매한 개체인 것이다. 이에 반해 충분한 노력을 통한 성공과 부의 축적은 모든 것이 결국 그의 노력의 결과물이므로 이 철학에 기반하면 인성도 훌륭한 사람이라 판단하게 된다. 어느새 재정적 권력이 도덕적 권력과 등가가 되며 사회의 지배 역시 은행가나 기업체의 지배자가 도맡는다. 실패를 게으름의 결과이며 그 책임도 개인에게 있다고 본다. 그게 아니라면 그 개인은 능력이 원래 모자라게 태어난 존재일 뿐이라고 보는 사회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로 인해 세상은 나쁜 방향으로 더 나아가게 되었다. 탐욕과 비도덕적 행동이 조장되고 돈을 버는 것으로 인간의 능력을 단순하게 평가하는 사회가 되었다. 이를 저자는 ‘엔론사회’라고 말하면서 이런 흐름이 기업뿐 아니라 대학, 병원과 같은 공간까지도 모두 침투하여 지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대학도 돈을 벌기 위한 기술을 습득하는 곳으로 한정되고, 기업에 복속되며, 연구비에 교수들은 종속된다. 병원도 환자를 돈으로 환산해서 보며 고전적 의사-환자 관계는 점차 소멸되는데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 저항하지 못한다. 의사나 환자 모두 이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에 흠뻑 빠져있으면서 그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의 결과로 자해와 섭식장애, 우울증, 인격장애가 급증하였고 원인을 찾기보다 현상을 찾아내서 그 현상을 신자유주의가 정해놓은 규범 안으로 다시 우겨 넣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정신과에서 하는 치료가 되어버렸다고 비판한다. 덕분에 병원과 심리치료기관에는 환자가 범람을 하게 되며 심리적 장애가 일종의 유행이 되어버렸다.
다시 윤리의 관점으로 돌아가자
저자는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큰 변화의 흐름의 결과가 우리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고, 이것이 한쪽 일부에서는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심하게 공격적이거나, 타인에 대한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오직 자기 중심적으로 돈과 권력, 성공에 대한 집착만 있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들이 사회에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는 상황이 되는 원인을 거시적으로 잘 규명해냈다. 일단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다시 윤리의 관점으로 돌아가자 제시하고, 인간의 조건을 끌어안는 그리스 철학부터 시작한 전통적 방법, 이기심과 구분하는 자기배려에 대한 비중, 일하는 사람의 권한을 지배자의 권력과 구분하고 인정하기, 결핍을 의미로 바꾸기 위한 창의적 노력에 대한 집중이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시스템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본성을 회복할 최선의 길이라고 역설했다.
현대사회의 여러 병리적 현상을 경쟁에서 견뎌내지 못하는 약한 개체의 문제이며, 결국 문제의 해결도 개인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보는 관점에 대해서 저자는 철저히 반대한다. 그리스철학과 기독교철학의 경쟁의 구도란 2천년에 걸친 역사적 통찰을 기반으로 뇌과학, 정신분석, 사회학, 윤리학, 철학까지 종횡무진으로 엮어서 조목조목 논증해냈다. 그렇기에 저자의 지적 서사는 한 번에 읽어 내려가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개인과 사회의 관계, 요즘 급증하는 사이코패스급의 자기애적 인격의 출몰에 궁금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책을 펼쳐 들어 시간을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하고 싶다.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파울 페르하에허 저/장혜경 역 | 반비
왕따에서 묻지마 살인, 총기난사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전의 공격성과는 질적으로 다른 심리적 증상들이 늘어나고 있다.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파울 페르하에허는 그 원인을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우리의 정체성 형성 과정, 인성 발달 과정을 완전히 뒤집어놓은 데서 찾는다. 철학사와 윤리학사, 종교사에서부터 뇌과학, 동물행동학, 정신분석학, 그리고 언론 기사들과 개인적인 체험을 오가며 명쾌하게 입증해낸다. 그리고 이것이 왜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 ‘내 아이의 일’인지 섬뜩하게 납득시킨다. 또 이를 극복할 개인적이고도 공동체적인 대안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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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파울 페르하에허> 저/<장혜경> 역15,3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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