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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을 넘어가는 한 가지 길을 알려주마

『아이사와 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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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이란 사춘기는 대단한 한 권의 책,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 넘어설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번도 못해본 새로운 경험, 특히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솔한 감정의 교류를 겪으면서 겉으로는 완벽하고 순수해 보지만 사실은 얇고 깨지기 쉬웠던 자아의 방어막이 녹아내리고, 성장을 멈췄던 자아는 다음 단계로 발달해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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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思春期)란 참 묘한 것이다. 한자의 뜻풀이를 해보면 더욱 그렇다 ‘생각이 봄을 맞이한다’는 말이 참 철학적이기도 하고 멋지다. 겨울을 난 씨앗이 싹을 틔우듯 생각이 봄을 맞이하면서 진짜 생명을 움트기 시작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사춘기가 오면서 비로소 사람이 사람다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일까.

 

사춘기를 본격적으로 맞이하기 시작하는 10대 중반, 우리는 흔히 ‘중2병’이라고 부르는 마음 앓이를 하는 청소년들을 많이 만난다.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고,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여긴다. 제발 가만히 내버려두라고 말하며 알아서 다 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제대로 실천을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화가 나면 막무가내에 덩치도 커져서 감당이 안 된다. 오죽하면 북한이 쳐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한국의 무적 중 2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농담이 있겠는가.

 

부모들은 10대에 접어든 아이의 눈빛이 달라지고, 뭔가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 보이고, 감정이 출렁이며 목소리 톤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겁이 덜컹 난다. 이제 제대로 사춘기를 타기 시작한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부모도 겁이 나는데 정작 당사자인 아이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아이들은 2차 성징으로 호르몬의 변화가 오면서 신체의 급격한 변화에 제일 먼저 놀라고, 뇌가 그 영향을 받아 급속한 성장을 하는 영향을 받으면서 두 번째로 놀란다.

 

단편적이고 단색으로 채색된 세상에서 1 더하기 1은 2라는 명쾌한 수식으로 설명되던 세상이 갑자기 복잡하고, 다양한 복합 색으로 칠해진 것이 느껴지며, 2차 방정식의 수식으로 굴러간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복잡하고 미묘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걸 어떻게 풀어야 할지는 모르겠다는 것이 청소년기의 답답함의 실체다. 이런 마음에 아이들은 좌충우돌하기도 하고, 외로움을 느끼면서 동시에 자기 에고(ego)의 성을 높이 쌓고 그 안에서 머무르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하고, 또 이 과정을 넘어서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하는 고민을, 아이들도 부모들도 한다. 또 이미 어른이 된 다음이라 해도 여전히 그때 어땠어야 했을까 하는 미련과 후회가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궁금함을 포함한 마음에 하나의 길을 제안하는 책이 나왔다. 호시 요리코의 『아이사와 리쿠』다. 호시 요리코는 일본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지방에 거주하는 만화가로 우리나라에서는 ‘오늘의 네코무라씨’라는 고양이가 가정주부를 하는 만화책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연필로 슬슬 그린 것 같은 단순한 화풍으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가는 스타일의 만화를 그리는데, 이번에는 사춘기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사춘기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단 두 권의 만화로 내놓았다. 의외로 문학계의 열렬한 지지와 호평을 들었다는 소개글을 보고 갸우뚱하면서 책을 펼쳤는데, 단숨에 다 읽고 덮은 다음 먹먹한 감정을 느끼면서 왜 일본의 유수의 소설가들이 찬사를 보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오직 만화만 할 수 있는 영역을 분명히 지키면서 좋은 단편소설을 읽은 듯한 삶의 어떤 정수를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사와 리쿠는 부잣집 딸이다. 겉으로는 완벽하다.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이고, 어머니는 전업주부로 요리에 인테리어까지 못 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리쿠는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 대학까지 같은 재단으로 들어가는 사립학교에 다니기에 공부 스트레스도 없고 누구나 인정하는 미녀이기까지 했다. 그런 리쿠가 사실은 외로웠던 것이다.

 

아빠는 회사의 젊은 사원과 연애 중인데 집으로 초대까지 하고, 리쿠는 우연히 둘의 관계를 눈치를 챘다. 엄마는 모든 면이 완벽해야 한다고 여긴다. 친구가 “네 도시락 이상해”라고 지적하자, “우리 엄마 요리 완벽하거든”이라고 하자 친구는 “그러게.. 지나치게 완벽하다는 것이지”라면서 비현실적이고 인공적인 그녀와 엄마의 삶을 지적한다.

 

리쿠는 남들 앞에서만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많은 것을 가장하면서 지냈다. 십 대의 자기애의 높은 벽을 쌓아 올린 후 그 안에서 순수함을 만들어나갔다. 청소년기는 무척 많은 것이 가능할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시기다.

 

뭔가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가능성이 보이지만 막상 거기에 대한 결정을 내릴 만큼 충분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미숙한 데이터 베이스를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런 딜레마가 존재론적 불안을 자아내고, 세계의 불확실성이 무섭게 느껴진다. 이때 10대는 미래를 완벽하게 명료하게 예측하기를 원하고 통제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교훈은 충분히 갖고 있는 듯이 행동하기 일쑤다.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여긴다면 굳이 새롭게 현실에서 경험하면서 부딪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경험은 상상으로 대체되고, 상상은 현실과 맞바꿔진다. 그 안에서 상상은 점점 더 공고한 벽을 쌓는데 현실의 자아는 세상과 담을 쌓고 고립이 되어 순수함을 유지하게 된다.

 

경험을 통해 세상이 흑과 백만 있는 게 아니라 미묘한 그라데이션이 있음을 알아나가야 하는데, 상상의 세계 속에 머물다 보니 순수한 순백의 상태로 완벽은 유지되지만 그건 가공의 판타지 세계일 뿐이다. 어떤 불안도 없는 평온함은 얻을 수 있지만 실제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리쿠의 삶이 그랬다. 그런 인공적 안온함은 부모가 리쿠를 멀리 관서지방의 친척 집으로 보내면서 깨진다. 같이 데려온 새를 친척 할머니는 “전골 재료로 쓰면 되겠네”라는 무시무시한 농담을 할 정도로 정서가 맞지 않는다. 셋 만 살던 정적인 생활에서 대가족의 삶을 경험하고, 관서 지방의 사투리 쓰는 친구들과 잔정이 들면서, 또 리쿠를 무척 따르는 친척 동생의 진짜 사랑을 느끼면서 리쿠는 그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진짜 감정을 느낀다.

 

친척 할아버지가 “감정을 그다지 겉으로 드러내지 않네. 감정을 품고만 있는 괴로움도 크다 아이가”라고 안타까워했지만 결국 어느 순간 그 벽이 허물어진다. 자기애의 방어막이 만든 인공적 순수함의 성벽이 사람들과 나눈 감정의 교류로 인해 녹아내리고 처음으로 진실한 감정을 진짜로 느낀다.

 

중2병이란 사춘기는 대단한 한 권의 책,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 넘어설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번도 못해본 새로운 경험, 특히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솔한 감정의 교류를 겪으면서 겉으로는 완벽하고 순수해 보지만 사실은 얇고 깨지기 쉬웠던 자아의 방어막이 녹아내리고, 성장을 멈췄던 자아는 다음 단계로 발달해나갈 수 있다. 그것이 성장이다. 호시 요리코의 『아이사와 리쿠』는 두 권의 만화책으로 바로 이 부분, 인간 발달단계의 정수 중 하나를 가슴 먹먹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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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사와 리쿠호시 요리코 글,그림/박정임 역 | 이봄
그녀에겐 비범한 특기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수도꼭지를 돌리 듯 자유자재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도쿄를 떠나 강제로 시작된 간사이 생활. 벗어나고 싶지만 이대로 돌아간다면 엄마한테 지는 것이니 참아낼 수밖에 없다. 간사이 지방 특유의 거칠고 스스럼없는 인간관계, 수다스럽고 시끄러운 고모할머니네 가족들, 그리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간사이 사투리에 시달리며 리쿠는 속으로 다짐한다. “나는 절대로 물들지 않아!” 하지만 리쿠에게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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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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