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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합리적이지만 비합리적이다

비합리성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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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와 심리시스템이 움직이는 방식을 조금 더 잘 이해하면 합리성을 가장한 비합리적 판단을 하고 후회하거나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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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감염의 초기에 있었던 사건이다. 한 남성이 메르스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에 열도 조금 나기 시작했다. 찜찜한 마음에 보건소와 병원을 들렸지만 의료진의 완곡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 예정된 출장을 갔다. 홍콩을 경유해서 중국에 도착한 다음 열이 났고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외교문제로 비화할 뻔 한 이 사건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은 둘로 갈렸다. 우선 어떻게 불특정 타인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면서도 출장을 간 것은 몰상식한 행동이라는 평가다. 이에 대한 반론은 한국에서 회사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미 만날 약속까지 다 정해놓은 외국 출장을 “제가 메르스에 걸릴 가능성이 있습니다”란 추측만으로 안간다고 상사에게 보고하고 출장을 취소할 직장인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사람밖에 없다. 만일 안갔으면 회사를 잘렸을 텐데 당연히 갈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 두 가지 의견 모두 합리적인 추론이다. 내부논리로만 보면 상당히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는 판단론적 결정과 달리 내적 논리의 완결성이란 측면의 합리성은 독자적으로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심사숙고 끝에 행동을 했지만 나중에 후회할 결정을 하고, 이건 아니라는 느낌과 정보가 있지만 그것들을 애써 배제한 채 실패로 끝날 일을 지속한다.

 

간단히 여행가서 쓸 카메라를 사기 위해 전자상가를 간다. 판매원과 대화를 나누고,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제품을 보고나면 어느새 처음 예산범위나 용도와 다른 하이엔드급의 카메라에 추가 렌즈까지 결제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한다.


“이건 매우 좋은 조건에서 산 거야. 직접 물건을 보러와서 사기를 잘했어. 앞으로 이걸로 블로그도 만들고, 쇼핑몰도 해야지”


라고 쇼핑을 잘했다고 여긴다. 그러나, 사실 그것이 정말 합리적인 선택이었을까?


인간은 이와같이 매우 합리적이라고 자부하면서 살지만, 사실은 매일매일 대단히 비합리적인 판단과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결국 실패로 끝날 결정을 하지만 그 내부 프로세스만은 합리적이었다고 자위하고, 합리화한다. 이 사이클을 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먼저 그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어떤 종류의 합리적이라고 포장되어있는 비합리성이 있는지 알아야한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고도 합리적인 선택이었지만 환경 변수로 인해 원하는 결과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할 뿐인 사람들을 위해 스튜어드 서덜랜드의 ‘비합리성의 심리학’(교양인)을 권하고 싶다. 영국의 서섹스 대학의 심리학 교수였던 스튜어트 서덜랜드(1928-1998)가 1992년에 발표한 이 책은 비록 나온 지 20여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 핵심적 내용의 가치는 뒤떨어지는 바가 없는 고전의 반열에 오를 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데카르트는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고 또 그래야한다고 했고 이것은 인문주의의 전통이 된다. 그래서 지식인이 아니라하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믿으면서 살아간다. 합리성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합리적 사고로 ‘개인이 지닌 지식수준에서 정확할 확률이 가장 높은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두 번째 합리적 결정은 그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결정을 평가하기에 지식수준과 별개로 목적을 중심으로 합리성을 판단한다.


예를 들어 천문학을 아는 사람이 달에 가까이 가겠다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지만 5살 어린이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그러므로 합리성과 무지를 구분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러므로 판단을 내리기전에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정보 이외에 다른 지식이 있는지 알아보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갖고 있는 믿음을 보조해줄 정보만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결국 비합리적 판단을 하는 일이 더 많다.

 

911 테러 사건이후 미국에서는 국내여행에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났다. 최근 메르스 공포로 놀이공원, 야구장, 쇼핑몰을 방문하는 사람이 줄어든 것도 비슷한 이유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의 ‘가용성’이 제한되어있을 때 실제 학률적 가능성보다는 어떤 사건의 치사율, 극적인 공포자극등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를 가용성 오류라고 한다. 자동차 사고를 목격하고 난 다음에 한동안 실제로 운전자는 속도를 낮춘다. 이와 같이 최근 벌어진 인상적 사건은 인간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한 번 자기 신념을 밝히고 나면 돌이키기 어려워진다. 공개적으로 서약을 하고 나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이를 행동에 옮기는 확률이 올라간다. 하나의 신념을 외부로 공개하고 나면 이후에 그 신념에 반하는 정보를 접하고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신념을 흔들기는 커녕 도리어 그 신념을 강화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자기 신념을 도전받으면 오히려 더 자기가 옳다고 확신하는 부메랑 효과가 있다. 자신의 정치적 지향이 공개적으로 알려진 정치인에게 아무리 그에 반대가 되는 사건과 통계를 제시한다고 해도, 그가 그걸 인정하거나 자신이나 정당의 논리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고집이 세거나, 바보라 그런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런 신념체계로 인해 발생하는 편견의 영향으로 그들은 정말로 여전히 자신들의 생각이 옳고, 반대되는 증거들은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소소한 정보일 뿐이라고 여긴다.

 

이런 신념체계들이 모여서 고정관념을 만든다. 하나의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나면 쉽사리 흔들리지 않고 이 고정관념에 따라 판단을 한다. 이를 좋게 말하면 직관, 나쁘게 말하면 편견이 되는데, 이런 시스템을 만드는 이유는 판단을 할때 매번 똑같은 생각의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고 단번에 판단을 하기 때문에 쉽고, 빠르고, 에너지가 덜 드는 효율성을 얻기 때문이다.  매번 개별적으로 처음부터 생각하고 판단하기보다 고정관념에 근거해서 추정하면 그만큼 편리하다. 그런데 고정관념은 자기충족적이 면이 있기도 한다. 예를 들어 ‘흑인은 게으르다’는 생각이 있다고 치자. 이런 생각이 널리 퍼질수록 흑인은 일자리를 얻기 어려울 것이고, 길거리를 배회하게 되고 빈둥거리는 행동이 많이 목격되며, 또 신속하게 일을 할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으니 더욱더 게으르다라는 고정관념은 사람들 마음안에 굳어지게 되는 악순환이 생긴다. 더욱이 이런 현상을 이론적, 이성적으로 설명하려는 생각은 더욱 그 고정관념을 강화시킬 수 있어 바람직하지 못하다. 예를 들어 흑인이 게으른 이유가 “아버지 없이 자라고, 빈곤의 문화의 영향, 압제와 무력에서 비롯한 아노미 현상‘으로 그럴듯하게 설명이 될 수록 그 고정관념은 단단해질 뿐이다. 저자는 한번 만들어진 고정관념은 쉽게 깨지지 않고 그 때부터는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서 믿음을 강화할 뿐이며 고정관념을 가진 집단이 만들어지면 집단간의 거리만 멀어질 뿐이고 갈등이 강해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집단적 판단이 되면 집단안에서 그 힘은 강해지고 비합리적인 판단은 집단이라는 이름으로 추인을 받는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최근 메르스 사태에서 의학적인 근거가 희박한데도 장기간 휴교를 학부모의 민원으로 결정을 하는 것도 한 예다.

 

한 번 만들어진 가설이나 고정관념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이 뿌리가 깊을 수록 자신의 정체성과 직렬연결되어있어서 그걸 인정하는 것은 자존심이나 위신의 손상과 연관되어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는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더욱 그럴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수많은 심리학 연구결과들을 제시하면서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한 광범위한 증거들을 제시한다. 어찌보면 그만큼 인간이 합리적인 비합리성을 흔드는게 어려운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하게 되었다. 저자는 해결책도 역시 제시한다. 이런 고정관념과 자기 신념에 의한 비합리성의 존재를 인정하되,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열린 태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가장 먼저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둬야한다. 내 신념에 반하는 증거도 가치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내 신념에 반하는 가설도 한 번은 만들어보고 판단의 저울에 내 신념과 함께 올려 달아본다. 새로운 증거가 나온다면 고정관념에 입각해서 그 증거를 왜곡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 판단하려고 노력하면서 나의 데이타베이스에 추가하고, 내 신념을 지지하기 위한 너무 그럴듯한 이론이나 설명에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불완전한 증거에 입각해서 예측을 해야 할 때에는 그중 마음에 드는 근거값보다 증거들의 평균값에 더 가깝게 예측하는 것이 낫다. 평소 직관적이라고 자임하는 사람은 믿지 마라. 판단이 빠를 수 있겠지만 그만큼 쉽게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일 위험도 많다.

 

인간의 뇌와 심리시스템이 움직이는 방식을 조금 더 잘 이해하면 합리성을 가장한 비합리적 판단을 하고 후회하거나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성숙한 인간이 되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 길을 위해서 스튜어트 서덜랜드의 ‘비합리성의 심리학’은 아주 쉽지는 않지만 꽤 정확하고 방대한 교과서적 지식과 노학자의 지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꺼내볼 추천할 만한 가이드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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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합리성의 심리학스튜어트 서덜랜드 저/이세진 역 | 교양인
영국의 대표적인 실험 심리학자이자 저술가인 스튜어트 서덜랜드는 방대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인간은 왜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지, 비합리성이 개인과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무엇인지, 또 비합리적 행동을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을 시종일관 유쾌하고 익살 섞인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데 이 책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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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비합리성의 심리학

<스튜어트 서덜랜드> 저/<이세진> 역18,0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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