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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문재, 불가능한 것과 대치하기, 분노와 체념의 태도

<김도언의 시인의 얼굴> 여덟 번째 시인: 이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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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병들고 타락한 세계, 멸망을 향해 질주하는 이 문명을 시인이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누가 그걸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가능한 것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이윤이나 성취감은 있을지 몰라도. 내가 믿는 올바르고 아름다운 세계, 인간과 우주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세계, 그 불가능의 세계에 대해 발언해야 합니다.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옵니다./그 이유는,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입니다.//하늘은 얼마나 높고/넓고 깊고 맑고 멀고 푸르른가//땅 위에서/ 삶의 안팎에서/나의 기도는 얼마나 짧은가.

- 시 「아직 멀었다」 부분.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수록

 

 

눈부신 자부심과 연민의 시인

 

그와 내가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모종의 수상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그의 모교인 경희대 도서관 앞 숲속 벤치에서 마주 앉았을 때, 나는 곧 우리에게 사소하면서도 흐뭇한 공통점 하나가 있음을 확인했다. 바로 전날 진창으로 술을 퍼마셔 눅진한 숙취를 안고 있었다는 것. 시인 이문재에게 통음의 흔적을 발견하고 사실 나는 속으로 마음이 놓였다. 아직도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은,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새파란 시인으로 살아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아닌가라는 막연하면서도 비논리적인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그의 시에서 이 세계에 대해 그가 갖는 연민이 자신의 몸을 통해 고통을 매개하는 방식으로 드러날 때 가장 환해지는 어떤 풍경을 보았는데, 그와 대면한 자리에서 그것의 민낯을 본 느낌이었달까. 그렇다면 내 확신이 막연하고 비논리적인 것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 눈에 이문재는 우리 시단에서 퍽이나 특별한 좌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그가 시의 현장과 불가근불가원한 거리를 아주 섬세하게 조율하고 지켜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는 한 번도 뜨겁고 격렬한 주목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없지만, 또한 단 한 번도 잊혀지거나 생략된 적 또한 없는 시인이다. 그러니까 그는 언제나 생생한 시적 고유명사로 독자와 동료들 앞에 놓이는 시인인 것이다.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업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34년째에 접어든 올해까지, 결코 다작이라고 볼 수 없는 다섯 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작년에 나온 가장 최근의 시집인 『지금 여기가 맨 앞』은 그 직전 시집 『제국 호텔』과의 공백이 무려 10년에 이른다. 그럼에도 그가 언제나 생생한 시인의 좌표를 잃어버리지 않았던 것은, 그의 작품이 갖는 생명성에 있을 것이다.(그의 옛 시집들은 출판권이 바뀌면서도 빠짐없이 재출간되고 있다.)

 

그는 많은 자리에서 시인은 ‘받아 적는 존재’라는 말을 했다. 들려오는 말이 있을 때 시인은 그것을 받아 적을 뿐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외부로부터 음악과 시어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릴 때 시인은 시를 토해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눈이 가리고 손이 묶인 사람처럼 한 글자도 쓸 수가 없다는 것. 이런 비슷한 얘기를 나는 돌아가신 소설가 최인호 선생으로부터도 들은 적이 있다. 선생 역시 “문학은 받아 적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내가 알기로 파블로 네루다도 비슷한 말을 기록으로 남겼다. “어느 날 시가 내게로 왔다.”

 

이문재와 최인호 선생, 그리고 네루다의 말은 어떤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문학이란, 자기의 의도나 의사와는 무관하게 (창졸간에) 주어지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학의 어떤 성취나 다다름은 내가 그걸 이루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오히려 내 의도에서 문학적 욕망을 배제할 때, 다시 말해 어깨에서 문학적인 포즈나 힘을 뺄 때 다가올 수 있는 것이라는 것. 부를 때는 쳐다보지도 않다가 부르지 않을 때 살금살금 다가오는 고양이처럼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일차적으로 쓰는 ‘문학적’이라는 조건절은 좀 경직되어 있고 어딘지 모르게 제도적인 억압성이 느껴진다. 내 경우만 해도 그러 한데, 나는 나 자신이 문학적인 긴장으로 팽팽해져 있을 때보다 외려 지극히 비문학적인 상황에 놓여 있을 때 문학이 내게 들어오는 것을 자주 느끼곤 한다. 가령 내가 청중의 하나로 문학 강연장에 있을 때보다 술 몇 잔 걸치고 방심한 상태로 아무 생각 없이 지하철 승강장에 내려설 때 예기치 않게 소설의 한 문장이나 시가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문학적’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가 일상에서 끊임없이 ‘비문학적인 상태’를 주문하는 어떤 태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로써 ‘비문학적인 것’이 곧 ‘문학적인 것’이라는 초월적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문학이 예사롭지 않은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인데, 인과나 순리 체계를 간단하게 무시하면서 어떤 진실에 육박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나 (문학적 진실에 가닿는) 비문학적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문학적인 태도란, 좀 어렵게 들릴지 모르지만, 문학적 모험을 수없이 거쳐서 겨우 다다른, 또 다른 차원의 고도화된 문학적 태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갑고 고맙게도 여기, 내 눈의 “맨 앞에” 그러한 문학적 태도를 체화한 듯한 한 시인이 (방심한 자세로) 앉아 있다. 그는 자신의 젖은 구두를 벗어 해에게 보여준 눈부신 자부심과 연민으로 똘똘 뭉친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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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자본과 문명에 화를 내다

 

이문재는 현재 모교인 경희대의 교양학부에 해당하는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대학교육에 대한 첨예한 문제의식과 성찰 아래 도정일 선생 등이 주도적으로 설립한 교육기관으로,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해야 하는 대학생들이 주체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사회적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커리큘럼을 가르치는 곳이란다. 시인은 이곳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그에겐 생업의 일선인 셈이다.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된 날, 그가 지정해준 경희대 교정의 어느 벤치에 앉아 있으니 곧 은빛과 잿빛이 섞인 머리칼과 깎지 않은 희끗희끗한 수염 투성이인 그가 다소 초췌한 인상을 풍기며 나타났다.

 

오랫동안 시사주간지의 기자로, 또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일하면서 수많은 이들과 인터뷰 및 대담을 나눈 경험이 있는 그 앞에서 인터뷰어 노릇을 할 생각을 하니 다소 끔찍한 느낌마저 들었는데 그가 악수를 건네면서 “내게서 뭘 들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왔어요. 그냥 아는 만큼만 쓰면 되지.”라고 말을 하는 게 아닌가. 그 겸연쩍고 헐렁한 인사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오늘 이 인터뷰이에게 푹 빠져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미욱스럽게도, 처음부터 그를 화나게 하는 질문을 하고 말았다. 그의 이유 있는 역정은 인간의 삶의 조건에 대해 물은 첫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부터 관측되었다.

 

김도언 : 요즘 온라인 환경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소통을 시도하지만, 실제로는 고독한 사회라는 느낌이 들어요. 인간의 삶의 조건으로서의 생태적 환경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은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문재 : 나는 트위터도 안 하고 페이스북도 안 하고 블로그도 안 해요. 이메일이야 없으면 사회생활이 안 되니까 그 정도만 하죠. 저는 소셜미디어에 대해 별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접촉 빈도나 접촉 횟수가 높아진다고 해서 소통이 된다거나 안 좋았던 관계가 좋아진다거나 없던 관계가 생긴다거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아요. 지금 우리가 고독한 건 어쩌면 필연적인 것인데, 나쁜 자본주의가 그 이유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도언 : 나쁜 자본주의라는 게 무슨 뜻인가요.

 

이문재 : 좋은 자본주의라는 게 있을 리 없겠지만 나쁜 자본주의란 말하자면 인간의 자율성을 구속하는 자본주의죠. 우리들 모두가 전부 소비자가 되어버렸잖아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인간이 되지 못하고. 모든 것 사이에 자본이 개입하고 있어요. 돈이 매개가 되지 않으면 움직일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고,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진 상황입니다.
 
김도언 : 나쁜 자본주의가 점점 더 소외를 시키고 인간을 고독하게 한다는 말씀인가요?

 

이문재 : 자본주의 안에서는 소외고 뭐고 없어요. 소외보다 더 심각합니다. 쉽게 말해서 돈 없으면 살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사회라고 말할 수조차 없게 돼버렸습니다. 요즘은 자본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혈압이 오릅니다. 자본의 몹쓸 속성을 없애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없애겠어요. 대단한 포용력과 유연성, 세련성을 갖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제가 몇 년 전 에세이를 쓰면서 돈에 포섭되지 않은 것의 목록 같은 걸 정리해본 적이 있는데요, 생각해보세요.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돈에 포섭되지 않은 게 없어요. 신혼부부들이 돈이 없어서 애를 못 낳는 거잖아요. 돈이 없어서 제대로 죽지도 못하는 세상입니다. 

 

김도언 :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선생님의 최근 발언이나 쓰신 글들을 찾아봤는데, 상당히 현실적인 발언들을 하고 있어서 다소 놀랐어요. 지금도 자본과 돈에 대한 말씀부터 하시는데. 현실적인 감각이나 경제관념 같은 것이 희박하지 않으셨어요?

 

이문재 : 원래는 그랬지요. 쑥맥이었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현실이 제 삶에 간섭을 해오니까 예민해진 거죠. 자본주의는 돈만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입니다. 어떻게 하면 덜 쓰나, 어떻게 하면 안 쓰나. 어떻게 하면 더 쓰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러고 있으면 화가 나요. 모든 게 다 돈이잖아요. 정현종 선생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모든 것 사이에 돈이 있습니다.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를 들어보이며) 나하고 담배 사이에도 돈이 있습니다. 지금 나를 찍는 사진작가의 카메라하고 나 사이에도 돈이 있어요. 


그는 시인 지망생들, 그리고 후배 시인들에게 서정의 전범으로 불리는, 필독과 애독의 절대적 대상이 되는 시인이다. 그의 첫 번째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부터 뚜렷하게 그 특질이 포착된 서정은, 이 세계에 대해 기피할 수 없는 연민을 격렬하게 자신의 내적 파토스에 이입시켜 고통스러운 삼투압을 거친 후에 표현하는 방식으로, 다시 말해 자신이 영매가 되어 이 세계를 매개하는 방식으로 표현되는데, 그 와중에 걸러지는 서정이란 마치 사금처럼 반짝이는 결정이 되어 시의 행간에 가서 박히는 것이다. 예컨대 그의 초기시 「우리 살던 옛집 지붕」에서 묘사된 “알 수 없다/내가 마지막으로 그 집을 떠나면서/문에다 박은 커다란 못이 자라나/집 주위의 나무들을 못 박고/하늘의 별에다 못질을 하고/내 살던 옛집을 생각할 때마다/그 집과 나는 서로 허물어지는지도 모른다 조금씩/조금씩 나는 죽음 쪽으로 허물어지고/나는 사랑 쪽에서 무너져 나오고/알 수 없다/내가 바다나 강물을 내려다보며 죽어도/어느 밝은 별에서 밧줄 같은 손이/내려와 나를 번쩍/번쩍 들어올릴는지”는 80년대 시의 현장에서 듣기 어려운 섬세한 자기고백의 목소리를 들려주는데, 거기에 깃든 서정의 힘은 자신의 허약함과 불안까지를 모조리 껴안는 핍진성에서 연원하는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중년의 마지막 고개를 넘고 있는 그가 지금, 뚜렷한 은빛 머리칼과 희끗한 수염과 중저음의 목소리로 자신의 후경을 다 지워버린 채 어떤 격정에 휩싸여 시대에 대하여, 세태에 대하여 무서운 냉소와 채찍의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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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성 그리고 현실에 대한 발언

 

김도언 : 선생님의 시를 보면 초기의 특유의 빛나는 서정성과 함께 후기로 올수록 우리 시대의 문제를 짚는 주제의식 같은 것들이 엿보여요. 주제의식이란 건 소설가들이 많이 쓰는 말이지만, 요즘은 부정적으로 많이 쓰이기도 하는데 독자들한테 뭔가를 계몽시키고 가르치려는 태도도 보이고요. 오늘도 계속 현실적인 발언들을 하고 계시는데.

 

이문재 : 내가 보기에 분명히 잘못되고 크게 어긋나 있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거죠. 우리는 공멸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김도언 : 시인으로서 견지하고 있는 태도라는 게 시집에 담긴다고 보여지는데, 가장 최근의 시집을 내시면서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고 물으셨잖아요. 저는 선생님이 지금 시점에서 생각하는 시의 소용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이문재 : 두 말할 나위 없이 시는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나는 지금 문학이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사실 요즘 문학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습니다. 아까 말씀드렸지만, 세상이 잘못되고 있는데, 요즘 아이들은 계몽이라는 말만 나와도 소름이 돋는다면서 거부감을 표현합니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이 스스로 각성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주변에서 나보고 꼰대가 되면 큰일 난다고도 하는데, 저는 학생들 앞에서 자칭 꼰대라고 합니다. 비유컨대 우리 모두가 타고 있는 거대한 타이타닉 호가 가라앉고 있는데, 청년들이 잔소리 듣는 걸 싫어하니까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그냥 같이 죽자고 해야 하나요?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답답합니다.

 

김도언 : 그런데 문학적인 언술로 뭔가를 던지고 가르치는 게 기술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문학을 일종의 수사로 받아들이잖아요. 레토릭으로.

 

이문재 : 누가 그러는데요? 왜 문학이 수사고 간접화법이죠? 아니, 사람이 죽어가는데, 지구 전체가 위기인데 그 상황에 대해 말하지 않고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온다고 에둘러 얘기해야 하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도언 : 선생님이 처음부터 문학의 소용에 대해 그런 생각을 가지셨던 건 아니지 않나요?

 

이문재 : 사람은 변합니다. 제가 지금 다소 격앙돼서 이렇게 이야길 하고 있지만, 내일 또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내일 아침에 문학은 깊은 메타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이 작가나 시인이 되고 싶어 하는 걸 이해할 수 없어요. 그들이 작가로서 시인으로서 무얼 하려고 그토록 열심히 작가와 시인이 되려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시인이 만 명, 이만 명 된다고 하던데 시인이 그렇게 많은데 왜 세상이 이 모양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시인이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아니지만 시인들이 왜 이토록 무기력한 걸까요.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사회적으로 무슨 이슈가 되는 일이 일어나면 신문에서 시인이나 소설가들한테 글을 받거나 코멘트를 받았어요. 시인과 소설가들의 직관이나 지혜가 솔루션으로 받아들여졌던 거지요. 그런데 지금은 안 그래요. 그러니까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사회가 문학의 눈을 빌리고 문학의 역할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거죠. 지금은 그게 없어졌어요. 내게는 이런 변화가 문학의 사회적 역할이나 위상이 작아졌다는 증거로 보이는 거예요. 문학의 사회적 위상이 약해졌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이상한가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이상하다고 말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요?

 

김도언 : 문학적 현실에 대해 회의적인 말씀을 많이 하시네요.

 

이문재 : 회의를 넘어 절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인류는 반드시 멸망한다고 생각해오고 있습니다. 이 지구 전체로 보면 인류가 암 덩어리입니다. 지구 생태계에서 보면 인류라는 종이 지속되어야 할 이유가 없어요. 암 덩어리일 뿐인데. 산업문명이라는 게 최악의 암 종양입니다. 지구라는 ‘살’을 파먹으면서 이런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제 살’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인류가 어떻게 하면 오래 존속하는가, 그런 게 아니에요. 앞에서 타이타닉 이야기를 했지만, 인류가 멸망할 때 어떻게 서로 예의를 갖추고 헤어지는가, 이겁니다. 배가 침몰할 때, 서로 먼저 구명정에 타려고 하지 않고 서로 양보하는 걸 상상합니다. 그리고 타이타닉이 침몰할 때 악사들이 자기 목숨을 생각하지 않고 승객들이 무사히 탈출할 때까지 연주를 하잖아요. 그 악사들이 우리 시대 예술가의 역할이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합니다.

 

김도언 : 선생님, 그러면 지금 오늘 날의 문학은 다시금 사회운동, 문화운동의 중심이 되어서 그런 거라도 해야 한다는 건가요? 선생님이 참여하시고 문학활동을 시작하신 동인에도 ‘운동’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잖아요.

 

이문재 : ‘그런 거라도’가 아니라 그걸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인간과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옹호라면 사회운동, 문화운동이 아니라 모든 운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중심 중 하나가 정치일 겁니다. 난 문학이 왜 이렇게 왜소해지고 초라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왜소해진 걸 문학이라고 부르는 자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소위 문학의 죽음은 문학하는 사람들의 죽음, 자살이라고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내면적인 투항이겠지요.

 

표현의 수위나 발언의 내용은 다소 과격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의 말에는 정연한 논리와 설득력이 있었고 무엇보다 그 자신이 자신의 말을 수도 없이 되새김질한 자의, 다시 말해 수없는 의심과 회의를 거친 말의 엄정한 단속자만이 보여주는 진정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터뷰어를 비롯한 배석자 모두를 감화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사실 나를 포함해서 그의 시의 많은 독자들은, 그를 나이브한 리버럴리스트나 낭만주의자로 규정하는 데서 멈춰 있기 쉽다. 그것은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그의 초기시가 보여준 강렬하고 독특한 서정성의 세계와 그 선명한 이미지에 여전히 게으른 독자들이 붙들린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고 말하면서 자본주의와 문명을 비판하고 격렬한 언어로 문학의 왜소성을 서글퍼하는 목소리를 내는 시인은 분명 급진적으로 진화한 낭만주의자의 모습이다. 다시 생각해보건대 리버럴리스트나 낭만주의자는 기본적으로 급진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급진성이란 불가능한 것을 극복의 대상으로 상정할 때 성립되는 성질이다. 그것은 “시의 영토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지만 그 좁고 가파른 벼랑이 시의 국경”이라는 것을 알고 “한없이 죽음에 가까운 시쓰기여야만 국경에서의 삶은 지속된다는 역설” 또한 이해했던 젊은 시절의 시인 자신에서, 어떤 책임 앞에서 좀더 단호하고 분명한 태도를 가진 시인으로 진화한 모습 속에서 설명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는 지금 불가능한 것과 바투 대치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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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받아 적는 무당의 태도

 

김도언 : 제가 선생님을 뵌 것도 오랜만이고 그동안 과문했던 탓인지 오늘 선생님의 말씀들이 무척이나 귀하게 신선하게 들려요. 이런 이야기를 어디에 가서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저 역시 초기 시의 인상에 여전히 묶여 있는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이문재 : 첫 번째 시집은 제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쓴 거예요.

 

김도언 : 편력의 산물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이문재 : 편력이 아니라. 그냥 받아 쓴 겁니다. 그러니까 무당, 샤먼처럼요. 들려오는 걸 받아 적은 거죠. 그런데 그게 언젠가부터 너무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받아 적는 사람이 아니고, 내가 쓴 거라는, 시에 대한 저작권을 갖고 싶었던 겁니다.

 

김도언 : 그런데 선생님의 첫 번째, 두 번째 시집은 시공부하는 사람들의 필독서였어요. 자부심 같은 거 없으세요?

 

이문재 : 그런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첫 시집이 아직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자부심이라니, 무당에게 무슨 자부심이 있어요?  무당이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20대 중반에는 하루 밤에 아홉 편을 받아 쓴 적도 있어요.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서 뛰쳐나와서 술을 퍼마시곤 했습니다.

 

김도언 : 그래도 <시운동> 동인들이 시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 게 있잖아요. 어떤 세대론적 교감이나 전략을 수반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등단하실 무렵에 선생님 세대의 가장 큰 고민이나 관심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그게 동인의 형태로 집단화되어서 발화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때 동인들이 제가 보기엔 다 낭만주의자들 같았어요.

 

이문재 : 그 시대의 화두는 민주화였죠. 그런데 낭만주의가 가장 무서운 거예요. 혁명가들이 다 낭만주의자들이잖아요. 낭만주의는 세상에 없는 걸 동경하면서 거기에 목숨을 바칩니다.  그때는 다들 민중, 민주, 통일 이야기할 땐데 그런 이야기를 안 하는 사람들이 모인 거죠. 그렇다고 당시 시대정신을 외면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그야말로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막연한 부채감이나 두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무당 같은 존재였으니 내 개인의 상상력이 발휘된 목소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화염병을 들거나 선언문을 쓰는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은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구요. 그래서 어디선가 그런 소리를 한 적이 있습니다. 1980년대에는 내 뒤에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맨 뒤를 따라다녔는데, 지금은 내 앞에 있는 사람보다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사태를 ‘역진화’라고 부르곤 합니다. 제 시에 메시지가 분명한 것도 이 때문이겠지요.

 

김도언 : 그럼 그 당시 시대를 지배했던 민중시, 노동시에 대한 생각은 어떠셨어요?

 

이문재 : 부러웠습니다. 난 왜 저런 시를 못 쓰나. 박노해, 백무산. 다 부러웠어요. 무섭기도 했지만 쓰려고 해도 안 써졌습니다.

 

김도언 : 그래도 문학이 다성적인 목소리를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문재 :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저는 강요하지 않습니다. 시대를 보는 눈은 다 다릅니다. 역사와 문명을 내면화하고 의미화하는 것도 다 다를 겁니다. 그런데 하나로 가자,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다만 아까 이야기했지만 뭔가 잘못되고 있으면 거기에 대해 자기 방식대로 발언해야 하지 않나, 그런 거예요.

 

김도언 : 오늘 선생님은 계속해서 일관되게 문학의 사회적 역할, 소용을 말씀하시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절 탓하실 수도 있는데, 선생님은 그걸 부정하실 수도 있지만 선생님께서 발을 딛고 계신 진영은 일종의 문학주의 진영이란 말이에요.

 

이문재 : 아니에요. 저는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이기도 해요. 저는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끔 <문학동네>에 쓴 글도 문학주의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저는 문학주의자가 아니에요. 현실적인 감각, 지구적 인식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기자 생활 오래 하고 지금은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기자나 대학선생이나 우리 삶의 조건과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속 발언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기사로 썼던 걸 시로 쓰고, 시로 쓰려던 걸 기사로 쓰기도 했어요. 상호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죠. 시와 기사. 시인과 기자. 난 그게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자생활을 하는 것이 문학에 방해가 되지 않았는가 묻지만 난 안 그랬어요. 그리고 내가 있던 매체는 상대적으로 언론 자유가 보장된 데였습니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저는 제가 쓰고 싶은 것만 썼어요. 지금은 대학에 와 있는데 저는 교육이나 연구보다는 대학 혁신 쪽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대학다운 대학이란 무엇인지, 미래의 대학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이런 화두를 붙잡고 있습니다.

 

김도언: 저는 선생님이 문학주의자라는 게 아니었고 선생님이 같이 있는 분들과 그 조직이...

 

이문재 : <문학동네> 편집위원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분들은 제가 존경하는 친구들입니다. 저는 그분들이 갖고 있는 문학관을 존중합니다. 20년 넘게 그분들로부터 많이 배웠고, 또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이번 겨울에 다 그만 둡니다.

 

김도언 : 그건 보도를 통해 봤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말이 나왔으니 문학동네는 변하나요? 그리고 문학동네가 반성해야 할 게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이문재 : 젊은 친구들이 맡을 거니까 바뀌지 않겠어요. 그리고 문학동네가 잘못한 게 뭐냐고 물었는데, 반성할 것이 있다면 더 좋은 책을 못 만들고, 작가들을 더 후원해주지 못한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예지가 해야 할 일은 좋은 작품을 싣는 거 그거 밖에 없어요. 돌아가신 최인호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문예지가 뭐냐? 좋은 작품 싣는 거다. 그거 밖에 없다.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김도언 : 화제를 바꿔볼게요. 선생님은 우리 시사에서 중요한 시대를 중심에서 목격하셨는데, 우리 시사에서 가장 부흥했던 시기가 언제였다고 보세요?

 

이문재 : 나는 두 번의 대폭발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1930-40년대하고, 1970-80년대. 이렇게 두 번 밖에 없다고 봅니다.

 

김도언 : 선생님, 90년대 이후 시단에 대해 너무 박한 평가 아니신가요? 너무 인색하신 거 같은데요.

 

이문재 : 김도언 선생은 떠오르는 시인이 있나요? 저 두 번의 대폭발을 제외하면 우리 시의 틀이나 방향이 크게 바뀐 적이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시를 잘 못 쓴다는 말로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잘 쓰는 시인은 대단히 많습니다. 하지만, 잘 알고 계시는 것처럼 잘 쓴 시와 시를 바꾸는 시는 다릅니다.

 

 

시여, 정치가 되자

 

인터뷰 하는 내내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마치 전위성을 내장하고 있는 어떤 고전음악과도 같았다. 그의 목소리의 성조는 이를테면 냉소와 분노와 체념 사이를 불규칙하게, 불연속적으로 오갔다. 그런데 그게 내 귀에 참으로 절묘한 화음처럼 들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를테면 전위음악가 메시앙이 시도했던 불협화음까지를 의도한 실험적인 화음처럼 들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도무지 동시에 설 수 없는 낭만적 회의주의자의 모습과 엄정한 현실주의자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드러나는 분열과 모순의 어떤 대극적인 음악적 앙상블이랄까. 나는 그의 단호한 모습도, 체념한 모습도, 화를 내는 모습도, 숙취와 피로에 쪄든 모습도, 논리적인 모습도 그가 시인으로서 능히 감당해온 어떤 늠름한 태도 속에 수렴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빛나는 신생의 감수성과 서정으로 80년대 시단의 경직성에 경종을 울린 청년 시인에서 이제 지천명의 후반으로 넘어가는, 삶의 또 다른 절정에 서 있다. 그는 일주일에 일곱 날을 학교 연구실에 나온다고 한다. 그는 자신에게 무척이나 가혹한, 그래서 순정한 전위적 낭만주의자의 태도를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 태도 속에서 이 세계에 대한 그의 연민은 깊고 넓어졌으리라. 그의 칼칼한, 그러니까 꼰대이기를 자처하면서 던진 어떤 목소리, 내 귓바퀴에 단단히 새겨진 목소리를 최대한 육성에 가깝게 옮기면서, 한 시인의 절실하고 핍진한 정신적 풍경을 묘사하기엔 한없이 모자란 인터뷰 글을 마친다.

 

“난 정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왜 정치를 안 하려고 하지. 적지 않은 수의 우리 국민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오해하고 있어요. 선거제와 정당제, 삼권 분립이 민주주의인 줄 아는데, 그건 민주주의의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민주주의는 한마디로 인민이 자기 스스로 통치하는 거예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통치하는 거요. 루소가 말한 ‘자유’의 개념과 흡사합니다. 루소는 자유를 자기가 법을 세우고 그 법에 순종하는 거라고 말합니다. 문학 행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작품을 쓸 때마다 스스로 법을 세우고 그 법에 복종하는 게 문학일 겁니다. 문학하는 자의 삶도 그와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세운 법이 불가능하더라도 그걸 추구하는 게 문학이라고 봅니다.

 

사실, 병들고 타락한 세계, 멸망을 향해 질주하는 이 문명을 시인이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누가 그걸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가능한 것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이윤이나 성취감은 있을지 몰라도. 내가 믿는 올바르고 아름다운 세계, 인간과 우주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세계, 그 불가능의 세계에 대해 발언해야 합니다. 불가능에 대한 추구를 말할 때마다 제가 소개하는 분이 있습니다.

 

지난 세기 중반 미국에서 활동한 기독교 아나키스트 애먼 헤나시입니다. 이 분은 1인 시위의 창안자이기도 한데, 무슨 일이 생기면 뉴욕 거리에서 혼자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자나 행인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 혼자 그렇게 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겠느냐.’ 그때마다 애먼 헤나시는 씨익 웃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도 안다, 나 혼자 이런다고 세계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 또한 나를 바꾸지 못할 것이다.’ 내가 세계를 바꾸겠다는 각오보다 세계에 의해 내가 바뀌지 않겠다는 의지. 이 얼마나 고귀하고 당당한 태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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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문재는 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생태적 상상력’의 시인으로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지금 여기가 맨 앞』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내가 만난 시와 시인』,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등이 있다. ‘시사저널’ 취재부장과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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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도언 | 이흥렬(사진)

김도언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여섯 권의 소설책과 세 권의 산문집, 한 권의 평전을 펴냈다. 지금은 문학적 관점을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 시각적 이미지 작업과 연계해 세계와 타자를 읽어내는 실험을 하고 있다. 좋은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실존적 조건에 대한 통찰과 아울러 삶의 총체성에 대한 상상력과 감수성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https://www.facebook.com/doeon.kim.58

이흥렬(사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와 밀라노 IED 사진학과 졸업. 인물사진과 나무사진을 주로 찍고 있으며 최근의 작업은 '푸른 나무(Blue Tree) 시리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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