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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독자가 추천한 ‘내 마음을 뺏은 소설’

독자, 시인, 소설가, 판사, 여행작가는 어떤 책을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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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카페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요즘 어떤 소설이 재밌어?” “요즘 읽을 소설 별로 없던데.” “그래? 소설을 읽고 싶은 계절인데.” 문득, 끼어들고 싶었다. 그리고 아래의 책들을 줄줄줄 소개하고 싶었다.

소설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간 지가 아득합니다. 읽을 소설이 없다고 합니다. 과연, 정말, 그럴까요? 지하철 역 서점에 나가보세요. 동네책방에 들러보세요. SNS만 하지 말고 인터넷서점 홈페이지를 들어가보세요. 재밌는 소설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소설을 읽고 싶은데,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독자들을 위해 <채널예스>가 애독가들에게 메일을 띄웠습니다. “최근, 당신의 마음을 빼앗은 소설이 있었나요?” 반가운 답장들이 앞다투어 도착했습니다. 모두들 애정 어린 추천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참! 재밌는 결과가 있습니다. 무려 두 분께서 같은 소설을 추천해주셨습니다. 궁금하지 않습니까?) 일주일에 커피값 2잔만 아끼면 책 1권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에 남는 장사, 해봅시다. 독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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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민정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정용준 저

김민정

표제작부터 읽었다. 눈알이 강으로 맞춰진 진공청소기의 흡입구처럼 종이를 먹어갔다. 가장 마지막에 묻고 싶은 게 '안부'라서 그 작품까지 읽고 책장을 덮는데 일순 짜증이 밀려들었다. 더불어 슬픔. 그러니까 신경질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부르는 이야기. 왜들 이렇게 사나, 우리 이렇게 살 수밖에 없나. 내 얘기 아닌 것 같지만 다 내 얘기였다. 네 가족 얘기 같지만 다 내 가족 얘기였다. 이렇게 적나라하면서 또 절실하게 쓰이는 글의 어려움을 안다. 맞닥뜨리기 싫은 주제, 그래서 피하려는 주제를 뼈와 살로 '우리'라는 '사람'을 묵묵히 빚고 있는 정용준. 점묘는 쇠라만 하나. 정용준이 소설 속에서 컬러풀한 점으로 찍어나간 색색의 상황들을 떠올린다. 바둑돌의 희고 검음처럼 두 가지 색으로 대비되던 인물들의 대화를 되새긴다.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판사 문유석
『복종』 미셸 우엘벡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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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재밌게 읽은 소설은 미셸 우엘벡의 『복종』이다. 2022년의 프랑스 대선, 극우 국민전선이 선두를 질주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기존 좌우파가 어쩔 수 없이 온건 이슬람 정당과 손을 잡게 되고, 결선투표에서 이슬람 지도자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중동 산유국의 막대한 재정적 후원과 급증하는 무슬림 인구를 배경으로 프랑스는 급속하게 이슬람화한다. 마치 지금 진행되는 일들인 양 생생한 정치소설인 동시에, 서구 문명의 취약함에 대한 풍자소설이고, 문학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배경으로 한 시니컬한 지식인 소설이기도 하다. 하일지가 고원정 풍의 실명 정치소설을 쓴 경우랄까. 게다가 종종 하루키만큼 아무렇지도 않게 지독하게 야한 장면을 등장시킨다. 정치와 섹스와 지식인에 대한 냉소. 대중성 있는 이야기를 고급진 현학과 문체로 감싼다. 이런 한국소설도 읽고 싶다.

 

 

 

김성수 호모북커스 대표
『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저

김성수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 중 하나인 송파구 『잠실동 사람들』, 소설 속 다양한 군상은 소설이라하기엔 너무나 적나라한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알고 보니 7년 가까이 잠실동 대단지 아파트에 살며 두 아이를 키워온 정아은 작가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있다. 이미 학벌과 거주지(아파트)로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이 천박한 욕망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어른과 아이들, 모두 사교육과 입시의 희생양을 자처한다. "비록 나는 주류에 끼어들지 못했지만 내 아이들은 주류로 살게 하리라. 주류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선 주류가 되게 하리라. 한 번뿐인 인생, 아이들이 세상의 부와 권력을 실컷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이런 이야기를 쉽게 듣고 할 수 있는 세상. 너도 나도 가라앉고 있는 싱크홀 같다. 공교롭게 10년 가까이 송파구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은 이 거대한 싱크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작가 은유
『신중한 사람』 이승우 저

은유

"나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필경사 바틀비』의 주인공 바틀비는 이 말을 주문처럼 반복하며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단단한 일상체계에 균열을 일으키고 스스로 몰락을 자처한다. 『신중한 사람』의 주인공 Y는 매사 신중하게 행동한다. 억지와 불합리와 막무가내의 일들을 묵묵히 받아들여 "시끄럽고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절대 만들지 않는다. 그런 신중함의 일관된 추구로 인해 Y는 자기집에서 추방당한 채 비루하게 연명한다. 참 슬프고 화가 난다. 작품에는 신중함으로 비대해진 나, 부정의 능력을 상실한 현대인의 초상이 여실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신중한 사람』의 강력한 울림은 내 안의 바틀비를 불러낸다. 이제부터 나는 신중하지 않는 편을 택해야 할까 보다.




작가 윤용인
『대범한 밥상』 박완서 저

윤용인

박완서이기에 가능한 소설이고 문학이다. 솔직한 내면의 고백을, 능청스럽게, 신랄하게, 그녀만의 문장으로 풀어놓는 매력은 단연 이 시대 최고 작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2011년 타계한 후, 초기작부터 만년작까지 그녀의 대표 중단선 10개가 묶여 나온 책이 『대범한 밥상』이다. 선생의 모든 작품이 늘 그러했듯, 이 10개의 단편들도 우선 제목들이 어찌나 그리 유려하고 쫄깃하며 매혹적인지, 제목을 먼저 보고 나면 책을 읽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수록작 중 하나인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전화통화 형식의 소설 구성과 자식 잃은 어미의 날 냄새 나는 그대로의 심리 묘사가 마치 신화 속 북소리라도 들은 양 꽤 오랫동안 가슴에서 둥둥둥 울리게 한다. 또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박완서의 어휘를 사전에서 찾아보고 그것을 기록하는 작업을 함께 한다면 이 가을의 독서가 한층 풍성해질 것이다.




김강수 <채널예스> 동영상 감독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김근우 저

김강수

그러니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처음부터 없었을지 모른다. 아니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중간에 책을 놓지 못했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기분이 좋기까지 했다. 『모비 딕』의 에이해브 선장과 그의 선원들로 비유되는 노인과 남자와 여자와 꼬마. 독특하면서도 짠한 '동료들'이 생겼기 때문이리라. 불광천의 유유자적 오리들 사이에서 노인의 고양이를 잡아먹은 정확히, 진짜, 딱 '그놈'을 찾는 일은 역시나, 누구에게나 도전이고 투쟁이며 모험이다. 이쯤 되면 진짜와 가짜의 판명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긴 항해 끝에 남는 것은 그저 동료들 간의 진심뿐. 우리네 삶 또한 뾰족한 암초들 사이에서 소통과 이해와 진심을 건져 올리는 일임을 헤아리며, 의미와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잡아먹은 오리 소설을 감히 추천하는 바이다.




소설가 장강명
『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저

장강명

'요즘 강남 엄마들은 애들을 어떻게 가르치나'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찾은 독자들이 꽤 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처음에는 허탈했다. 그러다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책이 정확하기 때문이다. 정확하니까, 강남 사교육시장 정탐용으로도 쓰일 수 있다. 정확하니까 동의하게 되고 몰입하게 되고 반성하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그 정확함이 아니다. 정확함을 위해 쏟아야 했던 작가의 치열함이나 그에 바탕을 둔 통찰에도 있지 않다. 하긴, 전반부는 흥미로운 인류학 보고서 같았다. 그런데 중반을 지나자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밀고 나갔다. 결말에 이르러 나는 정확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넘어선 희망과 애정을 보았고, 거기에 승복했다.




여행작가 최갑수
『우연의 음악』 폴 오스터

최갑수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것은 끝없는 우연과 그 우연이 만들어낸 사건이다. 그리고 이 사건들은 예측 불가능한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나쉬가 포지를 만난 것도 우연이었고, 그들을 나락으로 떠민 재벌들 역시 로또라는 우연에 의해 만들어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의 내 삶은, 나의 여행은, 어쩌면 "바람에 부러진 잔가지가 별안간 발치에 떨어진 것"같은 우연이었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우연에 순응하며, 때로는 저항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여행작가이지만, 내일은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어쩌면 그것이 다행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책의 마지막 부분, 나쉬는 탈출하려는 포지에게 말한다. "자네는 괜찮을 거야. 식사를 하고 나서 이를 닦는 것만 잊지마. 그러면 자네한테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좋은 일이 일어나길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래야 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인생을 대하는 더 적당한 태도일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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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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