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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황인숙,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김도언의 시인의 얼굴> 일곱 번째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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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황인숙 선생님에게, 다른 것을 차별 없이 받아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테다. 받아낸다는 것, 그것은 자신을 열어 보인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얼마나 괴로운지/나한테 토로하지 말라/심장의 벌레에 대해/옷장의 나방에 대해/찬장의 거미줄에 대해/터지는 복장에 대해/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인생의 어깃장에 대해/저미는 애간장에 대해/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치사함에 대해/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차라리 강(江)에 가서 말하라/당신이 직접/강(江)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강가에서는 우리/눈도 마주치지 말자
-〈강〉 전문, 시집 『자명한 산책』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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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시인

 

독자들이 좋아하는 시인이 있고, 평론가들이 인정하는 시인이 있고, 동료 시인들이 지지하는 시인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 세 부류의 시인은 모두 좋은 시인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다른 두 부류와는 달리 동료 시인들이 지지하는 시인은 언제나 예외 없이 좋은 시인이다. 그가 나쁜 시인일 가능성은 없다. 다시 말해 좋은 시인의 가장 보편적 특질은, 하나같이 동료 시인들의 지지와 존경을 받는다는 것이다. 백석과 김수영, 김종삼과 최승자 등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 내가 말하려고 하는 황인숙 시인 역시 동료 시인들로부터 지지와 사랑을 흠뻑 받고 있는 시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가 좋은 시인이 아닐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가장 자명한 증거일 것이다. 사실 언젠가부터 시인 하면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황인숙이다. 말하자면 시인의 아이콘과도 같달까. 그 이유는 과연 뭘까. 이 글은, 내가 짐작하고 있는 그 이유를 스스로 확인하려는 시도일 공산이 크다.

 

나는 황인숙 시인을 개인적으로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2000년대 초반 샘터사에서 단행본 기획을 할 때 시인 조은 선생님을 만나는 자리에서 선생님을 처음 보았다. (평소 동경하던 시인의 실물을 보고 비현실적인 이물감에 사로잡혔던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정말 내 앞에 있는 사람이 황인숙 시인인가 몇 번이고 상기할 정도였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선생님의 산문집 두 권을 만들게 되었는데, 또한 그 인연으로 이제하 선생님, 고종석 선생님, 조용미 선생님 등과도 교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화가 이현 선생님과 염성순 선생님도,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점선 선생님도 황인숙 선생님 때문에 알게 되었다.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알게 된 분들의 이름을 열거해 본 이유는, 성향이나 기질, 신분 같은 것들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황인숙 선생님이 이들로부터 놀라운 정서적 유사성과 동질감을 이끌어내고, 그것을 전염시키기 때문이다. 이 말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본적으로 황인숙 선생님에게, 다른 것을 차별 없이 받아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테다. 받아낸다는 것, 그것은 자신을 열어 보인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아마도 황인숙 선생님의 마음속엔 타자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리고 이해가 잘 혼융된, 어떤 좋은 영적 태도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황인숙 선생님과 오누이처럼 지내는 고종석 선생님은 그것을 ‘기품’이라는 말로 간명하게 표현한 적이 있다.

 

“황인숙은 기품 있는 여자다. 기품이라는 말을 생각할 때.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황인숙이다. 그는 누구 앞에서도 움츠러드는 법이 없고, 누구 앞에서도 젠체하는 법이 없다. 움츠러들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젠체하지 않는 것도 내면의 견결한 자기 긍정 없이는 힘들다. 그런 견결한 자기 긍정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황인숙은 귀족이고 아씨다.”

 

시인에게 기품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내 생각에 그것은 우선 자신의 고통과 비참, 비애를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자존심의 의지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의지는 이 세상에 대해 뒤틀려 있거나 닫혀 있지 않고 순정하게 열려 있을 때만 가능할 것이다. 분명 그 맑고 단아한 열정 같은 것이 바로 시인의 기품을 만드는 것일 테다.


나는, 시인으로서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이 맑고 귀한 열정을 증거할 만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나만 알고 있는 예쁜 동화 같은 이야기를. 2007년 2월 어느 날 있었던 일이다. 그 즈음, 한국은행은 천 원권 지폐의 신권을 발행하는데, 구권보다 사이즈도 작아지고 컬러의 톤도 밝아져서 보기에 매우 산뜻하고 예뻤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구권을 신권으로 바꾸는 바람에 품귀 현상까지 벌어졌다. 그즈음 어느 날 무슨 일인가로 선생님을 뵙고 헤어지려는 찰나, 선생님이 가만 있어보라면서 당신의 지갑을 여는 것이었다. 그러곤 빳빳한 천 원짜리 신권 대여섯 장을 꺼내더니 내게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언, 이것 좀 봐. 어찌나 예쁜지 도언에게도 몇 장 주고 싶어.”

 

아, 그때의 선생님의 눈동자를 나는 지금도 어제 본 것처럼 기억하고 있다. 그 뿌듯하면서도 설렘 가득한 눈동자를 말이다. 선생님의 눈동자는 마치 예쁜 그림엽서나 카드 같은 것을 친한 이에게 나눠줄 때의 보람을 담은 듯, 한없이 투명하고 맑고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아름다움을 나누는 사람의 눈동자였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돈을, 예쁜 단풍잎처럼, 그림처럼 바라볼 수도 있다니.

 

이 에피소드가 말해주듯이 내가 아는 선생님은, 아름다움 앞에서 결코 머뭇거리는 법이 없다. 그것은 맑고 높은 곳을 향해 열려 있는 순정한 의지 때문에 가능한 것인데, 그게 바로 선생님만이 간직하고 있는 기품의 정체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기품으로 31년째 시를 쓰고 있다.

 

 

‘키가 큰 남자가 쓴 시 같다’라는 말

 

인터뷰 약속을 정하고 선생님을 뵙기로 한 곳은, 선생님이 사시는 동네에 있는 1980년대식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소박한 카페였다.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씨였다. 선생님은 약속 시간보다 정확히 5분 일찍 도착하셨는데,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셨다. 뒤에 따로 쓰겠지만 나는 그 수상한 짐의 정체를 사실은 금방 알아차렸다. 

 

선생님이 숨을 좀 돌리자, 처음 시가 찾아왔던 순간이 언제였는지부터 물었다. 30년 넘게 시인 부락의 어떤 상징으로 살고 있는 이에게 시가 어떻게 다가왔던 것인지를. 선생님은 그게 마치 어제 일이기라도 한 것처럼, 스무 살 즈음이었던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때가 당신이 쓰고 있는 것이 시일지도 모르겠다는 자각이 들었던 최초의 순간이었다고. 그즈음 우연히 시 열 편 가량을 쓰게 되었고 그것을 친한 친구에게 보여줬는데, 그 친구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김도언 : 친구분한테 시를 보여주셨다고요. 친구분이 뭐라고 하셨어요? 문학적인 소양이 있는 분이었나요?

 

황인숙 : 내가 봐도 뭔가 근사한 것 같아서 내가 썼다는 말은 하지 않고, 이 시 어떠냐고 보여줬거든. 그런데 친구의 말이 굉장히 키가 큰 어떤 남자가 쓴 것 같다는 거야.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굉장히 기분이 좋았어. 문학적 소양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친한 친구였는데 그런 말을 했어.

 

김도언 : 그러면 그때 친구분의 말씀을 듣고 기분이 좋으셨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그 이후부터는 틈나실 때마다 쓰신 거예요.

 

황인숙 : 아니, 한동안은 안 쓰고 그냥 책을 읽기만 했어. 책 읽는 건 정말 좋아했으니까. 그러다가 서울예대를 스물 네 살쯤인가 들어갔는데, 실기시험에 썼던 시를 선생님들이 좋게 보셨어. 그때 정현종 선생님이 2학년을 가르치고 계셨는데, 스무 살 무렵에 썼던 시들을 모아서 가져다 드렸더니 선생님이 굉장히 칭찬을 해주셨어. 그래서 완전히 고무됐지. 그때부터 등단하기 전부터 내가 진짜 천재 시인인 것 같은 느낌으로 살았지.(웃음)

 

김도언 : 그리고 몇 년 뒤에 등단하신 거네요. 습작 과정을 좀 설명해주실 수 있으세요? 저는 그게 정말 궁금하거든요. ‘천생 시인’인 것 같은 선생님과 ‘습작’이라는 말이 어딘지 좀 어울리지 않는데.

 

황인숙 : 등단 전후로 시를 열심히 쓰려고 노력했어. 왜냐하면 정현종 선생님이 그렇게 넘치게 칭찬해주셔서 다른 선생님들도 쟤가 정현종 선생이 잘 쓴다고 한 친구야? 그러면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셨으니까. 그런 분위기에서 열심히 하려고 했어. 그런데 쓰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고 배운 바도 없고 그래서 좀 애매했지. 어떤 창작의 열정이나 욕망이 막 우러나서 쓴 적은 없었어. 그런데 내가 몇 편 쓰지도 않았는데 칭찬을 들었던 걸 보면, 한 가지 짚이는 게 있어. 내가 중학교 때부터 일기를 썼거든. 내가 문학 수업 같은 건 안 했다고 했지만 일기를 썼던 게 아마 글쓰기 연습이나 이런 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쓴 거라고 말할 순 없지.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책을 참 좋아했어. 시보다는 소설을 많이 읽었던 게 기억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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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지워나가는 시인

 

무언가 단순하고 졸박한 대답이다. 선생님에게서 당신 자신을 말하게 할 때, 그게 무엇에 대해서건 화려하고 극적인 서사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걸, 이즈음에서 나는 터득한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선생님은, 자기가 좋아하는 외부의 것에 대해서는, 그러니까 좋아하는 사람이라든지, 동물이라든지, 어떤 책이나 날씨라든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참으로 풍미 있고 다채롭게 말씀을 잘 하시지만, 당신 자신에 대해서 말할 때는 극도의 미니멀리스트가 돼버린다. 수사도 없고 과장은 더더욱 없다. 자신을 지우라는 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제 같기도 하다. 자신을 지우는 것과 시를 쓰는 것은 과연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일까.

 

김도언 : 1984년도에 등단하셔서 올해 등단 31년이 되셨어요. 그동안 시집 여섯 권과 시선집 한 권을 내셨고요. 그런데 처음에 주목을 받은 시인도 개인적인 환멸이나 시인으로서의 회의와 절망, 이런 것 때문에 스스로 시인의 이름을 반납하기도 하는데, 선생님은 서른 해가 넘는 시간 동안 일관되게 시인의 삶을 살아오셨어요. 그런 것이 가능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황인숙 : 특별히 그런 건 없는 것 같은데. 시 쓰는 게 독립운동하거나 노동운동하는 것도 아니고, 각오가 필요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냥 살면서 별 의식이 없이 썼던 것 같아. 내가 그냥 되어가는 대로 살고, 되어가는 대로 쓰고 그러다 보니까 시집도 한 권 두 권 내게 되었어. 사실 글이라는 게 안 쓰고 사는 게 제일 편하잖아. 내가 세상에서 자그마한 이름이나마 얻은 게 시인인데, 요즘은 그조차도 허명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내가 너무 시 의식 이런 게 없구나 싶다는 생각도 들어. 시인으로서 부지런하지 못했던 셈이지.

 

김도언 : 선생님, 내가 시인이어서 참 다행이구나, 하고 느끼신 적은 없으세요? 시인에 대해 특별한 자부심이나 명예를 의식하신 적은 없으셨지만 그래도 시인이어서 다행이다, 하는 생각 말이에요.

 

황인숙 : 글쎄,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내게 어떤 미적인 태도를 갖게 해준 측면이 있달까. 내가 더 이상 젊다고 볼 수 없는데,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는 전문직을 가진 적은 없지만, 시인이라는 것이 내겐 젊지 않은 시간도 견디게 해주는 직업 같기도 해.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에는 순수한 기쁨 같은 걸 느끼면서 사는 사람들이 적은 것 같아. 그러니까 정원을 가꾸는 기쁨이라거나 이런 거 말야. 아마도 내게 시는 그런 것 같아.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는 거.

 

김도언: 선생님의 하루 일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요. 선생님은 매일매일 돌보시는 것들이 있잖아요.

 

황인숙 : 시인으로서의 일상이란 건 없는 것 같고, 내가 매일 길고양이 밥을 주잖아. 8~9년 된 것 같아. 그런데 2~3년 전부터 내가 결코 원치 않았는데 일이 두 배 이상 늘어났어. 적어도 마흔 군데 이상 밥을 주는데, 그건 정말 피할 수 없고 꼭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에 지켜나가고 있어. 내가 몇 달 전부터는 밤에는 끌고 다니는 카트를 써. 그 전에는 가뜩이나 행색이 노숙인 같은데 카트까지 끌면 정말 더 꼴불견이다 싶어서 안 했는데, 힘들어서 써봤더니 편리한 점이 많아. 특히 손이 자유로워지니까, 걷는 시간에 뭘 생각할 수 있고 메모를 할 수 있겠더라고. 앞으로도 기대가 돼. 최근 3년 동안에는 동아일보에 〈행복한 시읽기〉 연재를 했어. 그게 남들 보기에는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나는 모기 잡는데 도끼 휘두르는 격으로 머리를 꽁꽁 싸매고 며칠을 써야 하거든. 지금은 연재도 끝났지만.

 

김도언 : 선생님, 그럼 혹시 그런 생각이 있으세요? 직업이 없는 시인들의 무위. 아무 할 일이 없는 상태, 시간이 떠도는 상태, 그런 상태에 대한 시민으로서의 자책감이라거나 그런 거 있으세요? 내가 지금 아무런 할 일이 없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 같은 거?

 

황인숙 : 아무런 할 일이 없는 적이 있을까. 내가 정말 쉰 살까지는 별 다른 일을 안 하면서 살았네. 그런데 그걸 지금에서야 다 갚는 거 같아. 나는 정신적으로 일하는 사람들한테는 아무 부채감 없어. 그런데 청소 미화원이라거나 행상이라거나 아무튼 그런 분들한테는 굉장한 채무감이 있지. 죄책감이 있어.

 

황인숙 선생님이 인터뷰를 하기로 한 장소에 들어올 때 싸매고 온 것. 그것은 바로 길고양이들에게 줄 사료다. 커다란 배낭으로 한가득이다. 저 무거운 걸 9년째, 겨울이건 여름이건 짊어지고 동네의 학대받는 배고픈 생명들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것을, 청소를 하거나 행상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분들에 대한 부채감을 만회하기 위해 자의식이 충만한 사람이 고안해낸 어떤 의식적인 고행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마도 지나친 상상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선생님이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이 고행이, 시인으로서 자신이 믿고 있는 어떤 숭고미를 지상에서 실행하기 위한, 양보할 수도 없고 양보해서도 안 되는 도저한 신념 같은 것으로 다가온다. 희생과 헌신이라는 의미까지 여기에 겹치게 되면, 이 신념은 그대로 한 시인의 숙명적 이콘(icon)이 되기도 하고.  

 

 

의식의 백지상태

 

김도언 : 이수명 시인이 요즘 ‘시집’을 통해서 90년대 시사를 둘러보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90년대 시인들의 특징을 공동체적 윤리에서 개인을 끄집어낸 거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선구적인 작업을 한 시인으로 황인숙, 장정일 등을 꼽았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이랑 장정일 시인은 90년대가 아니라 그 전에 등단을 했지만 90년대 시의 예비적 징후를 보여줬다는 거죠. 선생님이 등단하신 80년대가 전두환 정권 치하였고 개인주의가 많이 억압받던 시절이었잖아요.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문학을 저항의 수단으로 삼기도 했고 큰 목소리들이 문학을 통해서 많이 나왔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저는 선생님이 보여준 시가 참 이채롭고 경이롭게 보였어요.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가 궁금해요. 시대적 상황이나 사회현실과 괴리되어 있다는 비판은 받지 않았나요?

 

황인숙 : 비판,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거 같기도 한데(웃음) 나중에 생각해보면 내가 세상을 몰랐기 때문에 그런 시를 쓸 수 있었던 것 같아. 세상을 모르고 나 혼자 책이나 읽고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혼자 갇혀 살았으니까. 학교에 다닌 것도 아니고 직장에 다닌 것도 아니고 그냥 격리되어 있었다고 할까. 그런 영향이 있는 것 같아. 그렇다고 내가 내성적이거나 비사교적이거나 그런 성격은 아니야. 오다가다 사람들도 잘 사귀어. 그런데도 그 시절의 나는 아주 작은 차원의 사회라는 게 없이 살았던 거 같아. 잘 모르겠어. 아무튼 서울예술대학에 들어가면서 사회에 나온 셈이 되었고 그때부터 어렴풋이 사회가 보이고 그랬으니까. 나는 그게 내 시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보는데, 내가 등단했을 때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시가 득세하는 시대였거든. 그런데 내가 쓰는 시라는 게 초상집 같은 데 가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러니까 음풍농월 같은 의식이 든 거야. 나는 그런 시밖에 쓸 도리가 없었어. 어떤 의식의 백지상태에 있었다고 할까.

 

김도언 : 그래도 선생님은 등단과 함께 계속해서 주목을 받았고, 꾸준한 평가의 대상이 되었고, 문지라는 매우 문학주의적인 출판사에서 계속 시집을 내셨어요. 나름대로 시인으로서 순탄한 길을 걸으신 거죠. 그런데 제 질문의 요지는 그런 안정적인 입지를 가지고 시를 쓸 때 시적 긴장이 해이해질 우려는 없나 하는 거예요.

 

황인숙 : 시적 긴장은 이런다고 해이해지고, 저런다고 괜찮고 그런 게 아니라 각각 자기 정신적인 태도의 문제인 것 같아. 어떤 시인이 좋은 평을 안 받았다고 해서 긴장해서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아니지. 나는 그 점에 대해서는 시인으로서 굉장히 행운이라고 생각하는데, 열광적인 주목이나 각광을 받은 적도 없지만 그래도 시를 쓰면 발표는 할 수 있을 정도의 평가는 받았거든. 일종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 같아. 

 

김도언 : 선생님은 독신이시잖아요. 시인에게 혼자 산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나요?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고 사는 삶, 그러니까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체험에서 오는 시인의 시선이나 깊이 같은 것도 있을 수 있잖아요.

 

황인숙 : 결혼생활이나 가정생활을 통해 체감되는 보편적인 감정은 주위에 숱하게 널려 있는 것 같은데. 약간의 상상력이랑 정서, 감응 능력만 있으면 보편성을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 가족이라, 음, 거기서 오는 고통이나 비애가 너무 절절히 스며들 것 같아.

 

김도언 :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엄마의 입장이 되어 본 시인이 엄마의 관점에서 삶과 사회를 바라보고 거기서 뭔가를 추출해서 시를 쓰는 것이 엄마 입장이 되어보지 않아도 가능하다는 말씀이시죠?

 

황인숙 : 그건 안 가능하겠지. 그런데 그건 그거 하나잖아. 그런데 그거 하나를 위해서, 그런 결정적이고 운명적인 경험을 해야 할까. 지금 도언이가 말한 그런 종류의 시는 세상에 그냥 단 한 편이면 돼. 내가 놓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사실 알고 보면 세상에 놓치는 게 얼마나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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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없음’이라는 시인의 전략

 

앞서 얘기했지만 황인숙 선생님은 동료 시인들이나 지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물론 그것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고 선생님에게 베풀고 어루만지는 특별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하러 오면서도 선생님은 사과 세 알을 싸가지고 와서 선물로 주셨다.) 아닌 게 아니라 선생님은 모든 것을 다 나눈다. 소유하고 독점하는 것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믿는 듯하다. 아, 소유하고 독점하는 게 하나는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나는 시로 쓰지 않은 좋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말할 때의 시다. 그러니까 그 절대적 숭고만을 선생님은 독점한다. 어쨌거나 선생님은 자타가 인정하는 좋은 사람인 동시에 좋은 시인이다. 시인의 사회적 인격과 문학성. 문학이 사회적으로 소비된 이후 이 문제는 매우 잦은 논쟁의 주제였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싶었다. 

 

김도언 : 선생님을 뵈면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거지만, 상당히 정도 많고 사람들에게도 관대하신데, 저는 그런 것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엄격하지 않거나 자기 고통을 통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쓰신 시 중에서 ‘강’이라는 시를 보면 그런 게 분명히 느껴져요. 선생님은 다른 사람 모르게, 자기 자신과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걸요. 그런데 보통 문학적 인격과 사회적 인격이 다를 수 있잖아요. 좋은 사람이 좋은 시를 쓰는 것도 아니고, 시는 좋은데 사람은 나쁜 사람일 수도 있고. 이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황인숙 : 시인에게는 사람이 되는 거보다 시인이 되는 게 더 행복하겠지. 시인이 되기 전에 사람이 되라는 이런 말은 바보 같은 말인 것 같아. 아무튼 좋은 사람이 되는 건 각자 개인적으로 선택할 일이고 시인은 기본적으로 시를 잘 써야지. 그런데 좋은 시, 나쁜 시를 떠나서 시에서 기운 같은 게 느껴지지 않나? 내가 아는 어떤 시인이 있는데, 이 사람은 좀 이기적이고 다른 사람한테 폐도 끼치고 그런 사람이야. 그런데, 언젠가 보니까 시가 예전보다 좋아졌던 거야. 그때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어. 어쩌면 악이거나 악에 유사한 그런 성향도 시에 도움이 될 수 있고. 그런 걸로 인한 사회의 반응이 있을 거 아니야. 자기의 잘못에 대한 사회의 반응으로 따돌림을 당한다거나 그런 게 있거든. 물질적으로는 이익이 있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상처가 있을 거 아니야. 그런데 이런 게 이 사람한테는 좋은 시를 쓰는 자양이 됐을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 그 사람이 그런 경우고. 선한 기운도 힘이 될 수 있지만, 그런 것도 이런 저런 화학작용을 일으켜서 좋은 시를 쓰는 데는 좋은 조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시 자체가 무슨 선악, 도덕 이런 건 아니잖아. 그냥 미적으로 훌륭하면 되는 거니까.

 

김도언 : 제가 선생님을 뵐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자유로운 게 느껴지거든요. 그리고 선생님은 언제나 사람들을 편견 없이 대하시는 거 같아요. 그 사람의 직업, 사회적 계급 그런 거 신경 안 쓰시고. 그런데 편견 없이 공평하게 사람을 대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러려면 콤플렉스 같은 게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지 않은 콤플렉스가 있으세요?

 

황인숙 : 콤플렉스인데 진짜 말하지 않은 게 있다면 끝내 말하지 않을 것이고. 글쎄. 별 다른 건 없는 거 같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은 건 콤플렉스가 아니라 그건 그냥 불편함과 창피함 같은 거야. 콤플렉스라기보다 닥친 일이야. 닥친 일. 잠깐 잊고 있었는데, 출판사에 넘겨주기로 한 그 많은 원고는 어떻게 줄 것인가. 억장이 무너지네.(웃음)

 

김도언 : 이번엔 좀 다른 질문을 드려볼게요. 문학의 위상이라는 게 계속 변하잖아요. 사회적인 변화에 영향을 받으면서 말이죠. 문학이 70~80년대만 해도 시대적인 어젠다를 끌고 가고, 제시했었잖아요. 시인들도 시대적인 교사 역할을 했었고요. 그런데 90년대와 2000년대의 문학적 분위기가 다르다는 거죠. 그런 것과 관련해서 선생님이 시를 쓰면서 의도한 어떤 전략 같은 게 있는지.

 

황인숙 : 내 시에서는 전략 같은 건 없어. 특히 시를 쓰는 건 좀 고리타분한 걸로 느껴지잖아. 나 어렸을 때는 발레를 한다거나 피아노를 한다거나 그런 건 세련된 건데, 요즘은 시를 쓴다고 하면, 어린이가 창을 배우는 그런 느낌을 가지는 거 같아. 내가 별다른 시인의 의식 같은 걸 가지지 않고 살았다고 했잖아. 그건 능력이 없는 것이기도 해. 여유가 없는 것이기도 하고, 정신이 없는 것이기도 해. 시의 위상은 굉장히 낮아지고, 시집도 진짜 안 팔리는 시대지. 내 조금 앞 세대인 김정환 시인만 해도 십만 부가 나갔다고 해서 내가 그 말 듣고 엄청 놀랐거든. 요새는 시집이 그렇게 팔릴 수가 없지. 그런데 너무 이상한 게 있는데. 그렇게 독자도 없고, 안 팔리는데 시는 굉장히 좋아졌거든. 젊은 시인들. 뭐, 진은영이니 김소연이나 이현승이나 김언이나. 나는 그것이 참 중요한 걸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 불리한 시대적 상황에서 시가 홀로 고군분투하는 것. 그게 시 자체의 힘 같은 게 아닐까 생각이 드는 거야.

 

 

자유로운 자의 꿈

 

황인숙 선생님의 상징적인 페르소나는 잘 알려진 대로 고양이다. 등단작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에서부터 고양이가 등장하니까. 선생님과 동고동락하는 란아, 복고, 명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 마리의 고양이는 황인숙 선생님의 행복한 반려다. 고양이는 “숨탄 연약한 것”에 대한 선생님의 타고난 연민을 가장 극적으로 강력하게 자극하는 존재다. 그리하여, 시인으로 하여금 매일매일 동네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내며 길고양이 밥을 주러 다니게 한다. 선생님은 당신이 돈을 많이 벌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사람들을 시켜서 길고양이 밥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선생님이 정말 돈을 많이 벌어서 길고양이 밥을 주는 사람들의 ‘고용주’가 되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 가능했으면 좋겠다. 이 세계는 그런 좋은 고용주도 가져보아야 하니까.

 

김도언 : 고양이를 언제부터 좋아하셨어요?

 

황인숙 : 고양이를 싫어한 적은 없어. 그런데 옛날에는 강아지랑 더 친했었는데, 지금은 고양이랑 친하게 된 거지.

 

김도언 : 선생님은 길고양이들에게 매일 밥을 주는데, 고양이가 선생님한테 뭔가를 주기도 하나요?

 

황인숙 : 고양이는 그냥 바라보고 있으면 무언갈 항상 줘. 그래서 난 집에서 고양이 키우는 거 추천해. 그런데 길고양이 돌보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야. 밥을 들고 다니는 게 너무 무겁고 많은 시간을 써야 하고.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들은 정신 치료를 주기적으로 받아야 할 것 같아. 캣맘들을 연민에 중독된 존재로 보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은데, 중독이 안 돼. 볼 때마다 새로운 고통인 거지. 내성이 생기지도 않고. 그리고 고양이는 어떤 상징 같은 것도 아니야. 상징이라고 하기엔 엄청 예쁘거든!

 

개인적으로 내게 시인 황인숙은 ‘자유로운 자’, 좀 더 부연하면 ‘고통에서 자유로워진 사람’으로 다가온다. 이때의 자유는, 분별력과 용서, 초월과 탈속 같은 이미지의 호위를 받으면서 시인의 이미지를 고유하고 매력적인 어떤 것으로 만든다. 황인숙 선생님은 걸어서 올라가기 힘든, 해방촌 고지대의 옥탑방에서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매일매일 어떤 사역처럼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길고양이의 소외와 고통을 마주하러 다닌다. 이것이 시인이 짜둔 생활의 전선이다. 결코 풍요로울 수 없는 삶의 조건이다. 하지만, 아무도 황인숙 시인으로부터 남루나 곤핍을 발견해내지 못한다. 그것은 시인이 그렇게 보이지 않도록 위장을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사뿐히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새로 나온 천 원짜리 지폐를 예쁜 꽃잎처럼 나눠주던 것처럼, 천진하고 맑은 영혼의 명령대로 그가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그는 나쁜 시인일 가능성이 절대로 없다.

 

 황인숙-캐리커처.jpg

 

황인숙은 1958년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가 당선되면서 시단에 데뷔했고, 동서문학상(1999)과 김수영문학상(2004)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1988), 『슬픔이 나를 깨운다』(1990),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1994),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1998), 『자명한 산책』(2003),『꽃사과 꽃이 피었다』(2013)이 있다. 산문집으로는 『우다다 삼냥이』(2013), 『해방촌 고양이』(2010), 『인숙만필』(2003) 등이 있고, 소설 『도둑괭이 공주』(201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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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도언 | 이흥렬(사진)

김도언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여섯 권의 소설책과 세 권의 산문집, 한 권의 평전을 펴냈다. 지금은 문학적 관점을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 시각적 이미지 작업과 연계해 세계와 타자를 읽어내는 실험을 하고 있다. 좋은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실존적 조건에 대한 통찰과 아울러 삶의 총체성에 대한 상상력과 감수성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https://www.facebook.com/doeon.kim.58

이흥렬(사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와 밀라노 IED 사진학과 졸업. 인물사진과 나무사진을 주로 찍고 있으며 최근의 작업은 '푸른 나무(Blue Tree) 시리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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