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요~ 둘이서~ 제주도의 명절상
하루한상 – 세 번째 상 : 제주도 명절상
내 남편의 성은 고씨. 그렇다. 그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남자다. 남편을 따라 첫 명절을 보내러 제주도로 왔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제주도이다.) 그래서 세 번째 상은 제주도 명절상.
7박 8일 명절 나들이
나의 제주도 첫 방문은 2년 전이었다. 그러니까 서른을 넘겨서야 제주도를 처음 와 본 것이다. 그것도 일로 온 것이라 관광을 해보지도 못하고 회도 못 먹었다. 그런데 이듬해 남편을 만나 올해 결혼하면서 나는 제주도를 잘 모르는 ‘육지 며느리’가 된 것이다. 하지만 제주시에서 나고 자라 20년을 산 남편도 당황스럽게 성산일출봉, 우도 등 관광지를 가보지 않았다고 한다. (마치 서울 사람이 남산 서울타워나 경복궁을 가보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지만..) 그래서 이번 추석에 7박 8일 동안 섬을 경험해보자고 계획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제주도를 책으로 먼저 알게 됐다. 결혼을 앞두고 우연히 책 한 권을 발견했는데 『올드독의 제주일기』 였다. 귀여운 개 두마리와 제주도로 이주한 만화가 쓴 ‘도시 사람의 제주 적응기’이다. 귀여운 일러스트와 함께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이번 나들이 때 다시 이 책을 챙긴 것도 이 때문일까. 이제 7박 8일 시작!
내려간 첫날 저녁으로 먹었던 갓돔과 히라스 그리고 한라산 한 잔
남다른 제주도 명절 준비
명절 3일 전에 내려온 나는 어머니 옆에서 장보기, 음식 장만 등 제수 준비를 도왔다. 그래도 나름 어렸을 때부터 차례 지내는 걸 봐왔기 때문에 별로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몇 가지 놀라운 포인트들이 있었다.
첫 번째 산적용 고기양이다. 소고기 3kg 5근 15인분, 돼지고기 6kg 10근 30인분. 그것도 덩어리째로 구입하시는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산적을 부치는 방식이 집집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 서울에서는 돼지고기-파-맛살 대충 이런 순서로 꼬치에 끼우는데 그 고기양이 1근을 넘지 않는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산적을 돼지고기로만, 소고기로만, 이런식으로 하기 때문에 고기양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이 산적을 ‘적갈’이라고 부른다. “애야 적갈 가져와라” 하셔서 젓갈을 가져갔더니 “아니 산적 말이야” 하셔서 헷갈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전과 적갈들. 마른두부부침, 표고버섯전, 돔전, 돼지고기적갈, 소라적갈, 단호박전, 소고기적갈, 한치적갈
(정각 기준. 시계 반대 방향 순서)
두 번째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들이다. 가장 재밌었던 건 빵이었는데 소보로, 카스테라, 단팥빵 등 원하는 빵을 올린다고 한다. 과일도 사과, 배, 감만 올리는 줄 알았는데 제주도에서는 취향대로 올린다. 예를 들어 멜론, 바나나, 한라봉, 포도 등이 준비되면 상관없이 올린다.
이런 일련의 상차림을 보며 제주도 여성 맞춤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부터 해녀로 바깥일로 바빴던 제주도 여인들도 예외 없이 명절 음식을 차려야 했을 테다. 그래서 이렇게 실용적이 된 게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Respect 제주도 여인들!
준비된 차례상 한 상. 소보로와 멜론의 모습이 이채롭다.
‘맹질 먹으러 간다’ 릴레이
제주도에서는 명절 당일에 친척들의 집을 방문하여 차례상에 절을 하고 준비한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다. 많이 돌면 하루에 5~6끼를 먹어야 하는 셈이다. 원래 여자는 가지 않고 음식 준비를 하지만 첫 명절이기도 하고 제주도 풍습을 체험해보라고 부모님께서 ‘맹질 먹으러’ 보내주셨다. 제주도에서는 ‘명절을 쇤다’를 ‘맹질 먹는다’라고 한다. 작은 할아버지네를 시작으로 둘째 할아버지네를 돌면서 손님을 위한 음식을 보니 우리 집에서는 준비하지 않았던 잡채나 오징어 숙회 무침 등이 보였다. 집집마다 손님 접대를 위해 필살기 음식을 준비하는데 홍어, 돔갈비양념구이, 군소(굴맹이), 소라 젓갈 등등이 눈에 띄었다.
순서상 우리 집은 네 번째였고 순식간에 제를 지내고 번개같이 한 상을 비운 남자들은 다섯 번째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아침 7시 반부터 시작된 릴레이는 오후 3시에 끝났다.
둘째 할아버지네 명절 손님상. 모두들 소라 젓갈에 밥 한 그릇을 뚝딱했다. (나 빼고)
그리고 섬살이에 대한 고찰
제주도 남자를 만나면서 제주도에 관한 책이라면 한 번씩 들춰 보게되었다. 그 중 『제주에서 뭐 하고 살지?』 는 <스몰 비즈니스로 시작하는 제주 라이프 길잡이>라는 부제답게 ‘제주도로 내려와 살게 된다면’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다음 질문인 ‘그럼 뭐 하고, 뭐 먹고살지?’에 대해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라고 보여주는 책 일 것이다. 책에서 나온 빵집인 르 에스까르고가 집 근처에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다. 명절동안 밥만 먹어서 인지 빵이 당기던 참. 빵집과 카페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떨어진 모양새인 르 에스까르고. 카페에선 커피에 샌드위치를 먹었고 빵집에선 무화과 호밀 바게트 등 한가득 빵을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주민이 계속 늘어나고 땅값은 쭉쭉 오른다는 제주도에 무작정 오기보다 ‘무얼 할까?’ 생각하고 오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첫 제주도 추석 연휴가 끝나가고 있었다.
르 에스까르고 카페 전경. 대각선 맞은편엔 빵집이 있다.
(부록) 남편의 상
혼저옵서예. 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남편 고 모씨입니다. 부록에 앞서 한 가지 짚어보면, 요즘 육지 사람들은 ‘제주’라고 많이들 쓰는데 제주 원주민들은 주로 ‘제주도’라고 합니다. 그만큼 섬사람이라는 정체성이 강하며 서울이건 부산이건 모두 ‘육지’라고 표현합니다. (예, 육지 사람, 육지 며느리 등등)
그리고 이번 연재부터 부록 남편의 말을 ‘남편의 상’으로 명명하려고 합니다. 지난 연재처럼 적어도 2주에 한 번쯤은 저도 제대로 된 밥상을 차려보겠습니다. 이번엔 쉬어가는 연휴인 만큼 간단히 라면을 준비했습니다.
7박 8일간 낯선 풍습과 육지 며느리 환대로 정신없는 여편님을 위해 명절 다음날 한라산 등정을 제안했습니다. 부모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샌들 신고도 갈 수 있는’ 한라산 어리목-윗세오름-영실 탐방 코스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더없이 좋아서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백록담, 곳곳의 오름들, 야생 노루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동방의 킬리만자로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한라산 등정의 백미는 각 코스의 휴게소에서 끓인 물까지 부어주는 친절한 사발면입니다. 이미 전 세계에 소문이 나버렸는지 라면을 기다리는 줄은 각국의 여행객들로 끊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후식으로 초코파이도 준비되어있지만 김밥은 스스로 챙겨야 합니다. 엄마는 더 이상 장가간 아들에게 김밥을 싸주지 않으니까요.
백록담을 목전에 두고 먹는 사발면 한 그릇! 김밥이 없어 더는 올라갈 기력이 없었습니다.
제주에서 뭐 하고 살지?정다운 저/박두산 사진 | 남해의봄날
시골 마을에 자신만의 비즈니스로 제주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열 명의 이야기를 제주 이주 3년차의 부부가 직접 발로 뛰며 모았다. 이 책은 제주 창업 생생 스토리는 물론, 이주와 창업 준비 과정, 소요 예산, 경험을 통해 배운 제주 비즈니스 알짜 정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스몰 비즈니스로 도전한 이들의 구체적인 창업 노하우를 꼼꼼히 담아 제주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일과 삶의 해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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