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음악 > 주목, 이주의 앨범
세월을 넘고 넘어 20년 만에 다시 만났다. 세 멤버로 온전히 활동한지는 고작 3년이지만 대중의 뇌리, 그리고 음악사에서 그들이 남긴 여운은 길다. < 달콤한 인생 >, < 도둑들 >, < 암살 >등 영화음악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달파란, 일렉트로닉 그룹 'EE'와 스타일리스트로 활동 중인 이윤정, 차승우와 함께 밴드 '더 모노톤즈'를 결성한 박현준까지. 이제는 완전히 다른 노선에 서있는 것 처럼 보이나 그들의 만남은 여전히 흥미롭고 신선하다. 과거의 형태를 그대로 복각(復刻)하거나 파격적인 파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간과 호흡을 타고 흐르기 때문이다.
< pppb >의 곡수는 아쉬울만큼 적다. 선공개된 「ㅈㄱㅈㄱ」은 기존의 이미지와 가장 유사하다. 반복적인 단어로 악을 쓰던 「딸기」나 「안녕하세요」처럼 지긋지긋하게 지긋지긋을 외치며 자신들의 재림을 세상에 알렸다. 다음으로 발표한 타이틀곡 「Over and over」는 삐삐밴드 하면 연상되는 선입관을 서서히 지워버렸다. 데뷔 당시 충격적인 등장과 인상은 역으로 그들을 어떠한 특정한 형태로 가둬버렸기 때문에, 이 노래는 더욱 의미를 가진다.
"크루멜리스를 먹으면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아. 먹어볼래?"
-삐삐
말광량이에게 여전히 세상은 뒤죽박죽이고 괴이하다. 이상하게만 보이는 눈 앞의 풍경이 나의 착각인지, 세상의 착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삐삐밴드는 여전히 이런 현재를 뒤흔들고 조롱한다. 「로보트 가나다 라마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콘셉트로 만들어졌으며 '이상한'에 걸맞게 음절과 의미를 완전히 분절시켜버린다. 누군가에게는 괴기하게 들릴 이런 방법은 음악을 접근하는 또 하나의 재밌는 시도가 된다. 자칫 'i feel love'로 오독하기 쉬운 「i feel rove」에선 부와 가난에 대해 경고를 아끼지 않는다. 삐삐밴드식의 디스코 음악으로 도나 썸머(Donna Summer)의 「I feel love」를 오마쥬했다.
시선은 여전히 삐딱하지만 방식만은 1995년식이 아니라 2015년식이다. 이들의 음악이 늙거나 고리타분해 보이지 않는 건, 시대를 감지하는 촉수가 살아있는 덕분이다. 이는 삐삐밴드가 남긴 강렬한 각인들이 쇼킹한 이슈가 전부가 아니라 남다른 감각이 거의 모든 것이었음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증명한다.
2015/08 김반야(10_b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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