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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적인 음악을 표현한, 혁오 < 22 >
혁오(Hyukoh) < 22 >
물론 혁오가 그저 힙한 데서 그쳤다면 밴드의 이름이 이토록 열렬하게 회자되지 못했을 지 모른다.
여기저기에서, 아니, 이제는 누구나 혁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미 국내의 록, 힙합 장르를 초월한 뮤지션들이 혁오를 향해 'Like'를 쏟아냈다. 유희열은 "가로수길, 홍대, 이태원, 성수동쪽의 트랜디한 노래를 원한다면 답은 혁오"라고 밝히기도 했다. < 무한도전 >까지 출연하게 되면서 그들은 이제 한국 힙스터(hipster)의 아이돌로 자리 잡았다. '힙스터' 만큼 그들의 스타일과 음악을 잘 표현하는 단어가 있을까. 힙스터는 남들과는 다른 '취향의 우월감'과 이에 대한 여러 모순 때문에 조롱당하지만 핫플레이스나 유니크한 아이템을 찾아내는, 세련을 달리는 사람들임에는 틀림없다.
혁오는 이런 힙(Hip)에 대한 감각이 파닥거린다. 그리고 그 흐름에 보폭을 맞출 줄 안다. 최근 뉴욕 힙스터들의 경향은 장르의 혼성화이다. 이를테면 기존의 장르들을 이리 저리 뒤섞으며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보이게 하는 식이다.
사이키델릭 록의 과장된 리버스와 부유하는 공간감, 이를 네오 소울의 창법과 훵크, 힙합 리듬을 믹스한다. 그러면 한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그루브하고 몽롱한 음악들이 탄생한다. 혁오의 노래도 이런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제임스 빈센트 맥모로우(James Vincent McMorrow)가 연상되는 보컬스타일, 맥 드마르코(Mac DeMarco)가 가진 깔끔한 톤의 기타, 하우 투 드레스 웰 (How To Dress Well)의 우울함 등 다양한 힙스터 뮤지션의 장점이 적절히 믹스되어 있다.
힙스터에겐 무엇보다 '쿨'함이 타고 흘러야 한다. 그 속내의 무기력과 외로움, 진정성과 아이러니는 반드시 '쿨'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무신경한듯 건조한 말투, 세상과 한발자국 떨어진 경계인으로서 시선도 필요하다. 혁오는 직접 그린 앨범의 이미지처럼 탁한 채도와 음울한 톤으로 더욱 시크하게 스스로를 채색한다. 개성을 돋보이게 하는 이미지와 스타일도 중요하다. 그는 한국적이지 않으면서도 한국적이고, 복고지만 촌스럽지 않게 자신을 코디한다. 파격적인 헤어스타일(?!)과 패션, 웰메이드 뮤직비디오는 음악을 뒷받침하는 디테일한 장치기도 하다.
물론 혁오가 그저 힙한 데서 그쳤다면 밴드의 이름이 이토록 열렬하게 회자되지 못했을 지 모른다. 「와리가리」, 「위잉위잉」 등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정형화되지 않은 가사는 음악에 대한 집중력과 가독성을 높인다. 복잡하게 어지럽혀 있는 사운드 속에서 오혁의 목소리는 길을 잃지 않는다. 소년 같이 앳되고 조금 어눌하기까지한 보컬에 '언제부턴가 주위에 남는 친구가 많아. 어깨에 슬쩍 손을 올리는 너희들은 도대체 누구야' 같은 직선적인 내용이 더해지면 시쳇말로 '심쿵'하며 감정KO를 당하기 일쑤다. 그의 목소리는 소울이나 R&B의 가성에 가까워 매칭하기도 좋다. 이미 프라이머리와의 작업에서 이를 증명했고, 앞으로도 다채로운 장르의 혼합색도 가능할 것이다.
혁오의 등장, 그리고 그의 앨범은 2015년 인디씬에서 단연 두드러진다. 하지만 그의 음악에서 해외 뮤지션들의 잔향을 지우기는 쉽지 않다. 이런 힙한 뮤지션의 행보는 '트랜드의 개척' 혹은 '스타일의 수입'이라는 갈림길에 오르게 된다. 만약 '혁오 밴드'가 아닌 '힙스터 밴드'의 길을 선택하면 그는 핫한 스타일을 복제하는 아류로 전락하기 쉽다. 다행히도 밴드 혁오의 목표는 멋있는 음악을 재미있게 '오래' 하고 싶은 것이라고 한다. 이들에게 가지는 희망은 여기에 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들의 <32>, <42> 앨범을 기대하고, 기다린다.
2015/07 김반야(10_b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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