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뭐예요?
나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취미들, 관심사들
지금 아무리 쉬어도 쉰 거 같지 않고,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한 자신을 마주하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질문해보기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거, 가장 행복하게 즐겼던 내 취미가 뭐였지?”
어렸을 때부터 참 관심사도 많고, 욕심도 많았던 것 같다. 물론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이 그렇지만, 어린 시절 나의 장래희망은 한 오십 번쯤은 바뀌지 않았을까 싶다. 그 때만 해도 모든 소녀들의 꿈이었던 미스코리아부터 피아노를 배울 땐 피아니스트, 마구 낙서하던 게 좋아질 땐 화가, 뉴스 속 말 잘하는 언니가 멋있어 보였을 땐 아나운서, 어느 드라마를 보면서는 의사가 되고 싶기도, 변호사가 되고 싶기도 했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마다 ‘그래, 그래~ 다 할 수 있어’ 라고 격려해준 엄마에게 새삼 창피하고도 고맙네.)
하지만 역시 사람은 현실 속 적응의 동물이 아니던가. 하고 싶다고 모든 걸 다 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되고, 원하는 걸 하나 얻기 위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지도 알게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어느 새 남들처럼 평범하면서도 무난한 삶을 향해 부단히 지내왔던 듯 하다.
어린 시절 그 ‘꿈’에 대한 열정이 비록 지금은 흐릿 흐릿 해졌지만, ‘취미’, ‘관심사’에 대한 ‘애착’은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은 요즘이다. 내가 생각하는 ‘취미’라는 건, 단순히 개인이 즐겨 하는 그 무언가 이상으로 ‘내가 꼭 하고 싶고, 하지 않으면 안될 것들’이다. 생계를 위한 삶 속의 내가 아닌, 자아실현이란 막연한 꿈을 이루기 위한 내가 작지만 가장 큰 성취를 느낄 수 있는 바로 그런 것.
“취미가 뭐예요?”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듯하다. 누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사실 나도 선뜻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막막할 것이다. 왜냐? 취미가 없기 때문에? 아니다. 그 반대로, 너무나도 많은 취미들, 관심사들 때문이다.
*20대 초반, 참으로 열정있던 그 때의 내가 필름 속에 담겼다.
아마 일명 ‘출사’ 라는 것을 나가기 전에 남겼던 한 컷.
20대 초반에는 아는 선배가 줄곧 들고 다니던 ‘필름 카메라’에 꽂혀, 남대문 시장을 발품 팔아가며 20년은 족히 넘은 필름 카메라를 사들이고 주말마다 서울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대던 때도 있었고, 어느 작은 화랑을 구경하고 돌아온 날에는 나도 그림을 그려보겠다며 36색 아크릴 물감과 붓 하나를 사 들고 방 구석에 들어앉아 말도 안 되는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었다. 그러다 또 어느 날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기타 소리에 심취해 ‘나도 기타를 배워야겠다’란 충동적 생각에 바로 기타 하나를 구입해, 기타 코드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손으로 밤새 연습하다 손가락이 퉁퉁 붓고 물집이 잡히기도 했었다.
8년 전의 취미가 남긴 추억의 사진.
그 때의 이 골목은 지금은 어떻게 변해있을는지? 오랜만에 들여다본 사진을 보며 감회에 젖어본다.
이렇게 시시 때때로 하고 싶은 것들, 관심사들, 취미가 바뀌는 나는 어찌 보면 뭐 하나 진득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은 아닌 듯 보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냥 일종의 ‘허세’를 위한 보여주기식 취미생활을 즐기는 이상한 여자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따금씩 난 위의 모든 취미들을 여전하게 즐기고 있다고. (위에 언급하지 못한 또 다른 많은 것들과 함께.) 어쩌면, 내 취미는 “새로운 모든 것들에 도전해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뜬금없이 취미 얘기를 하게 된 건, 어느 날 문득 ‘바쁘다’, ‘피곤하다’, ‘지친다’ 등등 이런 핑계들로 그 동안 내가 즐겨왔던 것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기 때문이다. 피곤하니까 좀 쉬어야지... 바쁘니까 나중에 해야지... 하면서 먼지 속에 잠들어 가는 내 취미의 역사적 잔재(?)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 타협하며 내 열정을 어느 구석에다 내팽겨쳐놓은 것만 같은 기분에 내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웠다.
나를 위한 시간, 나를 위해 몰입하는 시간을 갖는 것. 어쩌면 이건 현실을 살아가는 나에게 스스로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시간을 주는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어떤 것에 몰입하고, 오랫동안 자신의 취미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왜 저렇게 쓸데 없는 걸 하고 있어?”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난 그들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애착 있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30년간 수많은 장난감을 모으고 있는 중년의 한 남성의 이야기를 담은 책 『나는 장난감에 탐닉한다』를 읽고 있자니, 이 사람 참 멋지다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위한 장난감을 산다는 핑계로 시작한 그의 장난감 컬렉션의 열정은 단순히 장난감을 모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본인 안에 있는 ‘어린아이의’ 열정을 다시 발견하고, 제대로 된 한국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를 불지폈음은 물론, 그의 이야기가 담긴 블로그엔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좋아할 각종 장난감과 특별한 이야기들로 많은 사람들과 유쾌하고 흥미로운 정보를 나누고 있다.
가끔씩 일상에 지쳐있는 친구들이 “요즘 정말 손 하나 까딱하기도 귀찮아~”, “요즘 왜 이렇게 힘들고, 뭘 해도 의욕이 없어~” 라고 말을 할 때면, “네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거, 그걸 해. 예전에 네가 정말 좋아했던 그 취미 있잖아. 그걸 다시 시작해봐.” 이 얘길 듣는 친구들은 “에이, 바빠서 요즘에 하지도 못해”라고 하면서도 문득 잊고 있었던 본인들의 열정 넘쳤던 그 어느 순간을 곱씹으며 “그래, 그거나 다시 한 번 해볼까?”라며 반짝이는 눈을 보이곤 한다.
나 역시도 요즘 필름 카메라의 그 첫 롤을 인화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다시금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조금씩 꺼내어 보고 있다. 비록 나이도 조금 더 들고, 주부가 되었고, 이제 곧 아이도 태어나지만 일상을 핑계로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진 말아야지. 시간을 쪼개어 내가 가장 설레었던 그 순간들을 다시 추억하며 내 진짜 취미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요즘의 취미라면, 새로운 ‘맥 OS’ 세계에 빠져드는 것. 윈도우만 20년 넘게 써왔던 나에게 새로운 도전.
“그냥 맥북 하나 사고 싶었던 거 아니냐?”고 물으면..영 아니라 할 순 없지만, 최종 목표는 쓸만한 어플 하나 만들어 보는 것이다.
“바쁘니까. 몸이 힘드니까. 지쳤으니까.” 라는 핑계들로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에 대한 열정을 감추는 것이야 말로, 스스로를 더 지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지금 아무리 쉬어도 쉰 거 같지 않고,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한 자신을 마주하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질문해보기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거, 가장 행복하게 즐겼던 내 취미가 뭐였지?” 그리고 그렇게 발견한 취미를 다시 한 번 탐닉하며, 나 자신을 위한 성취를 되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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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프리덤 속에 살던 ‘유여성’에서 ‘유줌마’의 삶을 살며 본능을 숨기는 중이다. 언젠가 목표하는 자유부인의 삶을 꿈꾸며.
예스24 홍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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