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소년의 손은 흔들리고 있었다
굳이 로버트 카파의 저서인 『그때 카파의 손은 흔들리고 있었다』 를 거론할 것까지야 없겠지만 나는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종전사진과 여행사진을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파도의 사진은 초점이 나갈 때야 비로소 출렁인다. 이렇게 변명하고 정색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편집자의 아량 덕분이나 그렇다고 그와 구구절절 대화하는 사이는 아니다. 나와 편집자의 메일 내용은 주로 이러하다.
바다소년
-원고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 사진은 꼭 써주세요.
편집자
-좀 더 재미있게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진은 흔들려서 도무지 쓸 수가 없습니다.
좋아하는 사진을 퇴짜 맞고 나름 화가 난 나는, 편집자가 얼마나 사진에 정통할까 싶어, 그의 블로그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나보다 좋은 카메라를 여러 대 소유하고 있었고, 경력도 제법 된 아마추어 사진가처럼 보였다. 그의 글 중엔 이런 대목이 있었다.
“사진은 기계빨(기계빨은 사진발에서 파생되어 나온 은어)이다.”
똑딱이 카메라 하나로 버티고 사는 나는 입을 꼭 다물었다. 편집자가 가까이에 있으면 소주와 맥주의 양을 9(소):1(맥)로 비벼서 한잔 드리겠지만, 그러지도 못해 속으로 끙끙 앓던 중에 기획해 낸 것이 이 특집이다.
버리기 아까운 사진을 다시 한 번 싣게 해 준 편집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덧붙이자면, 편집자 당신이 찍은 사진, 구려요.
다섯 갈매기와 파도와 시간의 기억
잃어버린 이청준을 찾아서-전남 장흥 진목 마을과 사라진 포구편
이 사진은 이청준 선생님의 생가를 찾고, 그의 흔적을 찾아 나선 여행 때 찍은 사진이다. 마량의 한 횟집에서 발견한 이청준 선생님의 글귀가 나에겐 오래도록 잊히지 않고 있다. 사진의 오른쪽 윗부분은 어머니 앞에서는 차마 흰 머리카락일 수 없어 짓게 된 未白이란 호와 그가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여행에서 나는 식당 주인에게 우문(愚問)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이 액자 산다고 한 사람은 없었나요?”
“왜 없어. 얼마나 많이 찾아오고, 또 돈도 많이 불렀는데.”
“그런데 왜 안 파셨어요?”
“이 사람아, 이걸 어떻게 파나.”
이 사람아, 이 사람아, 이, 이. 그래, 그 ‘이’야 말로 나의 우문을 지적해준 큰 언어였으며, ‘어떻게’란 이 액자의 소중함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 소중함이란……. 미백이 적어둔 그대로다.
다섯 갈매기와 파도와 시간의 기억.
고독한 낚시
느리게, 보다 느리게 걷는 섬 증도편
사진을 찍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대상을 기다리는 것과 다가가는 것. 낚시를 하는 방법 역시 마찬가지다. 삶을 살아가는 것도, 행복을 찾는 것도, 혹 죽음을 마주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고독한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이 사진은 아시아 최초 슬로우 시티인 증도의 갯벌에서 짱뚱어를 낚는 노인을 찍은 사진이다. 새벽 무렵 넓은 갯벌에서 신성한 의식처럼 치러진 그의 낚시에는 미끼가 없다. 그는 기다리지 않는다. 낚시를 멀리 던지고 순식간에 짱뚱어를 낚아챈다. 찰칵.
다가가는 사진을 배운다.
날아라 멸치
대변으로부터 날아라, 멸치-부산시 기장군 대변포구편
날아라, 멸치라는 제목은 김애란의 소설
『달려라, 아비』 에서 가져온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앞서서
『달려라, 하니』 가 있었다. 트랙을 벗어나서까지 눈을 감고 달리는 하니에게서 감동을 받은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삶의 감동은 그러한, 눈감는 순간에 온다.
사진처럼 실제로 봄철의 대변포구에는 멸치털이가 한창이다. 그때 선원들의 입을, 그 검고 깊은 그 입 속을 들여다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니가 엄마를 향해 달리겠다는 마음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숭고한 의식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함지박만한 입으로 노동을 노래한다. 어두운 포구를 밝히는 전조등만큼이나 힘찬, 그들의 노래를 들어라. 날아라, 멸치. 그물에 튕겨 나는 것은 멸치뿐만이 아니다.
해는 떠오를 때가 가장 눈부시다
그것은 아버지의 눈물이라네-부산 서구 암남동 송도편
내 아버지에 관해 쓴 글이 나가고 난 뒤, 주변에서 그리고 댓글로도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 분들이 많았다.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아버지는 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냈거니와 재활과 철저한 자기관리로 등산이나 수영도 거뜬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여름 아버지는 매일같이 백사장으로 나갔다. 상의를 벗어던지고, 송도 해수욕장의 만을 끝에서 끝까지 왕복으로 헤엄쳤다고 한다. 잠영에서 개구리헤엄까지 자유자제로 구사했을 아버지의 수영을 눈으로 직접 보진 못했지만 어떻게 했을지 짐작이 간다.
깊은 숨을 참고 간신히 내쉬고, 더 깊은 숨을 참고 간신히 내쉬고, 우리네 아버지들은 그렇게 살아가신다.
더 싣고 싶은 사진이 많고,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앞으로도 포구 이야기는 계속 될 것이다. 그러는 동안, 편집자와 나는 관계가 돈독해질 것이고, 나는 그에게 타 줄 폭탄주의 비율을 점차적으로 조율할지도 모르겠다. 가벼운 기획으로 시작하여, 벌써 반년, 그러니까 15회 분량의 연재를 끝냈다. 다녀온 포구, 앞으로 떠날 포구, 삼면이 바다로 된 축복받은 국가에서 태어난 이상 내가 갈 곳은 너무 많다. 그럼에도 나는 단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쩌면 나의 글은 모두 동어반복일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포구를 찾고 포구를 사랑했으면 좋겠다는 것. 해는 포구에서 제일 먼저 뜨고, 가장 늦게 진다는 것. 그 속에 삶이 있다는 것.
From. 바다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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