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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기술이 필요한 시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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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툴 가완디는 자신의 처할머니의 노쇠함으로 시작해서 아버지의 죽음으로 끝을 맺으면서 외과의사로서 만나온 환자들의 사례를 생생하게 들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해온 것들, 그리고 다양한 전문가와 요양시설들을 취재한 내용들을 소개하면서 ‘죽음’이란 만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지금은 잘 사는 기술 뿐 아니라 죽는 기술(ars moriendi)가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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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중반인 내 어머니는 혼자 사신다. 당뇨병이 있기는 하지만 운동을 꼬박꼬박하시고 모임에도 정기적으로 나가시면서 지내신다. 그러던 어머니가 작년 가을에 동네에서 운동으로 걸으시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시면서 쇄골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셨다. 게다가 오른 쪽이었다. 다행히 철심을 박아야하는 수술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대신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어서 단단히 고정을 하고 오른 팔을 쓰지 않은 채 몇 달을 보내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친 것 같이 큰 부상이 아니고, 쇄골만 부러진 것이라 몇 달 지나면 좋아진 것에 감사했다. 그렇지만 생활이 몹시 불편해지고, 연세가 있어서 엑스레이을 한 달에 한 번 찍어도 영 잘 붙지 않자 어머니의 낙담은 눈에 띄게 커 보였다. 그러면서 갑자기 내게 임종과 관련해서 준비를 어떻게 하라는 말을 하셨다. 아마도 어머니 마음에 독립적으로 잘 살아오시던 삶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울 수 도 있고, 이제는 서서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생겼었던 것 같다.

 

 

어떻게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맞이할 것인가


환갑만 되도 온 동네가 잔치를 하던 세상이 바로 이전 세대였다. 그러나 이제는 60살이 되었다고 축하를 하지 않는다. 그만큼 오래 살게 되었다. 2014년 WHO의 보건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여자 84세, 남자 78세로 1990년의 76세와 68세 비해 불과 25년 사이에 또 10년 가까이 늘어났다. 의학과 경제수준의 발달과 함께 우리는 아주 아주 오래 살게 되었다. 이는 모든 중위권 이상의 개발국가의 당면한 현실이다. 페니실린의 발명과 함께 감염질환을 획기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되었고, 영유아 사망률이 낮아지면서, 평균수명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거기다가 70년대 이후의 암의 진단과 치료법의 발전, 심혈관 질환의 치료법이 좋아지면서 더욱 우리의 삶은 죽음의 공포로부터는 많이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이전 세대에서는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인가’가 화두였다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맞이할 것인가’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당면한 삶의 화두가 되는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70년대 미국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20%가 안됐지만 지금은 14%이며, 일본은 20%가 넘는다. 중국은 세계최초로 노인인구가 1억명을 돌파했다. 

 

이런 고민은 꼭 지금 노인인 당사자뿐 아니라, 노인인 부모를 둔 나와 같은 사람, 그리고 곧 노인세대로 진입할 중장년 층 모두에게 필요하다. 그런 고민에 대한 답을 줄만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왔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부키)다. 가완디는 미국의 외과의사이자 뉴요커의 칼럼니스트다. 그는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과 같이 현대 의학이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쉽게 또 정확한 글을 써왔다. 이번에 낸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문명국가들에서 이제는 인정하고 받아들여야하는 큰 주제인 ‘죽음’에 대해 자신의 사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식견과 광범위한 취재를 더해 써낸 책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던 노인이 그게 더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의존과 도움을 받아야하지만 그 안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노력들로 어떤 것이 있는지, 결국은 인간다운 마무리를 위해 ‘내려놓기’를 해야 하는 것의 중요함, 더 나아가 가족과 본인 모두가 죽음의 불가피함을 인정하게 되었을 때 해야 할 이야기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 순차적으로 생각하게 구성되어있다.

 

이야기는 가완디의 아내 캐슬린의 할머니 앨리슨 홉슨 여사가 오랫동안 자기가 독립적으로 살아오던 집에서 더 이상 혼자 살수 없게 되어 요양원을 찾게 되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한다. 미국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은 ‘거리를 둔 친밀감’이었다. 20세기 초반까지는 65세 노인의 60%가 가족과 함께 살았는데, 60년 초반에 25%로 떨어졌고, 유럽에서 80세 이상 노인의 절반 이상은 배우자 없이 혼자 살고 있다. 이는 나이든 부모를 혼자 살게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아시아 국가에서도 동일한 패턴의 경향으로 관찰된다. 이와 같이 노인들은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욕망이 있지만 어느 연령이 지나 자주적으로 생활을 챙길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하는 순간이 온다. 앨리슨 여사도 85세가 되면서 자주 넘어지기 시작하고, 삶을 잘 조직해내지 못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몸은 매우 복잡한 장치이기 때문에 하나가 고장 난다고 바로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복잡한 인체 시스템이 결함이 점점 늘어나게 되면 결국 한 군데만 고장이 나도 전체 시스템의 효율성 전체가 악화되는 시점이 오고 이때부터 노쇠한 상태에 생기는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 과정은 세포 메커니즘 전반에 걸쳐 일어난다. 그래서 노인병 전문가들은 “특이한 노화 과정의 징후가 있는 게 아니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허물어질 뿐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허물어져가는 노인들의 가장 위험한 징후는 넘어져서 생기는 골절로, 특히 고관절 골절이 생기면 40%가 요양원으로 들어가고 20%는 다시 걷지 못한다.

 

결국 앨리슨 여사도 자기 집을 떠나 요양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걸 보면서 아완디는 더 나은 요양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어 알아볼 계기가 되었다. 효율성을 위해 병원과 유사한 환경으로 만들어 집단생활을 하면서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곳이 대부분 이었다. 그런데 그런 곳이 아닌 새로운 개념의 요양원이 있었다. ‘어시스티드 리빙’이란 형식으로 전에 살던 곳과 유사한 독립적인 개인 아파트에 살고, 가구도 고를 수 있고, 반려동물도 키우는 것이 허용되며 자신의 일과와 규칙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곳이다. 처음에는 위험할 수 있다고 공격을 받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비록 늙었지만 자신의 삶을 직접 선택하고 자신의 가치를 유지한다는 것이라는 것이 결국 밝혀졌다. 실제로도 1988년 이런 형식의 노인주거 시설에 대해 조사를 해보니 삶의 만족도도 높고 건강도 유지되며 우울증 발병도 줄었으며 무엇보다 의료기관 이용 등이 줄어들면서 정부 보조도 20% 절감되었다. 체이스메모리얼 요양원은 식물과 동물을 적극적으로 키우고, 아이들의 탁아소를 1층에 만들어서 거주하는 노인들과 접촉을 자연스럽게 하도록 했다. 무료함, 외로움, 무력감을 공유하던 노인들이 적극적으로 개를 산책시키겠다고 자원을 하고, 아이들과 대화를 하면서 활동량이 늘어나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더 오래 살아갔다는 것을 증명했다.

 

가완디는 뒷부분은 자신의 아버지가 암을 진단받고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소개한다. 평생을 의사로 살아온 그의 아버지는 정력적으로 활동을 하다가 손의 마비를 경험하고 검사를 해보니 척수에 암이 있었다. 수술을 하면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된다는 말에 여러 명의 의사를 만난 후 그의 아버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수술을 미루고 하려던 삶의 계획들을 마무리 짓기로 결정한다. 가완디는 이 부분에서 비록 난치병, 불치병이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그 이후의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또 소중한 일이며 가치 있는 일인지 직접 경험한다. 병의 진행은 의외로 빠르지 않아서 몇 년간 가완디의 아버지는 영예로운 은퇴를 할 기회를 얻었고, 그가 두 번째로 소중히 여기는 일인 로터리 클럽 회장의 책무를 다한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는 수술을 받고 이후는 급격히 나빠졌지만 그 자신의 죽음은 헛되지 않고 본인과 가족 모두에게 후회만 남긴 것은 아닐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당사자인 가완디의 아버지 본인이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툴 가완디는 자신의 처할머니의 노쇠함으로 시작해서 아버지의 죽음으로 끝을 맺으면서 외과의사로서 만나온 환자들의 사례를 생생하게 들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해온 것들, 그리고 다양한 전문가와 요양시설들을 취재한 내용들을 소개하면서 ‘죽음’이란 만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지금은 잘 사는 기술 뿐 아니라 죽는 기술(ars moriendi)이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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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저/김희정 역 | 부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하고 인간답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 이를 성취해 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한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인간다운 마무리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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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저/<김희정> 역14,85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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