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불후의 칼럼 > 하지현의 마음을 읽는 서가
정신분석, 꼭 고전적인 방법이 아니어도 돼
정신분석도 실용적일 수 있다
비록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정신분석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흥미 있게 볼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격주 월요일,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추천하는 심리책 이야기, ‘하지현의 마음을 읽는 서가’가 연재됩니다.
1800년대 후반 그때까지 치료가 어려웠던 히스테리나 공포증 환자를 ‘말을 하는 것을 통해 치료(talking cure)‘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낸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을 처음 알렸다. 그 후 지난 백 년간 정신분석은 체계를 갖춰나갔다. 인간의 행동에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무의식이 의식세계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걸 인식하기란 매우 어렵다. 오직 자유연상을 하는 정신분석을 몇 년간 하는 것으로 서서히 무의식으로 접근을 해나가서 그 실체를 인식하면서 의식세계의 어려움과 증상들이 해결된다.
정신분석, 충분히 실용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정신분석은 점차 체계가 잡히면서 현재 일반적으로 카우치를 이용해서 환자는 누워있고, 정신분석가는 뒤에 앉는 형식으로 주 4회 이상을 수년에 걸쳐서 할 때 정신분석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지금 환자의 증상이 당장 좋아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의식적 갈등을 이해하는 것이고, 전이를 잘 만들어서 이용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정신분석가의 익명성, 중립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정신분석의 원칙은 오랫동안 잘 지켜져 왔다. 그러나 프로이트 이후 점점 단단해진 정신분석의 형식적 체제는 현대사회의 흐름에서는 따르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여겨질 일들이 많아졌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1주일에 4번을 정신분석가를 찾아가서 찾아가려면 오고가는 시간을 포함해서 3시간을 투자해야한다. 거기다가 몇 년이라는 긴 시간을 요구한다. 정신분석이 매우 훌륭하고 깊은 치료라는 것을 마음으로는 인정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약 없이 개인의 삶을 저렇게 희생을 해가면서 까지 정신분석을 받아야할 정도로 절박한 사람도 적어졌고, 비용문제도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대두되었다. 그래서 실제로 정신분석을 제대로 받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자신이 정신분석가가 되려는 수련과정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자조적인 비판이 있기도 했다. 그러면서 어느새 정신분석은 정신분석을 하는 사람도 줄어들고, 받는 사람도 줄어들어가는 쇠퇴기에 접어들어 가는 듯 보였다.
이런 상황에 샌프란시스코의 정신분석가 오웬 레닉(Owen Renik)이 “정신분석이 전통적 기법에만 갇혀있으면 안된다. 충분히 실용적으로 변화할 수 있고, 그런 기법으로 하더라도 정신분석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책을 써서 현대 정신분석이 처한 난관의 하나의 해법을 제시하려고 했다. 바로 『환자와 치료자를 위한 실용정신분석 (Practical Psychoanalysis for therapists and patients)』(눈 출판사)다. 오웬 레닉은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로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업을 하고 있다. 그는 정신분석학의 유명한 학술지인 계간정신분석(Psychoanalytic Quarterly)의 편집장을 10년 이상 했고, 미국 정신분석학회 프로그램의 디렉터의 역할을 맡아서 한 적 있는 사람이다. 즉, 이런 혁신적인 제안을 하고는 있지만 그는 정신분석계 내에서 탄탄한 입지가 있고 존경을 받을 근거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정신분석을 찾는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자신을 괴롭히는 증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대부분의 정신분석가는 긴 시간을 잡고 자기발견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증상이라는 병리에만 집중하면 역효과가 있다고 여기는 불일치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다보니 정신분석이 환자의 실제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벗어난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기만 하고, 도피를 조장하는 신비스러운 그 무엇으로 대중들이 인식하게 되어버렸다. 처음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도입하게 된 것은 어떤 치료로도 낫지 않던 히스테리 증상을 극적으로 개선하면서 발견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정신분석은 어느새 자기가 만든 형식적 테두리에 갇혀버린 비실용적인 치료기법이 되어버렸다.
꼭 고전적인 방식으로 하지 않아도 돼
오웬 레닉은 프로이트가 살아있던 1900년대 초반부터 중반사이에 얼개가 만들어진 정신분석의 기본 기법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거기에 맞춰서 개방적인 태도로 바꿀 수 있어야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 과정은 환자와 더불어 찾아가야한다고 말한다. 그는 실용정신분석이란 프로이트가 말하듯 무의식속의 생각을 의식으로 불러올라오는 것만이 아니라, 한 번도 억압되지 않았던 생각들, 환자가 이전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생각을 의식화해서 다시 살펴보는 것이라 말한다. 이때 분석가는 보조적이고 그저 들어주는 역할에만 머물지 않고, 상당히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환자와 상호소통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오웬 레닉은 정신분석의 흐름에서 보면 상당히 개혁적인 성향의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 학파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는 증상을 다루는 문제, 도움이 되는 질문이 무엇인지, 치료자의 자기노출의 정도, 행동화의 문제, 외상후 스트레스, 치료를 파괴하려는 환자들, 공황장애, 걱정과 후회의 차이등 정신분석이나 정신치료를 할 때 흔히 발생하는 다양한 논점들을 다룬다. 매 챕터마다 문제제기를 하고, 자신이 직접 보았던 환자의 사례를 자세하게 소개한다. 그리고 고전적 방식이 아닌 실용정신분석적 방법으로 치료를 해내고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낸 부분을 정리해서 알린 후에 정신분석의 실용적 관점은 어떤 것이 좋을지 제안을 한다.
현대사회 진료현장에서 흔히 보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오웬 레닉은 독특한 시각으로 접근한다. 정신분석가로서 그는 외상을 경험한 이가 꾸는 악몽에 주목한다. 꿈에서 표현되는 소망을 보면 그가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이해하고 충격에서 벗어나 적응하려는 노력을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리를 절단한 사람은 꿈에서 다리가 복구되기도 한다. 그런데, 특징적인 꿈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경험한 트라우마 사건을 정확히 재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 잘 탈출할 수 있었는데 꿈에서는 트라우마 사건 한 복판에 던져진 채로 끝이나 버리는 것을 반복한다. 즉, 꿈에서 생략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꿈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환자의 죄책감을 반영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리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지속되는 것은 이런 죄책감이 역할을 한다. 트라우마 사건으로 이전부터 갖고 있던 지나친 죄책감이 되살아나고 꿈을 꾼 사람은 자기가 거기서 벗어났다는 현실을 믿을 수 없다. 그러니 반복해서 그 꿈을 꾸는 것이다. 덕분에 위험에서 벗어나는 안도의 해피엔딩이 생략된 위험한 클라이막스만 반복하는 꿈을 꾸는 고통스러운 도돌이표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해피엔딩을 삭제하고 안도감을 박해로 전환시켜서 가혹한 초자아만 만족하게 된다. 즉, 비록 외상은 경험하지만, 그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오랫동안 고통받는 것은 이전의 삶이나 무의식이 기반이 된다. 이런 시스템을 이해한다면 약물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외상후스트레스 장애환자의 고통스러운 꿈의 의미를 찾아내고 해결해내면서 궁극적인 치유를 얻어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식으로 오웬 레닉은 매 챕터마다 반전에 가까운 문제제기를 하면서 “꼭 고전적인 방식으로 하지 않아도 돼”라며 자기가 치료를 성공적으로 해낸 환자의 사례를 보여준다. 유서 깊은 전통적인 무술을 연마하는 도장이 있다. 오랜 시간 교본에 나온 대로 맞춤대련을 하는 것만 해오던 도장의 수련생들이 도장 밖으로 나가서 실제로 대결을 하면 속수무책으로 깨진다. 깨지고 돌아와서는 “그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해”라고 자조를 하면서 더욱더 교본에 따른 무술연마에 힘쓰기만 한다. 그리고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을 강조한다. 이때 먼 여행을 떠났던 노사부가 돌아와서 교본에 얽매이지 말고, 눈을 찌르거나 낭심을 때리는 것만 하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로 무술을 하던 일단 이기고 보는 게 중요한 거라면서 근본적 태도의 변화를 일깨운다. 이 책이 지금 정신분석에 대해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비록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정신분석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흥미 있게 볼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환자와 치료자를 위한 실용 정신분석 오웬 레닉 저/노경선 역 | NUN
비록 외상은 경험하지만, 그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오랫동안 고통받는 것은 이전의 삶이나 무의식이 기반이 된다. 이런 시스템을 이해한다면 약물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외상후스트레스 장애환자의 고통스러운 꿈의 의미를 찾아내고 해결해내면서 궁극적인 치유를 얻어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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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오웬 레닉> 저/<노경선> 역20,000원(0% + 0%)